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윤석열이 은인(恩人)이다

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 2020.11.16 04:42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고, 높이 나는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을 치워버린다. 적국이 망하면 지혜로운 신하는 버려진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 제국을 건설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한신은 음해를 당해 삶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탄식합니다.

정부·여당으로부터 전방위 퇴진 압박을 받고 아내와 장모까지 검찰수사를 받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의 처지가 한신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역사적으로 황제가 공신을 죽이는 것은 필연입니다.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정부 출범의 1등공신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 의혹을 밝혀내는 등 문재인정부 ‘적폐청산’의 주역이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대통령의 절대 신임 아래 검찰총장 자리까지 오릅니다.

윤 총장은 그러나 조국 사태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수사를 계기로 현 정권과 결별합니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취임하면서는 집중 견제를 받습니다. 이에 그는 국정감사에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반발하며 “퇴임하면 사회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정치참여 가능성까지 열어놓았습니다. 윤석열의 검찰은 문재인정부가 가장 역점을 둔 원전 조기폐쇄와 관련해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에 대해서도 전격 수사에 나섭니다.
 
정부·여당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까지 나서 “정치 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여권은 원전 수사 등 일련의 윤 총장 행보가 문재인정부의 존립을 넘어 차기 정권 재창출까지 위협한다는 위기감을 드러냅니다.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총장의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가 24.7%를 기록해 이낙연 대표, 이재명 경기지사 등을 추월하자 위기감은 최고조에 이릅니다.
 
차기 대선주자 1위까지 오른 윤석열 총장은 과연 문재인정권에 위협적일까요. 위협자가 아니라 문재인정권의 은인(恩人)입니다. 현 정권이 할 일은 윤 총장을 쫓아내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서라도 내년 7월 임기까지 붙잡아두는 것입니다.

 
윤석열은 비타협적 엘리트주의자이자 검찰주의자입니다. 절개는 자칫하면 오만하기 쉽고 강직은 자칫하면 과격하기 쉽다고 했습니다. 윤석열이 바로 그렇습니다. 정치의 영역에서 요구되는 덕목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정치할 사람이 못됩니다. 법조인 출신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지율이 20%까지 올랐고 법무장관과 총리까지 했음에도 대선 근처에도 못 가고 낙마했습니다.
 
윤석열 총장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차기 대선일이 가까워질 때까지 하루라도 자리를 더 지키면 국민의힘 등 야권 후보들은 존재감을 잃고 관심조차 받지 못할 것입니다. ‘윤석열의 야권 대선주자 블로킹 현상’입니다. 이렇게 되면 윤석열 총장은 다음 대선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는데 1등공신이 될 것입니다.
 
윤석열 총장이 임기를 채우는 것은 내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보궐선거 전 그가 물러나면 반민주당 세력이 결집하는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부들은 정어리를 잡아 운반할 때 탱크 속에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어 정어리를 살아 있게 합니다. 윤석열은 문재인정권의 ‘메기’입니다. 문재인정권은 역대 다른 정권과 달리 이른바 권력형 게이트가 아직 없습니다. 조국 사태는 물론 최근 펀드 사태도 대단한 권력형 비리는 아닙니다.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문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수뇌부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같은 수모를 당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윤석열 총장 같은 메기가 절대 필요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윤석열 본인의 선택입니다. 군자의 도(道)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언제 나아가고, 언제 머물며, 언제 침묵하고 언제 말하는가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현자피세(賢者辟世),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세상을 피합니다. 이게 윤석열의 길입니다. 자신을 핍박한 권력에 복수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검찰조직을 살리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는 길입니다. 혹시라도 대선행은 꿈도 꾸지 마십시오. 윤 총장 본인도 불행해지고 나라도 불행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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