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처럼 쌓여있던 무선전화기에 시뻘건 불길이 타올랐다. 직원들을 해머로 전화기를 내려쳤다.
1995년초 삼성전자 구미공장 앞에서 벌어진 이른바 '전화기 화형식'은 고 이건희 삼성회장의 대표적인 품질경영 사례로 오늘날까지 삼성안팎에서 회자되는 사건이다. 이 회장은 당시 무선사업부 제품 불량률이 12%에 육박하자 결단을 내렸다. 이 회장은 "소비자한테 돈받고 물건 파는데 불량품을 내놓는 게 미안하지도 않느냐"며 시판 무선전화기와 팩시밀리 등 제품을 전량 수거한 뒤 모두 소각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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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만대 불탈 때 임직원들 부둥켜안고 눈물...독기어린 품질경영 시작━
반도체와 함께 오늘날 삼성의 근간이된 휴대폰 사업 역시 고 이건희 회장의 초일류 정신과 미래를 보는 통찰이 담긴 산물이다. 사이클에 따라 반도체 시황이 약세를 보이더라도 휴대전화 사업에서 만회하며 높은 수익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1명당 1대 무선 단말기를 갖는 시대가 반드시 온다. 전화기를 봐야 한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 이후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1988년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이래 삼성은 초기 수년간 매우 고전했다. 당시 브랜드와 기술력으로는 세계 휴대폰 최강 모토로라의 아성을 무너뜨릴 방법이 없었다. 안방인 국내시장에서도 외면 받았다. 그러자 1994년 이 회장은 "돈은 얼마든지 써도 좋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모토로라 수준의 제품을 내놓으라"고 특명을 내렸다. 이에 '한국지형에 강하다'는 슬로건을 앞세워 애니콜이 탄생했다. 이후 애니콜은 승승장구하며 국내외에서 점유율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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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휴대폰 1위 초석된 '애니콜'…"1명당 1대 무선 단말 시대 온다. 전화기 중시하라" ━
세계 첫 손목시계폰, TV폰, 500만 화소 카메라폰, 가로본능폰 등 초경량, 초소형에 혁신적 기능을 갖춘 휴대폰들을 출시하며 기술의 삼성을 각인시켰다. 2003년 소위 '이건희폰'으로 불린 SGH-T100은 단일모델 최초로 1000만대가 팔렸다. 컬러LCD에 손에 쏙 들어오는 조약돌 모델 디자인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2010년 애플주도 스마트폰 혁명기 잠시 흔들리기도 했지만 삼성전자는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안드로이드 기반 '갤럭시S'를 선보였다. 2012년 애니콜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바톤을 이어받은 갤럭시 시리즈는 이후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렸고 안드로이드 진영의 맹주에 올라섰다. 그 결과 2012년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 매출은 102조원에 영업이익은 8.5조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상반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극도의 부진에 빠졌지만 삼성은 올해도 지난해 수준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다. 영업이익은 1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올해도 갤럭시Z플립과 갤럭시Z폴드2 등 폴더블(접는)폰을 출시하며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애플과 함께 스마트폰 시장에서 양강체제를 형성하고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선도하는 것은 애니콜시절 부터 쌓은 20년 노하우와 역량이 뒷받침한 것"이라며 "오늘날 한국 IT산업이 세계시장에서 당당히 어깨를 펴는 것도 이 회장이 키워낸 애니콜과 갤럭시를 빼놓고서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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