[시인의 집] 즐거운 고통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20.12.05 07:05

<222> 전인식 시인 ‘모란꽃 무늬 이불 속’


1997년 ‘대구일보’ 신춘문예와 이듬해 ‘불교문예’ 신인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전인식(1964~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모란꽃 무늬 이불 속’은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사물에 대한 의인화와 비유, 역설적 표현을 통해 불성과 인간 본성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이뿐 아니라 인간의 가벼운 속성이나 문화의 쏠림현상, 문명 비판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시집을 펼치면 먼저 불가의 가르침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즐거운 고통”이나 “울며 웃을 수 있는” 자아는 이 세상에 살면서 벗어나기 힘든 고통인 고(苦)를 의미한다. 고(苦)는 단순히 즐거움의 반대 개념이나 육체와 정신의 고통에 한정된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욕망이 커지면 괴로움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그만큼 괴로움도 커진다.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원하는 것을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는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하나를 얻으면 즐거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 다른 것을 얻으려 집착한다. 즐거움과 욕망과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다. 이를 아는 시인은 “몸속에 숨어 사는 것들”과 “모든 관념적인 것들”(이하 ‘비누의 형이상학’)에게 “가슴 후련한 작별을 고”하려 한다. 인생은 “잠시 잠깐”(‘갈치’)이기 때문이다.

저물 무렵 역 광장
한 사내가 시계탑을 등에 메고 앉아 있다

어디에서나 삶은 고행이란 걸 미리 알아버린 듯
턱 괴고 앉은 등 뒤로 노을이
후광後光으로 퍼져 흐르고 있다

몇 개 사막을 건너온 다 닳아빠진 운동화
바람이 기거하기 좋은 낡은 작업복
북서쪽에서 온 바람이 그를 알아보고 일으켜 세운다
덥수룩한 머리카락은 흔들리는 덤불숲
조금도 꼼짝 않는 몸
쓰러질 것 같은 가벼움이 세상 위에 떠 있다

말라빠진 몸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한 올 한 올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마다
한 눈금씩 돌아간 시곗바늘
시계탑을 등에 멘 한 사내 턱을 괴고 앉아 있다

갈 길 바쁜 사람들 대신
역 광장 비둘기들만 우르르 모여들어
법문 듣듯 보리수나무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 ‘사내와 시계탑’ 전문

시 ‘사내와 시계탑’은 “저물 무렵 역 광장”에서 “시계탑을 등”지고 앉아 있는 사내를 보고 “보리수나무 아래”의 싯다르타를 떠올린다.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고, “낡은 작업복”을 입은 머리카락 “덥수룩한” 사내는 눈을 뜰 힘조차 없을 만큼 지쳐 있다. “노을이/ 후광後光으로 퍼져” 흐르는 것으로 봐서 사내는 깨달음을 얻은 듯하다.

보리수나무는 시계탑으로 환치된다. 하나씩 깨달을 때마다 시곗바늘은 “한 눈금씩 돌아간”다. 또한 “시계탑을 등에 멘 사내”는 싯다르타에 머물지 않고 예수로 전이되기도 한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혹은 “스스로 죄를 짓고서 스스로 괴로움에 빠”(‘법구경’)지는 인간을 구원하고 인도한다는 의미에서 싯다르타든 예수든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삶은 고행”이다. 고행을 통해 몸은 “쓰러질 것 같”지만 고요한 마음은 “세상 위에 떠 있”는 듯하다. 깨달음을 얻은 사내는 설법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사내의 말에 귀기 울이기는커녕 갈 길 바쁘다.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하는 “비둘기들만 우르르 모여” “머리를 조아”린다. 결국 미물보다 못한 인간인 셈이다.

“몇 개의 사막을 건너”는 여행과 고행을 한 사내는 ‘왕오천축국전’을 쓴 혜초나 ‘서유기’의 삼장법사를,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자세에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시적 장치는 이집트 출신의 그리스 가수 테미스 루소스의 사랑과 죽음, 아프리카 지도에 스민 피를 다룬 ‘슬픈 직선’, 빗살무늬 토기를 통한 자본주의와 인간의 욕망을 다룬 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시인의 해박한 인문학적 소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염려스러운 듯 서 있는 동생들의 눈빛
아, 안타까운 우리 가족들의 보물상자

얼어붙은 땅속 깊이 내려갈수록
아늑해져 오는 아랫목 훈기
된장국이라도 끓여 놓았을까
잡채도 만들어 놓았을까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룰루랄라
룰루랄라
나의 삽질은 즐겁다
나의 괭이질은 즐겁다


만나면
왜 그리 급히도 가셨냐고
묻고 싶던 말들은 하지 말아야지
젖꼭지부터 찾아야지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나의 삽질은 가볍다

입 대었던 모유의 기억
어머니는 똑똑히 기억하고 계실 거야
부드럽게 이마 쓰다듬으며
이쁘게 젖을 물려주실 거야

그대로 잠이 들고 말 거야
눈보라 치는 섣달그믐날
여기는 모란 꽃무늬 이불 속

- ‘어머니 무덤을 파다’ 전문

이 시를 읽기 전에 두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 하나는 “죽음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애달파 하지도 마라.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도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붓다가 마지막 여로에 남긴 말씀이다. 시인은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일찍 돌아가신 것을 애달파할 뿐이다.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행위는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는 즐거운 일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즐거운 고통”, 즉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괴로움이 늘어날수록 즐거움도 늘어나는 것과 같다. 반대로 즐거움이 늘어나면 괴로움도 늘어난다. 시인은 의도적으로 삽질의 가벼움을 통해 마음의 무거움을 역설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어머니의 무덤을 파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꿈이라는 것이다. “눈보라 치는 섣달그믐날”에 “모란 꽃무늬 이불 속”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머니를 만나는 상황을 시로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염려스러운 듯 서 있는 동생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룰루랄라” 즐겁게 삽질을 하고 괭이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말”은 “왜 그리 급히도 가셨냐”는 것이지만, 시인은 어머니의 “젖꼭지부터 찾”겠다고 한다. 모유를 먹던 갓난쟁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온몸 가득 가시를 달”고(‘선인장, 마흔 근처’) 살아가면서 늘 내 편이 되어준 어머니가 그리운 것이다. 엄마의 젖을 빨던 때보다 더 행복한 시절이 있을까.

첫사랑은 무좀균
오랜 세월에도 박멸이 불가능한
지독한 박테리라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사는 지금도
아내 몰래 꼼지락꼼지락
발가락 사이 숨어 사는
한번 찾아들면
떠날 줄 모르는 그
이 세상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눈 감고 드러눕는
관棺 속까지 쫓아오며
최후까지 함께 할 것이다
첫 키스의 추억뿐인 그.

- ‘첫사랑’ 전문

전인식의 시에서 사랑은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사랑은 “박멸이 불가능한” 무좀균과 같다.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평생 “떠날 줄 모르는”, “관棺 속까지 쫓아오”는 치유 불능이다. “잠자리 드는 때를 기다려 한순간”(이하 ‘이명耳鳴’) 찾아오는 이명은 “기차를 타고”오는데, “밤이 새도록/ 체위를 바”꾼다. 즉 밤에 이명이 찾아오는 것을 성적 판타지로 다루고 있다.

사물을 의인화한 시 ‘공작’에서 “아름다워 슬픈 수컷”인 나는 “크고 화려한” 꼬리 깃털로 “그대를 유혹”한다. 또 시 ‘고슴도치’에서 “아내의 몸에 가시가 돋”는데, 내가 “밉거나 싫을 때마다 하나씩 자”란다. 그 가시는 밤마다 “흉기가 되어 되돌아”온다. 사랑은 “그냥 저절로 움직여지는 것”(‘푸른색 방’)인 동시에 몰입이다.

“내 몸이 지배받고 있다는 사실”(‘통상적인 이’)을 잘 알고 있는 시인은 자등명(自燈明), 즉 자기 자신을 등불 삼아 시의 길을 걷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시인의 말’)

◇모란꽃 무늬 이불 속=전인식 지음. 한국문연 펴냄. 144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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