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기후변화와 지구적 정의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0.10.26 02:10

편집자주 |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낮다는 민주평화론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식량부족으로 인한 기근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있다. 기근은 근본적으로 식량부족 문제라기보다 분배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결핍으로부터 자유를 약속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기근은 심각한 도전이지만 우리는 한 지역에서 식량이 넘쳐나는데 다른 지역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현실을 자주 목격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어떤 나라는 부유하고 어떤 나라는 여전히 가난해서 잦은 기근과 높은 유아사망률을 보인다. 정의의 관점에서 이런 현실은 어떻게 설명되고 개선될 수 있을까.
 
피터 싱어는 기부 의무를 통한 빈부격차 문제의 해결을 주장한다. 윤리적 관점에서 보면 식량과 의료의 결핍으로 인한 고통과 죽음은 나쁜 것이다. 출근길에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시간이 늦든 옷을 망치든 상관없이 그 아이를 구하러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아이의 생명만큼 중요한 것을 희생하지 않는 선까지 기부해야 한다. 즉 기부를 통해 우리는 결핍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그에 상응하는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구할 수 있다. 싱어가 보기에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그만큼 중요한 걸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것이다.
 
존 롤스 역시 원조 의무를 말하지만 그의 원조에는 일정한 중단점이 있다. 그는 빈부격차의 원인으로 자원의 불균등한 배분보다 각국의 정치·문화적 요인이 더 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원조의 목적은 가난한 나라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 국제사회의 구성원이 되도록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반면 토마스 포기는 세계적 빈곤이 식민지 착취라는 역사적 요인과 선진국에 유리하게 구성된 불공정한 지구적 제도와 질서에서 크게 기인하기 때문에 석유 등 국제생산물의 1%를 의무적으로 징수해 빈부격차 해소에 쓸 것을 제안한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지구적 정의 논의에 활력을 불러일으킨 최근 계기는 기후변화를 둘러싼 문제들이다. 기후변화는 공간적으로 국경을 넘어 지구상의 모든 생명과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비용전가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윤리 문제며 철학적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여전히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이 예방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예방에 사용할 돈으로 현재의 빈곤을 구제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있고 기후변화의 원인인 환경오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선진국들은 예방에 소극적이다.
 
이런 시기에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인식은 반가운 변화다. 지난 7월 시작한 한국판 뉴딜정책은 그린뉴딜과 디지털뉴딜을 두 축으로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의 전환을 목표로 한다. 가장 앞선 시간과 새로운 가치에 기반한 발전모델 제시를 통해 세계 선도국가를 추구하며 사회안전망 확대 및 고용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산업구조의 정의로운 전환을 내세우는 이 정책은 코로나19 위기 이후 필요한 사회변화의 흐름을 잘 반영한다. 그러나 지구적 정의 관점에서 보면 세계 선도국가로서 부담해야 하는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와 책임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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