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기득권의 일탈에서 구하소서[광화문]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 2020.09.15 11:43
#코로나19(COVID-19)가 재유행하는 와중에 벌어진 의사파업은 의료현장을 뒤흔들어놨다. 한시가 급한 암환자를 비롯해 많은 환자가 치료나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해 큰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응급실을 전전하다 환자들이 숨을 거두는 안타까운 사고까지 발생했다. 필수의료인력까지 빼가며 파업하는 의사들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불안과 실망을 넘어 공포와 분노를 느꼈다.

의사가운을 벗고 거리로 나선 이유가 국민건강권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정작 20여일간 국민건강권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자신들이 내세운 명분을 스스로 뒤엎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파업에 앞장선 한 전공의는 전권을 위임받은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여당과 의정 합의를 맺은 지난 4일 대한전공의협의회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이렇게 적었다. “비록 그럼에도 병원과 또 아픈 환자들의 곁을 떠난 저희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파업의 변을 달았지만 거기서 그쳐야 했다. 스스로 밝혔듯이 의사가 환자를 저버리는 일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는 일'이다.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누군가에게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국민에겐 상식이자 믿음이 된 지 오래다.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에 반발해 파업에 나선 의사들이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도 이 같은 상식과 믿음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엘리트 전문가집단에 기득권의 삶을 보장하는 것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써달라는 의미다. 특히 의사는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숭고한 직업이다. 다른 전문가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과 책임감이 요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사파업은 지난 9일 전공의들의 복귀로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이 안정될 때까지 문제 해결을 미뤘을 뿐이다. 정부·여당과 의협은 의정합의를 통해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중단하고 코로나19가 안정된 후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원점에서 재논의하기로 했다. 의료계가 정부의 의료정책 자체를 강하게 반대해 앞으로 협의 과정에서 파업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아직까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 거부 사태는 또 다른 불씨다. 당장 의협과 대전협은 정부가 의대생 구제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 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정부는 그러나 추가 응시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재응시 기회를 2차례나 줬는데도 의대생들이 거부한 데다 지금도 여전히 재응시 의사를 직접 밝히지 않아서다. 이들이 재응시 의사를 밝힌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국민 여론을 감안하면 정부가 쉽게 추가 구제책을 내놓기도 힘든 상황이다.

#지금 의료계가 할 일은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는 것이다. 상식선을 뛰어넘는 기득권은 내려놓고 국민 눈높이로 돌아와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물론 사용자 등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필수의료 분야를 육성하면서 지역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초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 마련에 의료계가 앞장서야 한다.

우리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배 가까이 많은 독일이 최근 의대정원을 50%(약 5000명) 늘리기로 결정하고 의료계가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 이유가 무엇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익은 정책으로 빌미를 제공한 정부도 의료계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책의 내실을 다져야 한다.

아울러 의대생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대승적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국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재응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의협, 대전협 등 선배 의사들도 파업으로 정부를 압박할 게 아니라 이들을 먼저 설득하고 국민들에게 구제 기회를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게 꼬인 실타래를 푸는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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