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유행가'를 넘어 '투쟁가'가 됐다.
태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태국에선 야당인 '퓨처포워드당'(FFP)이 지난 2월 해산된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쁘라윳 짠오차 총리의 퇴진은 물론 군주제 개혁까지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확산됐는데, 시위대가 케이팝을 따라부르는 모습이 자주 포착됐다.
지난달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케이팝을 대표하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다만세)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태국 시위대의 영상이 큰 인기를 끌었다.
다시 만난 세계는 지난 2016년 이화여대 학생들이 정유라의 부정입학과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 등에 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던 와중 경찰과 대치하던 상황에서 부른 노래로 당시 촛불시위의 도화선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다만세는 방황 속에서도 꿈과 도전을 놓지 않겠다는 소녀들의 꿈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소위 '조공'하기 위한 모금에도 익숙했던 태국 케이팝 팬들은 반정부 시위를 위해서도 수십만달러를 보내며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0일 기준으로 따져도 300만바트(1억1000만원) 이상이 시위대를 위해 보내졌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3일(현지시간) '케이팝이 태국 젊은층의 시위를 촉발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수십만달러를 모금하고 춤을 통해 젊은층에게 영감을 주는 등 케이팝 팬들은 태국 반정부 시위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지난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던 칠레에선 케이팝 팬들이 시위대 배후로 지목당한 일이 있었다. 그만큼 케이팝 팬들의 영향력을 크게 본 것이다.
칠레 내무부가 검찰에 제출한 112쪽 분량의 시위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팝 팬들은 아르헨티나 좌파 인사 등과 함께 시위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이름을 올렸다.
보고서는 지난해 10월 18일부터 11월 21일까지 트위터 등 SNS에서 500만여명의 사용자가 쓴 시위 관련 게시물 6000만여건을 분석한 것으로, 칠레 정부는 보고서에서 케이팝 팬들이 시위 초기 400만여건이 넘는 리트윗(재전송)을 통해 시위 동참을 부추겼다고 썼다.
이에 일각에선 칠레 정부가 시위 원인을 내부에서 찾기보다 케이팝 팬들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인 사회당의 마르셀로 디아즈 하원의원은 "수치스럽다"며 "우리는 케이팝을 범죄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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