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조항을 두고 재계의 우려가 크다. 해외에서도 입법 사례가 없는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정치권에 대한 원초적인 실망감이 터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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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특수상황 '재벌개혁' 때문이라지만…━
도입 취지는 그동안 최대주주의 입맛에 맞는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감사 기능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과 일부 야당은 '재벌'이라는 한국의 특수상황을 감안할 때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안이라는 입장이다.
개정안 처리를 주도해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사회의 구성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도록 길을 열어야 이사회가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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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기업 중 29곳, 투기자본에 노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개정안 시행 이후국내 시가총액 상위 30위 기업 가운데 최대 29개사의 이사회에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감사위원을 진출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삼성전자의 경우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21.2%에 달하지만 감사위원 선출 땐 의결권이 3%로 제한된다. 반면 해외 기관투자자인 블랙록, 뱅가드, 캐피털리서치앤드매니지먼트, 노르웨이 은행투자운영위원회 등 4곳의 지분만 합해도 의결권이 10%를 넘는다.
해외 투기자본이나 경쟁사가 '의도'를 갖고 손을 잡으면 삼성전자나 현대차 감사위원으로 중국 경쟁사 인사나 2006년 KT&G 먹튀 논란을 일으켰던 헤지펀드 칼아이칸 같은 '기업 사냥꾼'이 진입하는 경우를 배제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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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보고·회계장부 열람 '권한 막강'…해외서도 입법사례 없어━
유정주 전경련 기업제도팀장은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정부 기대와 달리 외국 투기자본이나 경쟁사가 국내 기업의 이사회를 장악하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며 "핵심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기회가 되거나 먹튀 논란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주 권한 강화에 민감하고 이를 활용한 투기자본이 일찌감치 발달한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에 신중한 것도 이런 우려 때문이다. 해외에서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를 입법한 사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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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견제 불똥에…중견·중기 '전전긍긍'━
중견기업연합회 관계자는 "시장의 관심이 크고 내부 방어시스템도 탄탄한 대기업보다 중견·중소기업이 외부 세력의 표적이 될 우려가 크다"며 "가뜩이나 취약한 중견·중소기업 생태계가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0대 국회(2020년 5월30일~2020년 5월29일)까지는 국내 정치권에서도 이런 문제 때문에 대체로 감사위원 분리선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상법을 담당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간사를 맡았던 김진태 전 의원은 "감사를 그냥 내주고 세계 기업의 파고를 헤쳐나가라는 것이냐"라며 법안을 반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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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독립성 강화 땐 방어장치도 보완해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동기를 놔둔 채 결과만 갖고 규제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며 "합리적인 대안은 무엇인지, 예상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검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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