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잔 드리고 싶은데

머니투데이 신경수 지속성장연구소 대표 | 2020.10.13 11:52

[신경수의 조직문화]

아는 선배의 소개로 박00 사장을 만난 건 지난해 1월이다. 전문경영인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계시는 그분을 보면서 “정말 높은 업무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분의 직원사랑과 오너회장을 위하는 마음이 동시에 전해져 왔고, 그분의 진심을 느끼면서 더 큰 감명을 받았다.

일취월장 잘 나가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던 그분이 지금 심한 위기에 처해 있다면서, 얼마 전에 긴급한 SOS를 나에게 보내왔다. 일선에서 물러난 회장을 대신하여 지난 5년간 회사의 성장세를 이끌어 온 자신의 권위가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국에서 귀국한 오너회장의 아들 때문이라고 한다. 조직의 간부들이 그 아들 쪽에 줄을 서면서 사장의 지시가 현장에서 제대로 먹혀 들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사장이 A기업과 인연을 맺게 된 건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고위 임원으로 퇴임한 그를 평소 눈여겨봐 오던 A기업의 회장이 스카우트한 것이다. 박 사장의 업무스타일이 워낙 깔끔하다는 소문이 A기업 회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마침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때라 자신이 키운 회사를 맡아서 경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박 사장이 들어오고 회사는 큰 전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과거에 비해 3배, 5배 성장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던 박 사장이 움찔 자신의 주변상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회장의 아들이 미국에서 귀국하고 바로 자신의 아버지가 만든 회사에 입사한 것이다. 대기업 생활을 하면서 오너일가의 영향력에 대해 그 누구보다 많은 체험을 한 박 사장은 오너 아들의 회사 입사에 긴장과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신제품 Q를 미주시장에 출시함에 있어서 박 사장과 회장의 아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했다. 기존 거래처를 활용하고자 했던 박 사장의 생각에 회장의 아들이 반대를 한 것이다.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유통라인을 확보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낳을 수 있다며 직판대리점 개설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고래등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둘의 기싸움에 혼란에 빠진 건 직원들이었다. 둘 사이에 벌어진 의견대립, 그리고 간부들이 하나둘씩 회장의 아들 편에 서기 시작했다는 말이 조직 내에 돌면서 일반직원들 사이에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모두가 손에서 일을 놓은 채 서로 간에 눈치만 보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아래의 도표는 지난해 9월, 오너경영과 전문경영에 의한 회사 운영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한 설문의 결과다. 수치에서 보여주듯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오너’라는 단어에 상당한 압박을 느끼고 있음이 확연히 드러난다.


위와 같은 이런 저런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박 사장을 만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그분이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나버렸다는 소식이 날라왔다. 그분 정도의 능력이면 그리 오래 낭인(浪人) 생활을 하지는 않겠지만, 다시 또 새로운 무대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심적 고통이 적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5년이라는 기나 긴 시간을 함께 보낸 직원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크다고 하니 안쓰러운 마음만 들 뿐이다. 지금 눈 앞에 있다면 “힘 내시라”고 소주 한 잔 건네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연락이 닿지 않으니 안타까움만 더해간다.

-신경수 지속성장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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