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떠난 중견기업 회장, 다른 회사 다니던 자녀…40년 가업이 끊겼다

머니투데이 구경민 기자 | 2020.11.17 09:23

[100년기업 막는 상속세](중)상속세 오해와 진실

편집자주 | 전세계에서 대주주 상속세율(60%)이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직계 비속의 기업승계시 더 많은 할증 세금을 물려 벌주는 나라. 공평과세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국민의 3%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자세이면서도 전체 세수에서의 비중은 2%가 채 안되는 상속세. 100년 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짚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봤다.



#. 중견 기업을 40년간 운영하던 70세의 A 회장은 자녀들의 올바른 경영수업을 위해 다른 기업에서 2년 이상 신입사원으로 일하도록 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그의 뒤를 이어 자녀들이 가업승계를 하지 못했다.

가업승계를 위한 상속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상속개시일 전 2년 이상 해당 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규정 때문이었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5조 3항 2의 다목)

최근 창업주나 경영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家業)의 원활한 승계가 이뤄지지 못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세법에서는 원활한 승계 지원을 위해 가업상속공제 제도를 두고 있지만 유명무실한 실정이다. 가업상속공제의 적용 대상과 사후관리 요건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가업상속제도는 '100년 전통의 명품 장수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로 1997년 도입됐다. 거주자의 사망으로 인한 기업 승계 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최대 500억원까지의 공제를 통해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춰주는 제도다. 1997년 도입 당시 공제 한도가 1억원이었으나 2008년 30억원, 2009년 100억원, 2012년 300억원, 2014년 500억원으로 올랐다.

공제대상도 처음에는 중소기업에 한정됐으나 2011년 매출액 1500억원 이하의 중견기업으로 확대됐고 현재는 3년 평균 매출액이 3000억원 미만인 중견기업까지 공제가 가능해졌다. 2018년 기준 매출액 3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은 전체 중견기업의 86.4%에 해당하는 4005개다.

이처럼 제도 도입 이후 적용 대상과 공제 규모가 꾸준히 늘었지만, 제도 이용은 미미한 증가에 그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연간 공제 건수가 40∼50여건에 그쳤으며 최근 3년을 보더라도 2015년 67건, 2016년 76건, 2017년 91건, 2018년 84건으로 이용이 저조했다.

이렇다 보니 가업상속공제 활용이 미미하다. 2011~2018년 가업상속공제 이용실적은 연평균 84건으로 총 공제금액은 2365억원이다. 반면 독일은 연평균 1만3169건, 공제금액은 36조5000억원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차이가 한국 제도 적용 대상 기업의 범위가 한정적이고 적용 요건이 엄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은 적용 대상이 3년 평균 매출액 3000억원 미만 기업으로 중소·중견기업에 해당한다. 피상속인은 10년 이상 가업을 영위하면서 해당 기간의 50% 이상을 대표자로 종사했어야 한다. 또 상속 당시 60세 이상인 부모일 것과, 발행주식 총수의 50%(거래소 상장법인 30%) 이상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한 최대주주여야 한다.

상속인은 18세 이상일 것과 가업 상속 개시일 전에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상속세 신고기한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야 한다.

10년간 가업유지와 업종 변경이 불가하고, 가업 자산 20% 이상 처분은 금지되며, 10년 평균 고용 100%로 유지 조건 등 엄격한 적용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반면 독일은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가업승계에 공제 혜택을 준다. 공제 한도를 500억원으로 정해 놓은 한국과 달리 상속 후 7년 이상 가업을 유지하면 상속재산을 100% 공제해준다. 5년 이상 유지하면 85%를 공제받는다.

영국도 모든 기업이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상속인 자격, 사후관리 요건도 없다. 일본은 2018년부터 중소기업의 가업승계를 장려하기 위해 비상장 중소기업 소유주가 후계자에게 주식을 상속·증여할 때 발생하는 상속세의 100%를 2027년까지 납부 유예하는 특례제도를 도입했다.

전문가들은 사후관리 기간을 줄이고 업종 유지 요건을 없애는 등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희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17일 "국내에서 가업상속공제제도 이용건수가 낮은 주된 이유가 이용을 위한 요건의 엄격성에 있다"며 "이는 가업승계 촉진을 위해 지원제도의 요건을 대폭 완화해 운영하고 있거나 아예 상속세제를 폐지하고 있는 해외 국가들의 추세와는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중소기업이 대출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상속재산을 담보로 정부가 장기 저금리 경영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했다.

베스트 클릭

  1. 1 "건드리면 고소"…잡동사니로 주차 자리맡은 얌체 입주민
  2. 2 [단독]음주운전 걸린 평검사, 2주 뒤 또 적발…총장 "금주령" 칼 뺐다
  3. 3 "나랑 안 닮았어" 아이 분유 먹이던 남편의 촉…혼인 취소한 충격 사연
  4. 4 "역시 싸고 좋아" 중국산으로 부활한 쏘나타…출시하자마자 판매 '쑥'
  5. 5 "파리 반값, 화장품 너무 싸"…중국인 북적대던 명동, 확 달라졌다[르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