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에 대한 투자[MT시평]

머니투데이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2020.11.03 03:56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일이다. 그 원인에 대해 많은 연구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그 가운데 잘 언급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는 적시에 이뤄진 국가 차원의 선(線)에 대한 투자를 꼽을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가난한 시절에도 태백산맥을 뚫어 태백선과 영동선을 건설해 실어나른 무연탄으로 도시의 난방과 산업에 필요한 열을 공급할 수 있었다. 1970년대에는 다들 성급하고 무모하다고 이야기한 고속도로 건설에 나섰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완공된 경부고속도로는 전국을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 50년 동안 민족의 대동맥 역할을 하면서 산업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80년대에는 그 이전까지 몇 년씩 기다리거나 웃돈을 주고 사야만 하던 전화를 누구나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당시로서는 최첨단기기인 전전자교환기(TDX) 도입과 개발에 나섰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전전자교환기 개발과 보급에 성공하면서 전화는 전국 어디에서나 신청하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 됐으며 그 과정에서 정보통신산업의 발전과 인력의 양성을 도모할 수 있었다.
 

1990년대에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초고속인터넷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시행했다. 전화선에 연결해 쓰던 56k모뎀도 충분하다고 느끼던 시절 전국 단위의 초고속인터넷망 구축을 위한 투자는 과도한 투자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결국 대한민국을 정보화 시대의 첨병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0년대에는 1990년대에 시작된 고속철도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했다. 고속철도 건설 이전에 비해 소요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한 KTX 건설은 국토의 공간구조를 혁명적으로 변신시켰고 사람들의 거리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과감하게 이루어졌던 선과 망에 대한 투자는 새로운 산업발전과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만들어준 핵심 요인이었다.
 
2020년대 현 시점에서 필요한 국가적 차원의 선과 망에 대한 투자 대상은 전력망(Grid)이 되어야 한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전력수요에 맞춰 발전소 건설이 진행되지만 정작 이것을 수요처까지 공급할 수 있는 송전망 건설은 뒤따르지 못한다. 또한 태양광을 포함한 재생에너지의 급속한 보급 확대는 전력망의 안정적 운용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전력망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품질과 안정성을 자랑하지만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등장하는 이와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계에 봉착한 교류송전체계를 대체할 고압직류송전망(HVDC)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존 전력망 확충을 넘어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전력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새로운 도약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술발전에 따라 재생에너지 확대는 이제 필연적인 흐름이 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과거에 비해 더 많은 분야에서 전기를 필요로 하는 전기화의 흐름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춘 전력망의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다. 한국판 뉴딜의 양대 축이 디지털과 그린임을 감안하면 전력망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양자를 함께 충족할 수 있으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최적의 투자 대상인 것이다. 다시 한번 국가적 차원의 선에 대한 투자를 통해 변화와 발전의 토대를 마련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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