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기업 대신 현금을 물려주겠다"

머니투데이 김소연 기자, 김영상 기자 | 2020.11.15 15:30

[100년기업 막는 상속세](상)상속세로 벌주는 나라

편집자주 | 전세계에서 대주주 상속세율(60%)이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 직계 비속의 기업승계시 더 많은 할증 세금을 물려 벌주는 나라. 공평과세와 부의 재분배라는 취지가 무색하게 전국민의 3%만을 대상으로 하는 부자세이면서도 전체 세수에서의 비중은 2%가 채 안되는 상속세. 100년 기업으로의 성장을 가로막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짚고, 합리적 대안을 찾아봤다.

"저도 내년이면 나이가 70이에요. 회사가 더 성장하려면 젊은 세대가 경영을 맡아야 하는데 상속세 부담이 커서 고민입니다."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는 양변기 부품으로만 47년 외길 인생을 걸었다. 22세에 단돈 5만원으로 회사를 창업해 코스닥 상장사로 키워냈다. 그의 인생을 바쳐 키운 자식같은 회사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각하게 매각을 고민하고 있다. 증여세가 만만치 않아서다.

송 대표는 "경영이 2대로만 내려가도 (세금을 내느라) 지분이 별로 안 남는다"며 "차라리 (매각해) 다 써버리는 게 나을 정도다"고 토로했다.

2세 경영은 최근 수년간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에 가장 큰 고민거리다. 회사 창업부터 성장까지 이끌어온 CEO들이 중년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떠오른 이슈다.


실제 코스닥협회가 지난 6월 코스닥 상장사 1409개사의 CEO 1707명을 조사한 결과, 평균 나이가 56.3세로 집계됐다. 50대 CEO는 785명으로 전체의 46%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60대가 447명(26.1%), 70대 이상도 116명(6.7%)이었다. 은퇴를 앞둔 CEO가 전체의 80%에 달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속·증여세 부담에 대부분 가업승계를 계획하지 않고 있다. 올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발간한 '2019년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견기업 1400곳 중 82.9%는 가업승계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은 최고 50%로 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다.

여기에 상속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대상에 포함되면 최고세율은 60%로 치솟는다. 세금이 지나치다는 비난을 의식해 정부는 올해부터 중소·중견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공제를 받으려면 업종, 자산, 고용을 7년간 유지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이는 세계적으로 기업가 정신을 고려하는 흐름과도 동떨어진다.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창업주가 사업을 시작해 성장궤도까지 올려놓는 특성상 창업주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경영자가 바뀔 경우 기업DNA가 달라져 명운이 사그라드는 경우가 많다.

상속세 최고세율을 자랑하는 일본도 가업 승계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해석해 예외조항을 두는 것과 대조된다.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 원활화'법을 제정해 각종 감면 혜택을 만든데 이어, 2018년부터는 10년 한시 '특례사업승계제도'를 만들어 증여·상속세를 전액 유예 또는 면제하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일본에 명문 장수기업이 많고, 중소기업에도 청년들의 취업이 줄을 잇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에서는 상속 대신, 기업을 팔아서 현금 물려준다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다.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의 M&A팀들은 물론,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도 CEO가 고령화된 기업들을 주된 영업 대상으로 삼는다. 그나마 국내 토종 PEF라면 사정이 낫지만 해외 PEF에 넘어가면 기술력, 노하우까지 해외유출될 수 있다.

지난 2018년 7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한국은 기업 오너가 상속을 하는 것보다 사모펀드에 회사를 내놓는 것이 더 이득인 나라"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 PEF 시장 급성장 배경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높은 상속세율이 작용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970~1980년대 설립한 회사 창업주들이 은퇴할 나이가 되면서 최근 5~6년간 가업승계 이슈가 있는 기업들은 PEF의 주요 딜 소싱처가 되고 있다"며 "PEF에게 기업이 넘어가면 일단 현금이 생기는 데다 경영권은 바뀌어도 2세들이 전문경영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있어 선호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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