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절멸(아주 없어짐)'의 순간이 가까워 왔다. 이유는 이랬다. 열 중 넷이 인간, 나머지 여섯은 인간을 위한 가축이었는데, 그마저도 성에 안 찬 모양이었다.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피했더니 쫓아왔고, 숲을 불태웠고, 약탈했고, 욕심을 부리더니만 기어이 코로나19란 것에 걸리고 말았다. 새로운 전염병의 75%, 알려진 전염병의 60%는, 그들이 동물에게 간 탓에 창궐한 거였다.
그러니 코로나19는 이제 시작, 그들은 더 많은 희한한 질병을 맞을 터였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그게 멸망 아니겠는가. 그러나 인간은 쉬이 깨닫지 못했다. 마스크를 쓰고, 소독하고, 백신이 어쩌고 하면서도 그 근본 원인은 생각지 않았다. '왜 인간은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그 중요한 물음은 영 까먹어버린 모양이었다.
동물들은 억울하고 속이 터졌다. 할 말은 많으나 인간의 언어를 못해서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온종일 이어지고도 남았다. 그중 일부만 소개토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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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제게 오라고 했나요?━
우선 동물들은 이걸 알아달라고 했다. 질병이 생긴 건, 자기들 잘못이 아니라는 걸.
박쥐 : 저보고 코로나19 바이러스 원인이래요. 혐오한대요. 저는 5000만년 전에 이미 이 모습이었는데요. 그리고 인간에게 다가간 적이 없어요. 그들이 제게 왔지요. 그 뒤로 많은 것이 파괴되었어요. 애정을 가진 고향을 떠나야 했어요. 종족의 곁을 떠나야 했고, 본성을 거슬러 환한 대낮에 있었고요. 인간은 책임 전가의 왕입니다.
멧돼지 : 정말 공감합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 아시죠? 저희보고 그 원흉이래요. 호되게 당한 건 오히려 우리인데요. 그러더니 온갖 숲을 들쑤시며 쏴 죽이더이다. 인간이 도토리며 먹을 걸 다 싹쓸이해놓고, 배고파서 내려가면 또 '탕탕' 주저 없이 쏘고. 심지어 돼지열병이 없어도 사냥꾼을 매년 보냅니다. 수를 조절한다고요.
병들지 않고 배길까요? 인간을 위한 세계에 수천만 마리의 저희가 살지요. 태어나고, 꼬리가 잘리고, 이빨이 뽑히고, 갇히고, 먹고, 자라고, 빨리빨리. 딱 저만한 크기의 오물더미 감옥에 갇히고, 더러워지고, 수없이 주사 맞고, 항생제로 이루어지고, 쇠창살을 물어뜯고. 이윽고 옮겨지고, 실려 가고, 놀라고, 울고, 죽임당하고, 분리되고, 썰리고, 비닐에 담기고, 냉동되고, 먹히고요.
때때로 저희는 개와 고양이를 위한 사료가 됩니다. 서로 친해 보이는 그들 사이 우정은 더 나은 걸까요? 그 또한 굴절과 왜곡이진 않을까요? 죽어가면서도 참 궁금합니다.
그런데 무섭다고 경계하고 인간을 위협한다고 탓하고요. 돌을 던지고, 등산용 지팡이로 찌르고요. 피부를 벗겨 가방과 구두를 걸치어 다니고, 애완 대상으로 좁은 수조에 가둬 장난감 다루듯 희롱하고요.
그런 걸 볼 때, 저는 목소리도 없으면서 비명을 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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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저희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 합니다━
양: 거꾸로 매달린 채 커다란 가위에 발목이 잘리는 꿈을 꿨어요. 똑, 똑, 똑, 똑 인간은 제 발목을 하나씩 잘라내고요. 저의 어머니는 산 채로 가죽이 벗겨져 고통에 눈멀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요. 털만 깎고 오겠다던 제 친구는 온갖 곳이 찢기고 멍들어 쓰레기처럼 버려지고요.
제 주둥이를 틀어 막은 채 질질 끌고 갔지요. 발버둥 치는 제가 정신을 잃을 때까지 발길질을 하고요.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서는 털을 깎아내고, 가죽을 벗겨내고, 거꾸로 매달아 목을 갈라 피를 쏟게 하고. 똑, 똑, 똑, 똑, 수북이 쌓인 발목들. 섬세하고 귀한 제 피부는 당신의 가방이 되고, 고소하고 부드러운 제 살은 당신의 식탁에 오르고.
인간은 제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합니다. 인간은 제가 생명이란 걸 잊은 듯합니다.
신이 보낸 관찰자인 저희는 오늘도 인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가깝게 지내는 것도, 관찰하는 것도 지쳤습니다. 그래서 이젠 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이제 저희 임무를 해제 시켜주세요. 잔혹한 인간들을 말없이 보는 것은 너무나 힘듭니다. 그래도 아직 희망이 있을까요?'
닭: 인간들이 K-푸드라 애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치맥에 치킨, 닭입니다. 우리도 엄연한 생명인디, 물건 찍어내고 공장에 가둬두고 기르고 죽이고 기르고 죽이고 찍어내고 찍어내고 찍어내듯 마구 만들어 잡아 먹는 닭입니다.
수백 마리, 수천 마리, 한곳에 다다다닥 가둬두고 병이라도 번질라치면 학살을 일삼더이다. 산채로 파묻고, 찔러 죽이고, 태워 죽이는 일은 그만하라고 이 자리서 말합니다. 코로나 씨팔! 십구 번진다고 인간을 다 잡아 죽이겠습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야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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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눈물이 10cc에 350만원, 특별 할인이란다━
반달가슴곰: 오래 살고 싶답니다, 병든 저희 쓸개를 먹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엔 웅담만한 게 없다면서요. 코로나를 이기려면 저희를 먹어야 한다고 신나게 떠들어대고요. 쓸개즙이 10cc에 350만원, 5cc에 175만원이라고요. 제 피눈물이 특별 할인이 되었답니다. 현장을 찾는 손님에겐 제 혀와 발을 맛볼 영광도 주어진답니다.
그걸 위해서요. 저희 엄마가, 제 새끼가, 제 동료가 눈앞에서 올가미에 질질 끌려갔습니다. 눈앞에서 쓸개를 적출당하고 혀를 잘리고 발목이 잘렸습니다. 그걸 다 지켜보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고통이었어요. 대체 어찌하여 그리 잔인할까요. 그렇게 해 얼마나 행복해지려는 걸까요.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신이시여, 저의 죄는 무엇입니까. 왜 저는 인간에 의해 바이러스 숙주로, 고기로, 커피똥 기계로, 고통과 두려움 속에 죽어가야 합니까.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크릴새우 : 헛소문이 돌았습니다. 제 몸에서 뽑아낸 기름이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요. 한국에선 매년 저를 수만 톤씩 잡아들이더니, 기어코 세계 3위가 되더군요. 평범한 물고기 기름인데, 인간들은 다른 기름이 얼마든지 있는데, 저를 먹지 않고도 얼마든 살 수 있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추운 남극의 펭귄, 바다사자, 물개, 물고기, 고래, 오징어, 바다새는 제가 꼭 필요합니다. 날씨는 더워지고, 얼음은 계속 녹고, 1970년 이래 저는 80%나 줄었습니다. 이대로면 멸종하겠지요. 그러면 남극의 모든 생물들도 굶어 죽을 겁니다. 그들에게 양보할 순 없는 걸까요.
소: 올해는 비가 정말 많이 왔어요. 제 짧은 우생에서 축사 밖을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빗물이 축사로 가득 들어와 죽을힘을 다해 탈출했어요. 살고 싶었어요. 필사적으로 헤엄을 쳤어요. 전 흙탕물 속을 헤엄치다 물을 피해 높은 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어요. 해발 531미터까지 올라갔어요. 그냥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저 멀리 인간들이 몰려와요. 저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대요. 제게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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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야기는, 창작집단 '이야기와 동물과 시(이동시)', 생명다양성재단이 기획한 '절멸- 질병 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을 다시 구성한 것입니다. 주옥 같은 전문은 이동시 SNS(@edongshi)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엔 작가 30명이 참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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