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창립 초기 서울 청량리 경동시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신한은행은 그해 11월 청량리점을 개설하고는 시장통을 돌며 상인들에게 동전을 바꿔줬다. 장사 도중에 은행을 가기 어려웠던 상인들에게 찾아가는 동전 교환 서비스는 획기적이었다. 신한은행 신화는 그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신한은행은 1982년 재일교포 자금으로 설립됐다. 아직 40년이 채 되지 않은 청년 은행이다. 그렇지만 120년 한국 금융 역사의 리더가 된 건 우연한 사건은 아니다. ‘갑’의 자세에서 내려와 고객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면서 기존의 은행 문화를 파괴한 게 원동력이다. 대기업도 아니고 낮고 낮은 시장 상인들에게 허리를 숙이며 영업한 건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신한은행 사람들은 이때 일을 자주 얘기한다. 표정엔 자긍심이 배어 있다. 이런 성장 과정을 겪다 보니 경쟁 금융그룹들과 비교할 때 신한금융 사람들의 애사심이 유별나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 회식 후 동료들끼리 서울 태평로 본점 옥상에 올라 어깨동무를 하고 행가(行歌)를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1등의 저력으로 해석한다.
신한은행은 재일교포들 돈으로 세워졌다. 신한은행은 재일교포를 한국인과 일본인 중간쯤에 놓고 보지 않는 시선에 시달렸다. 뿌리 깊은 민족 감정은 최대 난제였다. 여기까진 은행 외부의 감정적인 요소다.
내부 문제는 따로 있다. 지배구조다. 재일교포들은 신한금융지주 지분 15% 안팎을 보유 중이다. 10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에서 재일교포가 4명이다. 조용병 회장 등을 포함한 전체 이사 수 13명 기준으로 30.8%다. 재일교포는 아니지만 기타 비상무이사 필립 에이브릴 BNP파리바 증권 일본 CEO까지 범위를 넓히면 38.5%로 뛴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경영진이 뭔가 하려 해도 이들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몇 년째 지분율에 비해 경영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도하다고 지적해왔다.
이런 지배구조 때문에 신한 사태 때 라응찬 전 회장 등이 나고야로 날아가 주주들 ‘청문회’장에서 섰던 게 정확히 10년 전 일이다. 형사 사건으로 비화한 분쟁을 몇몇 주주들이 모여 경영권 교통정리를 했다.
얼마 전 신한금융이 홍콩계 사모펀드로부터 1조1582억원의 투자를 유치했을 때도 재일교포 주주들은 현 경영진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지분을 희석하는 것은 물론 사모펀드들 몫으로 사외이사 자리 2개를 만들어주겠다는 게 이들을 자극했다. 재일교포들은 홍콩계 사모펀드에 밀리지 않기 위해 장내에서 신한금융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재일교포 주주 입장에서 보면 불만이 있겠지만 신한금융은 자본확충이 절실했다. 국내외에서 인수합병(M&A)을 하거나 새로 금융사를 세울 때 돈이 필요해서다. 초저금리와 코로나19 장기화로 이익을 늘려 자본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외부에서 자본을 끌어왔다.
그러나 조 회장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재일교포 주주들과 지속적으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조 회장의 몫이다. 조 회장의 판단 기준은 분명하다. 리딩뱅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다. 길게 봤을 때 주주들을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런 논리로 재일교포 주주들도 설득할 것이다. 신한금융 뿐만 아니라 경쟁회사들과 당국이 조 회장의 리더십을 지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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