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살해' 누명 벗은 금오도 아내 사망 사건…살인 무죄 확정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 2020.09.25 04:45

[theL] 선착장서 굴러떨어진 차량에 갇혀 아내 사망…'17억 보험금' 노린 살인 의심받아

/사진=뉴스1

"어떡해요. 가라앉아요. 잠겨요."

남편과 함께 여수 금오도로 여행을 왔던 A씨는 119에 보낸 구조요청을 끝으로 숨지고 말았다. A씨가 타고 있던 남편의 제네시스 차량이 선착장에서 바다로 굴러떨어지면서다.

남편은 우연에 우연이 겹친 사고라고 했다. 사고 당시 남편은 차량 밖에 있었다. 후진하다 뭔가에 부딪힌 것 같다며 차에서 내린 상태였다. 남편은 차를 세워둔 곳에 미세한 경사가 있는 줄 몰랐고, 실수로 차량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려 사달이 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건에 얽인 '우연'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남편은 전과 때문에 취업이 쉽지 않았고, 1억원이 넘는 빚을 져 개인회생까지 신청한 상태였다. 전처와 낳은 세 남매에게 매달 100만~200만원의 생활비를 보내야 했다.

남편은 휴대폰 메모에 "가난을 물려주지 말자"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자녀들에게 경제적 어려움을 내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버스기사 일을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회사가 폐업하면서 벌이가 끊겼다. 그러다 보험설계사로 취직했고, 자주 다니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A씨를 알게 됐다.

유부녀였던 A씨는 곧 이혼하고 나흘 만에 새로 혼인신고를 했다. 연락처를 알고 교제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 남편은 A씨와 교제를 시작할 때쯤 스포티지에서 중고 제네시스로 차를 바꿨다. A씨가 전 남편과 이혼 직전 별거하는 동안 원룸 보증금과 월세를 대신 내주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다.

남편은 교제하면서 A씨를 자기 회사 보험상품에 가입시켰다. 회사에서 인수할 수 있는 사망담보 10억원을 하루 만에 모두 채우는 내용이었다. 증인으로 나온 보험업 관계자는 "잘못된 계약은 아니지만 신상품이 나오더라도 추가로 계약을 체결할 수 없어 고객에게 불리한 계약이고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증언했다.

혼인신고 후 남편은 A씨 보험계약의 수익자를 자신으로 변경했다. 아직 A씨 가족들에게 인사조차 마치지 못한 상황에서 보험계약부터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수정한 것이다. 처음부터 보험금을 노리고 A씨에게 접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우연'이었다.

남편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일 남편과 A씨는 저녁식사 후 차 안에서 성관계를 하려고 한적한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인적이 없는 곳은 아니어서 다시 자리를 옮기기로 했고, 그러다 도착한 장소가 사고 현장인 선착장이었다. 성관계를 도중 A씨가 몸에 이상을 느껴 민박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고, 차를 돌리려고 후진하던 중 뭔가 부딪히는 느낌이 나 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바다로 굴러떨어졌다는 것이다.

1심은 17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 맞다고 보고 남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남편의 경제적 상황, A씨와 교제과정과 사고경위 등을 볼 때 계획살인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A씨 지인은 법정에서 A씨로부터 "남편이 자녀가 셋인데 전처에게 5억을 주고 데려왔다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외에 개인회생까지 신청한 남편이 제네시스 차량을 구입한 것, A씨 원룸 보증금까지 내준 것 등을 보면 경제력을 부풀려 A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이다.

사고경위도 의심스럽다고 봤다. 남편 증언에 따르더라도 남편이 내릴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던 차가 갑자기 굴러떨어졌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남편이 차를 밀어 떨어트린 것이라는 검찰 주장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남편은 비극적인 사고로 아내를 잃었을 뿐이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리고 2심은 살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사건을 우연한 교통사고로 보고 금고 3년을 선고했다.

2심은 문제의 선착장에 직접 현장검증을 나갔다. 경사로 여러 지점에 제네시스 차량을 중립 기어로 세워놓고, 남편 주장처럼 차량이 갑자기 움직일 가능성이 있는지 실험했다.

그 결과 남편이 후진 중 부딪혔다는 추락방지용 난간으로부터 1~1.2m 떨어진 지점에서 남편이 주장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운전자가 내릴 때까지 움직이지 않다가, 조수석에 탑승한 사람이 상체를 들어올리자 경사면을 따라 움직인 것이다. 이는 1심 판단을 뒤집는 결정적인 근거가 됐다.

계획범행으로 보기에 허술한 면이 있다는 점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남편이 A씨를 살해하려 했다면 A씨가 차에서 탈출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차량 문이 잠겨 있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또 2심은 남편이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범행을 결심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 고정적이지는 않았지만 버스기사와 보험설계사 등을 하면서 꾸준히 수입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 상고심을 맡은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24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만 유죄로 인정하고 살인 혐의는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A씨가 사건 2개월 전 남편의 권유로 보험계약을 새로 체결해 사망보험금이 대폭 늘어난 점, 수익자가 모두 남편으로 변경된 점, 사고 당시 기어가 중립 상태에 있었고 사이드브레이크가 잠기지 않았던 점 등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남편이 A씨만 탑승하고 있던 승용차를 뒤에서 밀어 바다로 추락시켰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직접적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남편이 기어 조작 실수를 저질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A씨의 사망이 남편의 고의적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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