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 시행을 맞아

머니투데이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 | 2020.10.08 05:40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에 붙이는 아로마 패치를 받은 나는 망설이다가 집안 한쪽 구석에 밀어 두었다. 피톤치드 효과가 있다는 사무실 한 켠의 소품을 볼 때마다 상쾌함을 느끼기 보다는 일말의 불안을 느낀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그렇게 나의 일상을 변화시켰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내 자신을 위해 애써 정성을 기울인 마음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독이 돼 피해를 입었으니,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겪었을 고통과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모든 자원을 동원해 피해자가 사건 발생 이전과 가장 가까운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공동체에 주어진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17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현재까지 약 3000여명이 피해자로 인정받았으나 법령으로 정한 질환에 한해서 구제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피해자에 대한 지원 금액도 가해자의 위법성과 피해자의 손해에 상응하는 책임이라고 보기에는 형편없이 적은 것이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를 이원화해 피해자 간의 차별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한계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정된 특별법이 지난달 25일부터 시행됐다. 개정법은 피해 구제 범위를 확대하고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한 제도를 도입했다. 건강 피해 질환을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발생하거나 악화 된 생명 또는 건강상의 피해’로 포괄적으로 규정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의 범위를 확대했다.

요양생활 수당의 지급범위를 넓혔으며, 장해급여를 신설해 질환이 치유된 후 신체 등에 장해가 발생한 경우 장해급여를 지급할 수 있게 했다. 개정법은 가습기 살균제 건강 피해 사망자에게 지급하는 특별유족 조위금액을 약 4000만 원에서 1억 원까지로 높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의 위법행위와 피해자의 손해에 상응하는 금액으로 보기에 미흡한 것이지만 이는 특별법이 갖는 한계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는 대규모 피해가 발생한 환경 대재앙 사건에 대해 국가가 자발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온전한 피해를 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으나, 특별법은 다른 법과의 형평성, 가해 기업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한 보충적 성격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에 비해 충분한 배상금을 담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그 대신 개정법은 피해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에게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인과관계의 추정요건을 완화했다. 즉,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실, 노출 후 질환이 발생·악화되고, 노출과 질환 간의 역학적 상관관계가 확인된 경우 등 3가지 요건을 입증하면 기업이 반증하도록 요건을 완화한 것이다.

개정법은 또 가습기 살균제 사업자에게 증거가 편재돼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료제출명령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명령하면 사업자는 피해의 증명 또는 손해액의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영업비밀 또는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이를 거부할 수 없다.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노출과 질환 간의 역학적 상관관계 입증을 위한 연구를 강화하고 소송에 활용하기 쉽도록 연구 결과를 공개할 계획이며, 변호사와의 상담도 지원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겪어야 하는 소송과정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기에 마음 한 켠에서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사실이다.

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기 위해서는 현행법의 틀 안에서 법원의 적극적인 해석과 환경부의 소송지원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수많은 피해자들의 희생 속에서 특별법의 개정이 이뤄진 만큼 법 개정의 취지가 온전히 반영되는 피해자 구제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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