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는 '국감'을 싫어한다[유동주의 PPL]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 2020.10.22 06:10

편집자주 | People Politics Law…'국민'이 원하는 건 좋은 '정치'와 바른 '법'일 겁니다. 정치권·법조계에 'PPL'처럼 스며들 이야기를 전합니다.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의 대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명수(앞줄 가운데)대법원장 등이 감사 개시를 기다리고 있다.2020.10.7. / 사진=이기범기자 leekb@





"마약사범 10~20대 5년새 2배 증가"
"마약사범 10명 중 1명만 재활교육"
"마약사범 인천·경기 전국 1위"
"마약사범 외국인 5년간 1000명 넘었다"

국정감사 기간 쏟아진 '마약사범' 관련 보도들이다. 출처는 여야 의원실이다. 경찰·검찰·법무부·법원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도자료화 것들이다.



통계만 쏟아지는 맹탕 국감…"'부실한 자료'에 통계밖에 쓸 게 없어"


특히 올해 국감에 이런 통계류 기사가 쏟아지는 이유가 있다. 각 의원실에서 보도자료로 낼 만한 특별한 아이템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에도 출근하고 밤을 새 가며 국회 인트라넷 업무망으로 자료를 요구하고 제출된 자료를 살펴봐도 대부분의 보좌진들은 그럴듯한 아이템을 찾지 못했다.

보좌진들이 무능해서일까. 변호사·회계사를 비롯한 전문직과 석박사들도 많이 진출해 국회 보좌진의 전문성은 점점 개선돼왔다.

그럼에도 갈수록 국감은 '맹탕'이 돼 간다. 가장 큰 문제는 행정부가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지 않는 데 있다. 수사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 국회 입장에선 행정부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러다보면 기관장을 앉혀놓고 '호통'밖에 칠 수 없다.

유권자인 국민들은 그 광경을 보고 '무능'한 국회의원이 '호통'이나 친다고 혀를 차겠지만, 그 뒤엔 웃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다. 국회 요구 자료를 제대로 내지 않고 기관장이 의원들에게 호통이라도 들으며 하루 반나절만 대충 때워주길 기대하는 많은 공무원들이 있다.



'맹탕'국감 되길 바라는 공무원들…뒤에서 웃는 이유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고(故) 장준하 선생의 아들, 인혁당 사건 유가족 등 유신시대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사형장을 둘러본 뒤 심경을 밝히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지난 1975년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이 처형된 곳이다. 2015.10.15/뉴스1


일 잘하는 공무원들에게 국회가 왜 간섭이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국감 연혁을 보자. 제헌헌법에서부터 국감이 명시됐고 1949년부터 시작됐지만, 1972년 유신헌법에서 '국정감사권'이 폐지됐다. 박정희 정권이 폐지한 국감이 부활한 건 1987년 9차 개헌때로 민주화 운동의 성과였다.

독재자는 '국감'을 싫어한다. 국감이 필요없다고 여기는 국민 혹은 공무원이 있다면 '독재'를 바라는 셈이나 마찬가지다.

행정부 공무원들은 국감을 싫어할 수 밖에 없다. 자신들을 감시하는 제도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무원이 아닌 일반 국민이 그런 공무원 입장에 매몰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 국감 활동을 폄하한다면 누워서 침뱉기다.




"시할머니가 손자며느리 부엌조사하듯 해야 좋은 국감"


올해는 특히 이재명 경기지사가 과다한 자료요구를 이유로 내년부터 국감을 '사양'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국회'를 무능하게 생각하는 국민 다수의 '포퓰리즘'적 시각에 부응한 발언이다. 마치 지방 공무원들은 정당하고 적법하게 일을 하는 데 국회가 괴롭힌다는 걸로 읽힌다.

"시할머니가 며느리 부엌살림 간섭도 모자라 며느리에게 손자며느리 부엌조사까지 요구하는 격"이라고도 했다. 맞다. 국감은 시할머니가 손자며느리 부엌조사 하듯 해야 한다. 이 지사는 국감 기간 동안 설렁설렁 공무원들이 편하게 지내야 '좋은' 국감인 것으로 이해하는 듯 하다. "새벽까지 자료요구를 한다"며 의원실의 도가 넘은 자료요구 사례인 것처럼 묘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국회의 자료요구는 과거엔 전화나 팩스로도 가능했지만 최근엔 국회 인트라넷으로만 하고 있다.

설령 국회에서 새벽에 요구했더라도 잠자던 공무원을 깨워 자료를 달라고 보챈 것처럼 국민들이 오해하도록 발언한 것은 문제다. 만약 새벽까지 요구했다면 이전부터 요구한 자료를 제대로 제출 안해 독촉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국감 당일 새벽이라면 피감기관과 해당 상임위 의원실은 전날 밤부터 당일 새벽엔 밤을 새듯 준비하기 때문에 양쪽 직원들이 모두 출근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새벽 자료요구'가 특별히 부당하거나 잘못된 행위도 아니다.



(수원=뉴스1) 사진공동취재단 =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9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기도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기도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19/뉴스1




30여년 노하우 쌓여 '맹탕' 국감 만드는 공무원들, 행정부의 조직적 저항


국감이 갈수록 맹탕이 되는 건, 행정부와 소속 공무원들의 조직적 저항이 주원인이다. 30여년간 국감을 하다보니 각 부처와 기관에는 국감을 버텨내는 노하우가 쌓여있다.


문제가 될 자료를 누락하는 법, 국감용 자료를 따로 만드는 법, 자료가 생성돼 있지 않다고 허위답변하는 법 등 다양하다.

국회 자료요구의 양이 많아지는 이유는 공무원들의 단련된 방패를 뚫기 위해 창을 여러 군데 찔러 보는 것과 같다. 강도 높게 대비하는 공무원들이 많은 양의 자료제출시 '실수'를 하도록 유도해 '제대로' 된 자료를 받아내는 것도 국회 보좌진들의 오래된 노하우 중 하나다.

공무원들은 제대로 된 자료요구가 와야 제대로 답변을 한다고 변명하지만, 실제론 국회가 필요로 하는 자료는 어떻게든 내지 않으려 저항한다.

실제로 국감을 바로 앞두고도 요청한 자료를 단 한건도 받지 못했다고 호소하는 상임위도 적지 않다.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자료를 부실하게 그리고 늦게 제출해 의원실에서 제대로 된 분석과 질의를 할 수 없게 하려고 한다.

이런 사정에 대한 이해없이 포퓰리즘적 시각에서 무능한 국회 탓만 하는 건, 감시받기 싫어하는 공무원들이 가장 바라는 바다.



요구자료 제대로 제출도 안 하고 '국회 탓' 하는 공무원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 2020.10.12/뉴스1



피감기관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해야 국회는 이를 분석해 '정책질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들여 자료요구를 해도 '비밀유지' 조항을 들먹이며 달랑 한 쪽짜리 답변서가 날아오는 경우가 많다. 권력기관들은 더 그렇다. 검찰, 법무부, 국세청, 기재부, 감사원, 국정원, 대법원 등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연말정산 통계를 위해 전 부처에 '소속 구성원 전체 급여 및 과세 현황'이라는 '동일한' 자료요청을 하면 다른 부처들은 제출했는데도 소위 '권력기관'들은 제출기한이 지나도 '개인정보'를 내세우며 버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현상이 갈수록 점점 심해진다는 점이다. 국감이 매해 국회 입장에선 더 어려워지는 이유다.

공무원들이 항상 근거로 삼는 '실정법'대로 하자면 '수사나 재판에 영향을 미칠 목적의 요구'가 아니고 '사생활 침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검찰·법원 자료는 모두 제출돼야 한다. '특정 개별과세정보'만 아니면 국세청 자료도 모두 공개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정보, 비밀유지조항, 영업비밀, 국가안보 등 핑계가 갈수록 는다.

국회의 자료요구권은 헌법, 국회법, 국정감사법,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을 근거로 한다. 정당한 이유없이 이를 거부하면 3년이하 징역, 1000만원이하 벌금형 처벌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국회가 '엄포'만 했지 처벌한 사례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 피감기관 공무원들은 국감기간만 버티고 넘어가려 한다.

국감을 하는 이유는 행정부, 사법부에 대한 '국민 통제권' 확보다. '대의(代議) 민주제' 하에서 국민은 자신을 대표할 국회의원을 뽑고, 의원은 국민을 대신해 국감을 한다.

국민을 대표해 국회가 행정부를 감사하는 국감도 없다면, 행정부는 감사원 외엔 감시를 받지 않게 된다. 공무원들은 감사원에 제대로 자료를 안 냈다간 '감사원법'에 의해 바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감사원엔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근 감사원 사정도 전과 다른 듯 하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월성 원전 관련 감사에서 공무원들이 자료를 삭제하고 허위 진술을 하는 저항이 있었다고 국감에 출석해 진술했다.

행정부가 국회를 우습게 생각해 국감을 대충 넘어가려고 자료를 내지 않는 건 심각한 일이다. 그동안 징계나 처벌이 두려워 벌벌 떨던 감사원에 대해서조차 특정 사안에 대해선 조직적 저항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 행정부는 이제 그 누구의 감시도 받기 싫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감'이라는 '소나기만 피해가자'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국회 혐오'라는 포퓰리즘에 기생하고 있다. 국회 의원실과 기관간에 '자료제출'로 인한 마찰이 국회의 일방적인 '갑질'로 알려지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노조가 매해 대표적인 자료요구 사례를 꼽아 언론에 뿌려왔기 때문이다. 올해는 경기도지사가 아예 직접 나섰던 점이 특이할 뿐이다.

(서울=뉴스1) 신웅수 기자 = 최재형 감사원장이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0.10.15/뉴스1




이유없이 자료제출 거부하는 공무원, '법대로' 처벌해야


'이유없이' 자료제출을 거부하는 기관이나 공무원들은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개헌도 필요하다. 지금 상태론 내년이후 국감도 맹탕일 수 밖에 없다.

감사원의 국회 이관은 1990년대부터 여야 할것없이 국회가 요구해 왔던 일이다. 행정부에 대한 '감사 '기능은 국회로 일원화 할 필요에 대해 생각해볼 때다. 동시에 분리국감, 상시국감 도입으로 공무원 부담을 줄이는 대신 실질적인 감시가 되도록 할 필요에 대해서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

본질적으로 국감 자료제출은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 국민의 국회에 대한 불신을 이용해 국감을 거부하려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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