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비율 1:0.35가 정당했느냐를 가를 수 있는 열쇠는 이미 대법원이 갖고 있다.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매수가격 결정 사건이 그것이다. 합병 성사 직후 제기돼 2016년 5월 2심 결정까지 나왔다. 이후 4년 넘게 대법원에 걸려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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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합병비율'에 배신감…법적 분쟁 비화━
이 파트너십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5년 3월쯤이었다. 2014년 12월 제일모직이 상장되면서 시장에 제일모직-옛 삼성물산 합병설이 나돌았고, 옛 삼성물산 주가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일성신약 직원의 특검 진술에 따르면 2015년 3월 윤 회장은 김신 당시 삼성물산 사장, 이영호 부사장과 함께한 골프 모임에서 삼성물산 합병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삼성물산에 손해가 가지 않는 한도에서 합병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2개월 뒤 삼성물산은 1:0.35 합병비율을 발표했고, 윤 회장은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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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 실적부진 의심스럽긴 하다" 검찰이 주목한 문장 ━
재판부는 지금 검찰이 주장하는 이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승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 합병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 옛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아질수록 이 부회장에게 득이 된다는 점은 인정했다. 나아가 합병 당시 상황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와 연관지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옛 삼성물산 주가가 기업가치보다 저평가돼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 원인으로는 2015년 상반기 옛 삼성물산의 실적 부진, 제일모직 상장 이후 불거진 합병설 두 가지를 들었다. 재판부는 "2015년 상반기 건설업 호황으로 주요 건설사들이 주택신규공급을 대폭 확대했으나 옛 삼성물산은 주택신규공급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삼성물산은 "신규 수주는 서울 강남권 등 사업성이 양호하다는 점이 확인된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라며 영업전략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재판부는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카타르 화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한 사실을 2015년 7월28일에 공개한 점도 문제삼았다. 이 공사대금은 2조원으로 옛 삼성물산에 상당한 호재였다. 재판부는 그해 5월쯤 수주를 거의 확정짓고도 7월17일 삼성 합병이 성사된 후에 공개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고 판단했다. 옛 삼성물산 주가가 뜨지 않도록 호재가 될 만한 뉴스를 일부러 늦췄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은 공사 수주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표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점들을 토대로 재판부는 "옛 삼성물산의 실적부진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됐을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에 검찰이 작성한 이 부회장의 공소장은 이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만 재판부의 판단 취지는 '그러한 의심을 할 만하다'는 것이지 '옛 삼성물산의 주가가 조종됐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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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항변 "삼성물산 주가는 시장이 움직인 것…정해준 공식 따랐을 뿐"━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옛 삼성물산의 주가는 누군가의 의도가 아닌 시장의 판단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결론낼 수 있다. 재판부가 제일모직 상장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이 부회장 사건 재판 판도가 변할 수 있다.
삼성은 옛 삼성물산 주가는 시장논리에 따른 결과라는 판단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제일모직 상장 시점으로 돌아가 다시 숫자를 계산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에서 정한 숫자와 공식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출했고 주주들의 동의까지 다 받아 마친 일인데, 이제와서 법이 아닌 다른 기준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법정에서도 이 점을 강력하게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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