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포르노 여배우를 그리던 작가는 그 배우들의 생기 없는 눈에 주목했다. 실제 삶이 불행하더라도, 작품 안의 그녀들은 살아있기를 바랐던 까닭에 눈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작가의 대상이 된 초상들은 포르노 배우들에 국한하지 않았다. 패션모델, 문학작품 속 주인공 등 빛나고 허물어지고 실패하고 환희에 찬 모든 인물이 작가 손에서 다시 태어났다.
2004년 딸 에스메가 태어나면서 그의 주된 붓질은 10대 소녀들로 향했다. 딸을 중심으로 딸과 관계된 모든 10대가 대상인데, 그 작품들은 언뜻 스치고 지나가기에는 단정 지을 수 없는 해석이 넘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리만머핀 서울에서 개막해 내년 1월 29일까지 이어지는 샹탈 조페의 국내 첫 개인전 ‘틴에이저스’(Teenagers)다. 미국에서 태어나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작품 속 10대들은 어딘지 모르게 냉정 또는 냉랭하다. 차가운 기운이 눈빛을 통해 그대로 전해지지만, 독기보다 허무의 감성에 가깝고 관계보다 주관의 늪에 빠져 있는 듯하다.
10대 소녀들이지만, 2년 전과 후의 모습이 극적으로 달라지는 성장의 깊이와 넓이를 한꺼번에 느낄 수 있고 10대 소녀의 차가운 눈빛이 어느 순간 세상을 깨달은 40대 원숙한 실존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분위기를 맛볼 수도 있다.
10대들로부터 어떤 정답을 찾아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는 사실을 그의 작품들은 고스란히 증명해낸다. 무관심, 불안, 허무, 실존이 섞여 무게감이 제법 그럴싸하다. 30㎝ 소회화부터 3m 대회화까지 선보인다.
2층 계단에 숨어있는 듯 걸린 유일한 10대 소년의 초상화는 매 시각 변하는 ‘아이어른’의 감정을 두루 투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가 넘친다. 이 작품은 이미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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