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군자 장계향… '조선의 맛'을 전하다

머니투데이 영양(경북)=심용훈 기자 | 2020.12.02 11:32

장계향 선생의 관계적 삶… 교육의 철학적 메시지 남겨… 삶의 철학 묻어나는 최초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 문화체험교육원 변화 시도

장계향 선생의 나이 일흔다섯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해 만든 책, '음식디미방(1672년)'은 350여 년 전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이자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로 146가지의 요리가 수록돼 있다./사진제공=영양군

"하늘의 반(半)은 여자가 이고 있다."

마오쩌둥(모택동)의 이 한마디는 중국 사회 내면에 짙게 깔린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흔든 결정적 계기가 됐다.

선비의 가치를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진 조선시대, 유교(儒敎)적 관점으로 보면 여성의 지위나 사회적 역할은 한계에 부딪히고 비판받을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유교의 가치를 현대화시키기 위해선 여성이라는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시문(詩文)과 서화(書畫)에 모두 능하면서 교육의 철학적 메시지를 후세에 남긴 여성 중에 최고의 선비, 여중군자(女中君子) 장계향(1598~1680년) 선생의 철학과 교훈으로 들어가 본다.

여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절망하지 않고 적극적인 삶을 살며 여중군자라는 호칭을 얻게 된 장계향 선생의 영정./사진제공=영양군




◇ 장계향 선생의 관계적 삶 '공동체적 자아론'


퇴계 이황(1501~1570년) 선생의 학문과 학파의 영향을 받은 인물로는 서애 류성룡(1542~1607년) 선생과 학봉 김성일(1538~1593년) 선생, 한강 정구(1543~1620년) 선생 등이 퇴계학파(退溪學派)의 학맥을 이었다.

선생의 아버지인 조선시대 학자 경당 장흥효(1564~1633) 선생이 이 세분으로부터 학문을 계승했고, 이를 매개로 후손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런 학통과 학문적인 요인 속에 장계향 선생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한자어 '경(敬)'자를 논해 볼 수 있다.

'경'은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공부로써 참된 인간, 진실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장흥효 선생은 평생을 '경'공부로 일관했으며, 장계향 선생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경'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이 삶은 장계향 선생을 특정 짓는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선생의 삶 중에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이 '관계적 삶'이다. 윤리학적으로 '공동체적 자아론' 이라고도 한다.

장계향 선생이 10여 세 전후에 지은 시(詩)집 '학발첩(鶴髮帖)'과 선생의 관련 자료를 편집한 8면으로 된 시문 '전가보첩(傳家寶帖)'./사진제공=영양군

장계향 선생이 10여 세 전후에 지은 시(詩) '학발첩(鶴髮帖)'은 초서(草書)로 유명하다. 마을의 한 백발의 노인이 군대 부역을 떠나는 아들을 보고 가슴 아픈 사연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는 선생의 진정한 삶의 철학이 이 시에서 느껴진다.

"늘 착하게 살아야 한다. 선한 사람이 돼야 한다. 성인(聖人)이 돼야 한다"는 선생의 교육적 철학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르침이다.

'전가보첩(傳家寶帖)'은 장계향 선생의 관련 자료를 모아 편집한 8면으로 된 시문이다. 남편 석계 이시명(1590~1674년) 선생의 필체로 적고 며느리가 수를 놓아 완성했다. 시대적 삶의 몫과 남과의 관계 속에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 흔적을 비춰주는 작품이다.

장윤수 대구교대 윤리교육학과 교수(전통문화 연구사)는 "장계향 선생은 여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여인의 삶을 살아냈기 때문에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내 후대에 여중군자라는 남자도 받기 힘든 호칭을 얻게 됐다"고 해석했다.

그러면서 미 하버드대 인생지침서로 불렸던 켄트 케이스의 'Anyway(그래도)'를 인용해 장계향 선생의 삶의 철학적 메시지를 대신했다.

"사랑하라" 사람들은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 게다가 자기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사랑하라.


"착한 일을 하라" 당신이 착한 일을 하면 사람들은 다른 속셈이 있으리라 의심할 것이다. 그래도 착한 일을 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라" 정직하고 솔직하면 공격당하기 쉽다. 그래도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라.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사람들은 약자에게 호의를 베푼다. 하지만 결국에는 힘 있는 사람 편에 선다. 그래도 소수의 약자를 위해 분투하라.

음식디미방에 소개된 '양반가 주안상'./사진제공=영양군



◇ 조선의 맛을 전하다 '음식디미방'


장계향 선생의 나이 일흔다섯에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혼신의 힘을 다 해 만든 '음식디미방(1672년)'.

'디'는 알'지(知)'의 옛말이며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350여 년 전 한글로 된 최초의 요리서이자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다. 음식디미방은 146가지의 요리가 수록돼 있다.

재료의 특성과 맛의 깊이는 조선 여인, 장계향 선생의 빛나는 재능과 품성이 더해져 모든 한국 음식의 지침이 되고 근본이 되고 있다.

1965년도 경북대 김사엽 박사가 논문을 통해 음식디미방을 세상에 알렸다.

조선시대 음식 조리서 중에 음식디미방 보다 내용이 충실하고 저술 자가 확실한 책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새벽에 물을 긷고 바른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듯 음식을 만들었다"는 선생의 삶의 철학 때문이 아닐까.

조선 중기 경상도 실제 조리법과 식품의 저장·발효·보관법 등 다양한 음식체험은 물론 장계향 선생의 업적과 삶의 철학도 배워볼 수 있는 경북 영양 두들마을에 위치한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전경./사진제공=영양군



◇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차별화 전략' 시도



음식디미방이 태어난 곳은 일월산 아래 청정함을 간직한 경북 영양군이다.

2018년 4월 영양 두들마을에 들어선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에는 조선 중기 경상도 실제 조리법과 식품의 저장·발효·보관법 등 다양한 음식체험은 물론 장계향의 업적과 삶의 철학도 배워볼 수 있도록 시설이 구성돼 있다.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 유물전시관./사진제공=영양군

최근 영양군은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을 일회성 단순 체험장이 아닌 체류형 관광을 위한 개발에 나섰다.

군은 고급 호텔급 수준의 서비스 시스템을 갖춰 관광상품의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음식디미방 및 장계향 해설 표준 설명서를 제작·완료하고, 10·20세대를 겨냥한 1만 원대 상품 개발도 구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저가 체험 여행의 장점을 살린 온라인 마케팅 강화로 관광객 유치에 승부수를 던질 전략이다.

오도창 군수는 "장계향 문화체험교육원에는 청정 영양의 맛과 멋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며 "자연 관광으로 연계된 변화를 시도해 영양을 찾은 관광객이 후회하지 않도록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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