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생략된 비밀들이 참 뾰죽뾰죽하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20.09.05 07:07

<216> 금시아 시인 ‘입술을 줍다’


2014년 ‘시와 표현’으로 등단한 금시아(1961~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입술을 줍다’는 삶과 죽음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차츰 익숙해지고”(이하 ‘시인의 말’), “자연스러워”지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죽음이 ‘삶의 끝’이 아닌 ‘삶의 곁’이란 인식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없애주고, 삶을 더 평안하게 해준다. 죽음을 삶 가까이 들인 이후 사유와 행동 그리고 시가 더 깊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영춘 시인은 “금시아 시의 매력은 삶의 궤적과 사물의 원리를 천착하려는 데 있다. 나아가 사물의 이치, 삶의 궁구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집요하게 분석하고 직조해 낸다”면서 “그것은 곧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근원적인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려는 시 정신”이라고 첫 시집을 평했다. 또 “사물의 이치나 삶의 미학을 원형심상에 접근하여 천착해 내려는 노력은 부단하다 못해 치열하다”고 했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시집은 첫 시집의 맥을 이으면서 사물에 대한 통찰, 삶과 죽음의 사유, 시 정신이 한층 치열해지고 깊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오래된 용성성당에 핀 찔레꽃과 흰나비 떼를 “고독한 군중”에 비유한 시 ‘5월의 전략’, 어항의 말(沫)을 “혀의 말”과 집 떠난 아이들의 “바쁘다는 말”로 중년의 고독을 표현한 시 ‘나스자말’ 등 거의 모든 시에서 이런 정황이 포착된다. 금시아의 시는 사물에 대한 관찰이 묘사와 이야기(진술)를 만나 파장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 사람을 묻고 우리는
여러 명의 동명을 나누어 가진다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데, 그러나

그러나 어떤 이는 벚꽃들이 동행하고, 누구는 첫눈 가마를 타고 가고 흰나비 떼 날거나, 무지개다리를 놓거나, 동백꽃들 뚝뚝 자절하거나, 은행잎들 노란 융단을 펼치거나

장대비 속에서 한 사람을 묻는다

장례를 마친 사람들,
장대비에게 악수를 건네고 죽은 사람의
입주를 부탁한다

죽은 사람은 저를 가져간 사람 속에서
모르는 사람인 듯 숨도 없고
무서움도 없이 거처하다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슬어놓은 망각 속에서 흙이 될 것이다

장대비에 한 사람, 눅눅해진다

문득, 마음을 뒤집어보면 계절 지난 호주머니에 잘 접혀 있는 지폐처럼 뜻밖에 펼쳐지는 사람,

꽃 한 송이 놓인 무덤들
빵 굽는 냄새처럼 산 사람들 속에 여럿 있다

- ‘죽은 사람을 나누어 가졌다’ 전문

먼저 여는 시 ‘죽은 사람을 나누어 가졌다’를 살펴보자. 누군가가 죽었다. 하필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한 사람을” 땅에 묻는다. 영원한 이별이지만 다들 덤덤하다. 다만 벚꽃 핀 봄날이나 첫눈 내리는 날, 동백꽃이나 은행잎 지는 날이 아닌 장대비가 내리는 날씨를 아쉬워할 뿐이다. 산 사람들은 죽은 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죽은 이는 “모르는 사람인 듯” 눅눅해진다.

죽은 사람은 흙 속에서 “무서움도 없이 거처하다”가 “슬어놓은 망각 속에서 흙”으로 돌아간다. 산 사람들도 죽은 사람을 서서히 잊는다. 그러다 “계절 지난 호주머니에 잘 접혀 있는 지폐처럼” 문득 생각나 “꽃 한 송이” 들고 무덤에 찾아간다. 봉긋봉긋 솟아 있는 무덤들이 빵처럼 보인다. “빵 굽는 냄새처럼” 죽음은 산 사람들 가까이 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서로 말 섞으며 한 버스를 기다리는 일”(‘끝말잇기’)도 흔하디흔하다.

돌을 주웠다
새의 한쪽 발이 빠져 있는,

새의 한쪽 발을 얻었으니
돌은 두근거렸을 것이다
심장은 파드득
날아갈 꿈을 꾸었을 것이다
분명 돌이 물렁물렁하던 시절이었을 테지
발을 하나 놓고 간 새는 절뚝거리며
어디쯤 날고 있겠다

새의 한쪽 발은
무심코 길에서 차버렸던
풀숲에서 뱀을 향해 던져버렸던
아니면, 하릴없이 물속에 던져 잃어버린
나의 한쪽 신발이 아닐까

두근두근 꾸었던 나의 꿈
그 꿈 어디쯤에서 한쪽 날개를 잃어버리고
나는 절름발이 새일까

새도 죽을 때는 돌처럼 부서지겠지
돌이 쩍 하고 갈라진다면
저 발은 날개를 달고 비상하겠지
돌을 닦는다
돌 틈 어디에서 외발을 씻거나
공중을 절뚝거릴 새의 발을 닦는다

돌 속의 새 발자국,
생략된 비밀들이 참 뾰죽뾰죽하다

- ‘돌 속의 새’ 전문

시 ‘죽은 사람을 나누어 가졌다’가 삶과 죽음의 친근성과 유사성을 다루었다면, 시 ‘돌 속의 새’는 합일성과 회복성에 주목한다. 시인은 새 발자국이 찍힌 돌을 줍는다. 돌을 손에 들고 들여다보던 시인은 돌의 심장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상상한다. “새의 한쪽 발을 얻었으니/ 돌은 두근거렸을 것”이라고. 새의 두근거림과 달리 한쪽 다리를 잃은 새는 불행해진다. 뒤늦게 새의 불행을 눈치챈 돌도 덩달아 불행해진다.

“물렁물렁하던 시절” “절뚝거리며” 나는 새는 어린 시인의 자화상이다. 풀숲의 뱀을 향해 괜한 화풀이를 하거나 “하릴없이 물속에” 신발 한 짝 던져 세상을 원망하는 모습에선 펼치지 못한 꿈이 엿보인다. “새도 죽을 때는 돌처럼 부서”진다는 것은 진짜 죽음이라기보다 부서지기 이전의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비로소 나를 속박하고 있던 불행한 사슬을 풀고 “날개를 달고 비상”한다. 새의 발이 돌 속에 갇힐 때나 갇혀 있는 동안 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 그 “뾰족뾰족”한 사연을 풀어놓는 지점에 금시아의 시가 머문다.

바람의 깃털을 훔쳐와
날개를 전사(傳寫)해서 새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있다

나비 한 마리 제 등을 찢고 날아가듯, 발의 동력으로 낭떠러지를 내달리면 등을 활짝 펼치며 활공하는

한 마리의 새,

날개는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틈, 선두와 후미 그 사이를 신세 지는 일이어서 등 떠미는 경사를 내달려 바람 속으로 뛰어들면, 날개란 아찔한 벼랑이 내어주는 난간이란 걸 알게 된다

새는 글썽이는 속도로 날 수 있어
두 발을 구름 속에 숨겨놓는다

간혹 지상의 어떤 날개는 불량하게 태어나기도 하는데

내 몸에는 대체도 교환도 가능한 몇 벌의 불량 날개가 있어 지상을 버리고 박차고 오르면 불량은 덜 자란 아기별 하나를 떨어뜨리고 작은 어른별을 하나 건져 올리기도 한다

행글라이더 하나,
태양의 이마에 막 입을 맞춘다

- ‘활공장(滑空場)’ 전문

금시아의 시에서 날개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아름다운 도망”(이하 ‘외눈박이 나비’)이면서 금기를 깨는 일(‘물의 복화술’)이다. 시인은 그 날갯짓으로 “세상을 뒤바”(‘바람의 책사들’)꾸려 한다. 그 일은 단순히 하늘을 나는 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날개를 전사(傳寫)해” 하늘을 나는 행글라이딩도 그중의 하나이겠지만 시인은 새의 날개에서 “바람의 틈”을 발견한다.

하늘에서도 지상과 마찬가지로 “선두와 후미 그 사이를 신세”진다. 그것은 하늘을 나는 새도 마찬가지다. ‘V’자 모양으로 하늘을 나는 기러기 떼를 떠올려 보라. 누군가에 신세진다는 것, “물든다는 것”(이하 ‘철새’)은 누군가 희생하고 배려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먼저 “저희끼리 번지고/ 그 번짐 닦으며 가는 새떼들”처럼 주변에 물들고, 물들이려 한다. 그 과정의 첫 번째가 “불량하게 태어”난 날개를 교환해 지상을 박차고 올라 “덜 자란 아기별 하나를 떨어뜨리고 작은 어른별을 하나 건져 올리”는 것이다.

그 두 번째는 나비 한 마리가 “제 등을 찢고 날아가듯, 발의 동력으로 낭떠러지를 내달리면 등을 활짝 펼치며 활공하는”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은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과 파장, 금기를 깨는(‘물의 복화술’) 상징으로 작용한다. 또한 나비는 “칼날에 훅 뿜어대는 나비물”(‘막 나온 아이 같은,’)이나 “겹겹의 나비날개문양 속에는 죽은 애벌레”(‘애도의 방식’)처럼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금시아의 시가 금기를 깨고 세상을 바꾸는 일 중의 하나는 종교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 ‘5월의 전략’과 ‘세포의 몰락’은 가톨릭, 시 ‘내외(內外)라는 것’과 ‘쉿, 저기 꽃이 눕고 있어요’는 불교, 심지어 시 부절(符節)은 무속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죽음에 대한 시가 많은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무속에서 나비는 영혼의 형상화로 본다. “입술에 집중하면 나비가”(이하 ‘외눈박이 나비’) 되고, 그 나비는 “하늘의 독백”을 들려준다. 그만하면 ‘시인의 말’에서 언급한 “하늘의 시늉 또한 충분”한 것 같다.

◇입술을 줍다=금시아 지음/달아실 펴냄/148쪽/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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