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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아들이자 말더듬이 소년━
10세 무렵 델라웨어주로 이사한 바이든 당선자는 가톨릭계 사립학교인 아키메어 아카데미에 진학했다. 이곳에서 바이든 당선자는 미식축구 하프백을 맡고 야구도 하는 등 운동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가난한 학생이었지만 친구들을 이끄는 타고난 지도자이기도 했던 그는 11~12학년 내내 학생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말을 더듬는단 이유로 놀림을 받기도 했다. 친구들은 학생회장인 그를 'ㅈ-ㅈ-ㅈ-조 바이든'(J-J-J-Joe Biden)이라고 불렀다. 바이든 당선자는 델라웨어대에 입학한 이후에서야 말을 더듬는 습관을 조금씩 고쳐나가기 시작했고, 이후 뉴욕주 시라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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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가까운 정치경험━
그는 1973년부터 2009년까지 36년 동안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으로 활동했고 법사위원장과 외교위원장도 역임했다. 2009년부터 2017년까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며 명성을 쌓았다. 특히 바이든 당선자는 부통령으로서 공화당과 협치를 주도하면서 중도층까지 포용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일례로 부통령 재임 시절 바이든 당선자는 2010년 감세 연장안 합의를 이끌었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를 장악한 상황에서 그는,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며 공화당과의 협상을 주도했고 반발하는 민주당을 적극 설득하면서 결국 합의를 타결시켰다. 수십 년에 걸친 그의 정치경험이 빛을 발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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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도전 끝 최고령 대통령이 되다━
앞서 1988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다가 영국 노동당 대표의 연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중도 사퇴했다. 2008년엔 경선에서 탈락했지만 오바마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해 부통령이 됐다.
올해 무사히 경선을 통과한 그는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과 경쟁해야 했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르게 미국을 뒤흔든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에 공감했고, 미국에서만 20만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코로나19의 심각성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지우기'에 혈안이 됐던 것처럼, 바이든 당선자도 향후 정국운영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을 폐기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을 복원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제정책에서 그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하고,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39.6%로 되돌린다는 구상을 밝혔다.
또 외교정책에 있어 바이든 당선자는 '신(新)고립주의'를 표방했던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다자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전망된다. 훼손된 동맹관계를 복원하고 강대국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다. 의료정책으론 '오바마케어'의 뒤를 잇는 '바이든케어'를 내놓았다. 오바마케어의 보험료를 인하하고 적용 범위를 넓히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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