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지사가 촉발한 소위 '지역화폐 논란'에 당사자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이 소명 자료를 작성해놓고 공개조차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력 대선주자인 이 지사를 비롯해 여권 인사들이 줄줄이 국책연구기관을 맹공격하자 변명도 못하는 모양새다. 입맛에 맞지 않는 연구결과를 '적폐'로까지 몰아가는 분위기에서는 전문가 집단이 정부 정책에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지적이다.
━
조세연, 소명자료에서 "100만원 쓰던 가구, 지역화폐 20만+현금 85만이면 순증가 5만원뿐" 반박━
소명자료에는 조세연의 입장이 8페이지에 걸쳐 정리돼 있다. 핵심은 제대로 된 비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화폐 도입으로 인한 순수한 경제적 효과는 지역화폐를 이용했을 경우(A)와 지역화폐가 존재하지 않아 일반적인 현금·신용카드를 이용했을 경우(B)로 나눠 두 경제효과의 차액(A-B)을 계산해야 한다는 논리다.
조세연은 소명자료에서 2018년에 나온 경기연구원 자료 등을 거론하며 "선행연구는 모두 (A)를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로 분석한 문제점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누구나 이해할만한 예도 들었다. "한 달 평균 100만원을 지출하는 가구가 지역화폐 도입 이후 20만원을 지역화폐로 그리고 85만원을 현금으로 지출한다면 지출의 순증가는 20만원이 아니라 5만원이며, 15만원의 지역화폐 지출은 현금지출을 대체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지역화폐 발행이 다양한 시장 기능 왜곡을 발생시킨다는 측면에서 지역화폐를 통한 간접지원이 아닌 어려움에 처한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지원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으며 이러한 방향에서 정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골목상권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를 발행하더라도 온누리상품권으로 하거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발행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 요구된다"고도 했다.
아울러 내년 예산안에 지방정부의 지역화폐 발행 지원 예산에 1조8000억원이 책정됐다는 점을 상기하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지역사랑상품권 할인 발행 예산을 효과적인 수단의 재원으로 전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조세연 "2019년 데이터 나오면 또 연구한다"…여당, 연일 조세연 비판━
그러나 이 소명자료는 공개되지 못했다. 조세연 관계자는 통화에서 "외부 논란에 대해 내부적으로 정리한 자료"라며 "연구기관일 뿐인데 일일이 대응하다가 더 큰 (정치적) 논란이나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서 공개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지역화폐 정책을 적극 추진해온 이 지사는 조세연을 향해 "얼빠진 국책연구기관" "적폐" 등의 표현을 쓰며 강하게 비판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17일 당 회의에서 "지역화폐가 코로나19(COVID-19)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이 지사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20일에는 여당 중진인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페이스북에서 조세연의 논리를 겨냥해 "대형마트와 복합 쇼핑몰이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재벌 유통사의 논리와 꼭 닮아 있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은 전문가의 연구조차 정치적 입장에 따라 재단한다고 비판한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전문가의 분석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지자체장이 보고서를 쓴 전문가를 비난하고 위협하면서 지역화폐 효과 여부보다 훨씬 더 심각한 우리 정치의 고질적 문제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장성민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은 "문제는 자신의 정치적 의도와 생각이 다른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이유로 조세연 연구진을 향해 협박성 발언을 한 이 지사의 신군부와 같은 독재적 행태"라며 "협박 리더십은 민주주의 리더십 자질이 아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