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한국 수소차를 수입한 이유는 뭘까. 석유가 지천인 나라가 굳이 연료도 얻기 힘든 수소차를 산 까닭 말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수소승용차 넥쏘와 수소버스 일렉시티FCEV를 사우디에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명분은 수소 인프라 실증사업을 위해서다.
수입자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다. 아람코는 이를 계기로 수소에너지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아람코는 이를테면 화석에너지 대표인 석유에서 재생에너지로 가는 길목에 에너지 전환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수소에너지 사업에 참여한 것은 수소경제가 탈탄소 사회 산유국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걸 증명한다.
이걸로 보면 재생에너지가 기존 에너지 공룡의 저항에 부딪쳤던 것과 달리 수소에너지는 생태계 내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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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1일 파리기후협약 발효, '탄소제로'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파리기후협약이 발효된다. GDP(국내총생산) 1위인 미국이 지난해 11일 탈퇴했지만 여전히 195개국이 가입해 있다. 연말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도 재가입할 것으로 보인다.
협약 가입국들은 지구 평균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2도'로 유지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절해야 한다. 석유와 석탄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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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원전, 재생에너지…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수소경제━
온실가스 감축은 수소경제 확장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굳이 수소를 통해 탄소를 줄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수소경제가 전례 없는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데 있다.
수소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폐열 또는 석유화학공정 부산물(석유, 나프타)을 활용하는 부생수소와 천연가스에서 뽑아내는 추출수소, 물을 산소와 수소로 분해하는 수전해 수소다. 특히 수전해 수소에 사용하는 전기를 재생에너지로 생산하면 그린수소라 부른다.
부생수소와 추출수소 생산에는 석유와 나프타, 천연가스가 필요하다. 아직 그린수소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수소경제 확대는 산유국에게 도움이 된다. 산유국 입장에서는 수소가 화석연료 이후 주류에너지가 돼야 생존할 수 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측도 마찬가지다. 발전소 인근에 수소생산시설을 설치하면 야간에 버려지는 전기를 활용해 수소를 만들 수 있다. 기존 전기 판매를 방해하지 않고 추가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수소는 '그린수소'라는 말로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례없는 속도로 전세계에서 수소경제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이해관계자의 방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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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부은 정부, 세계 최초 수소발전의무화제도 도입━
에너지 빈국에게 수소경제는 위기이자 기회다. 수소관련 기술을 선점하는 경우 20세기 산유국과 같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 에너지 수입국으로 남는다면 원유보다 비싼 가격에 수소를 사와야 한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한국입장에서는 생산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부가 수소연료전지로 생산한 전력을 구매하는 의무를 부과하는 제도를 만든 것은 안정적인 수요처확보를 통해 수소경제를 키우겠다는 의지다. 향후 20년간 25조원 규모 신규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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