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정기국회를 맞았지만 양보와 타협은 없다. 힘으로 누르고 오기로 받아치는 구도가 고착화되고 있다. 상대를 경쟁자가 아닌 적으로 본다. 극단적 진영대립이 합리적 대결을 삼킨다. ‘늘 지금이 역대 최악’이라는 자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제21대 국회는 초선이 151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인물이 바뀌어도 타락한 진영의식은 극복되지 못했다. 민주화를 달성한 87년 체제 이후 총선 9번, 대선 7번을 치렀다. 총선 때마다 40% 이상 물갈이하고 보수와 진보가 거듭 정권교체를 이뤘지만 ‘누가 해도 똑같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적어도 깨끗할 것 같았던 진보는 ‘조국·윤미향·추미애’ 논란을 거치며 도덕성과 공정 가치에 치명타를 입었다. 최소한 능력은 우위라고 여겨지던 보수는 탄핵당한 무능 정권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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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도 보수도 ‘부패하고 무능하다’…수렁으로 빠지는 정치━
4차 추경(추가경정예산) 처리 과정도 민망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사태를 맞아 재정과 복지 전반을 아우르는 중장기적 대책을 깊이 있게 따지기는커녕 통신비 2만원을 누구에게 줄 것이냐로 논쟁하는 게 우리 국회 수준이다.
국무위원 한 사람을 놓고 국회의원들이 대놓고 옹호하거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공방이 계속된다. 심지어 국민이 사살당한 중차대한 안보문제를 놓고도 ‘냉전 본색을 드러낸다’ ‘김정은에게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느냐’로 진영싸움을 벌인다. 지난 4개월여간 대한민국 국회에서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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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위기’…“위기가 아니라는 게 진짜 위기”━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와 진보진영은 공공성을 회복하라는, 진영을 극복하라는 광장의 명령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이상의 진영논리로 재빠르게 돌아갔다”며 “촛불민심을 진보의 승리로 착각한 데서 위기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위기의 본질에는 위선이 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현 정부는 부동산 문제가 지지율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기까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며 “정의와 평등, 공정을 부르짖지만 정작 집권한 후에는 최우선정책이 아니라는 경험을 사람들이 하면서 진보에 대한 신뢰의 위기, 진정성의 위기가 생겨나고 있다”고 밝혔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보수가 무너질 때도 똑같았는데 속으로 곪고 있는데 위기가 아니라고 하는 게 진짜 위기”라며 “문제는 더불어민주당 내에 레드팀(쓴소리를 내는 역할), 또는 비주류가 안 보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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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자격’…“핵심은 미래 비전”━
전문가들은 보수가 국정운영 자격을 인정받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과거와의 확실한 단절, 지도자 양성을 꼽았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보수가 새로 태어나려면 당명을 바꾸는 것보다는 ‘박근혜 탄핵’에 대한 대국민사과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 리더십이든 정책이든 방점은 미래에 찍혀야 한다. 박명림 교수는 “자꾸 과거의 인물과 정책으로 돌아가려는 것은 자폐적 선택에 불과하다”고 했다.
미래에 집중해야 해법도 열린다. 진보, 보수 모두 마찬가지다. 미래를 논쟁할 통찰력과 실력이 없으니 수십 년째 친일파, 빨갱이로 서로를 공격한다.
이런 정치는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해악이다. 파이를 키우지 못하고 약탈만한다. 장덕진 서울대 교수는 “K-방역만 해도 이를 계기로 어떻게 과학기술과 의료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숟가락을 얹을 까 궁리하는 것만 눈에 보인다”며 “진보든 보수든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현재 가진 것을 털어먹으려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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