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악몽'이 다시?…또 시험대 오른 '줄타기 외교'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 2020.11.14 07:30

[MT리포트] ‘美? 中?’ 선택 강요받는 한국 ①中주도 RCEP 출범·바이든 공약 TPP도 성큼

편집자주 | 미국과 중국이 각각 한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단 전제가 있다. 내민 손을 잡되 다른 손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첫 통화를 한날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연내 방한이 추진된다는 사실을 흘렸다. 한국은 과연 미국과 중국, 누구 손을 잡거나 놓아야 할까. 원치않는 선택의 시간이 시작됐다.

중국이 한국 등 15개국이 참여하는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출범을 예고하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을 상대로 기선제압에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동맹관계 복원을 거듭 강조하면서 '동맹 지렛대'를 활용한 중국 견제를 공언하고 있다. 당장 바이든이 내년 1월 20일 취임 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중국 견제용으로 구상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해 한국에 가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블록 주도권 다툼 속에 한국의 '줄타기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혼란 틈타 RCEP 출범으로 기선제압 나선 중국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사진=AFP

오는 15일 중국 주도의 다자간 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서명식이 화상으로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중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ASEAN) 10개국 정상들과 온라인 화상회의에서 RCEP에 정식 서명할 예정이다.

RCEP는 역내 경제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 세계 최대 규모의 FTA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 세계인구 22억명을 권역에 둔다. 대외의존도가 60% 이상인 한국에겐 포기할 수 없는 경제블록인 셈이다.

RCEP는 2012년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공식 제안됐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보호무역을 외치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논의에 속도가 붙었다. TPP가 구심점을 잃은 사이 미국의 거센 압박 아래 놓여있던 중국이 역내 경제협력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논의를 주도했다.

특히 중국은 차기 미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 RCEP를 마무리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바이든이 취임한 뒤 TPP에 재가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RCEP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TPP로 주도권이 넘어갈 수 있음을 우려한 일종의 기선제압인 셈이다.


"바이든 시대 유일한 위협은 중국"...TPP 가입해 中 포위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사진=AFP
외교 관측통들은 바이든이 TPP에 다시 가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가 일방주의·고립주의를 표방했다면 바이든은 다자주의 회복을 내세워왔다. 바이든은 파리기후협약, 이란핵협정 등 트럼프가 줄줄이 탈퇴한 다자조약에 복귀한다는 계획을 거듭 밝혔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학 정치학 교수는 지난주 CNBC를 통해 "단순히 지정학적 문제라면 (바이든이) 고민할 여지없이 당장 (TPP)에 재가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 견제 목적만 생각한다면 재가입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걸림돌은 공화당에 비해 보호주의 색채가 짙은 민주당의 반발일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TPP은 오바마 행정부가 역내 중국의 패권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추진한 다자간 무역협정이다. 2016년 12월 미국, 일본,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칠레, 페루 등 12개국이 서명했지만, 트럼프가 2017년 1월 취임 직후 탈퇴했다. 이후 좌초 위기를 맞았으나 일본의 주도로 미국을 뺀 11개국이 참여하는 점진적·포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으로 탈바꿈했다.

바이든은 부통령 시절 TPP를 지지했다. 최근에도 TPP 재협상을 조건으로 재가입 의사를 내비쳐왔다. 그는 지난해 미국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RF) 인터뷰에서 "TPP가 완벽한 협정은 아니지만 미국의 TPP 탈퇴로 아태 경제블록 운전대가 중국에 넘어갔다"고 지적하면서 "TPP는 중국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각국이 뭉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미중 갈등에 양자택일 선택지 받나...사드 악몽 피해야


문제는 TPP와 RCEP가 미국과 중국이 각각 아태 경제블록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상징적인 FTA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TPP와 RCEP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며, 국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양쪽 모두에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바이든이 TPP를 통한 중국 견제를 노골화하면서 한국에 가입을 요구한다면 우리 입장이 난처해질 수도 있다.

쉬리핑 중국사회과학원 동남아연구원은 최근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바이든은 미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TPP에 다시 합류할 것"이라며 "TPP와 RCEP 사이에 경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사진=AFP
더구나 한국의 어려운 선택지를 받아드는 일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바이든이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중국 견제에 동맹의 힘을 빌릴 것임을 공언했다. 한국의 트럼프 체제에서 취하던 '전략적 모호성'이 더는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또 트럼프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동맹 및 적성국 모두와 맞섰다면 바이든은 유일한 위협으로 중국을 지목하면서 경제와 통상은 물론이고 인권과 환경 문제에서도 동맹 간 연대를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한국에 돈을 요구하는 대신 대중 압박에 적극 동참하길 요구할 것이다.

그게 오바마 정부가 우리에게 요구했던 사드배치 같은 것이라면 문제가 커진다. 사드사태에서 우리는 한동안 중국의 매서운 경제보복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 정부가 한한령을 내리고 혐한을 부추기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이같은 중국식 경제보복은 상대만 바꿔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호주가 미국이 제기한 코로나19 중국 책임론을 거들자 호주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호주 여행과 유학을 금지한 '호주 때리기'가 대표적이다. 중국이 호주를 본보기로 미국 동맹에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실리만 챙기는 균형 외교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대중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유연하게 대응할 여지를 마련하고, 내부적으로 전략적 우선순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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