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갖춰야 할 미덕과 집값[광화문]

머니투데이 김경환 정책사회부장 | 2020.09.04 05:30
나에게 집은 최대관심사이자 풀리지 않은 숙제다. 사는 곳(부모님 집)이 있지만 내 소유의 집은 아직 없다.

꼭 아파트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다. 빌라나 단독주택도 조건만 맞다면 고려 대상이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은 몇 가지 조건만 충족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첫째,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지는 않았으면 한다. 출퇴근 시간 합쳐 2시간 이내면 만족하려 한다. 둘째, 주변 산책할 공간이 있고 나무가 많았으면 한다. 산책할 공원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상상만 하던 집을 마련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16년쯤 처음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당시 집값은 너무 빠른 속도로 오르는 중이었다. 과도하게 올랐다는 느낌에 좀 더 지켜보려 했지만 ‘아뿔싸’ 집값은 급등세를 멈추지 않았다. 우물쭈물하다 매수 기회를 놓쳤다. 그 이후에도 집값은 배 가까이 올랐다. 당시 5억~6억원 정도 하던 집들이 이젠 10억원을 훌쩍 넘어 12억~13억 원을 호가한다.

“집값이 계속 오르지 만은 않을 거다. 어느 시점에 가서 조정 받겠지”란 생각에 돈을 더 모아 집을 살 기회를 엿보려 했다. 하지만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은 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다. 저축한 금액보다 집값은 몇 배 아니 몇십 배 올랐다. “내 돈 주고 집을 사는 건 바보”란 부동산 시장 격언이 왜 있는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낙담한 마음에 주위에 물어보니 나와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많았다. 어떤 이유든 사정이 있어 집을 사지 않고 전세살이를 유지한 사람들이다. 이들을 만나보면 “그때 왜 집을 사지 않았을까” 땅을 치고 후회한다. 지금은 ‘넘사벽’이 돼 버린 집을 바라만 볼 뿐이다.

전임 박근혜정부가 “빚 내서 집 사라” 외치면서 과도하게 고삐를 풀어 놓은 여파가 큰 것은 분명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맞다. 고삐를 조이려 해도 과도한 유동성 잔치로 밀어 올린 집값을 쉽게 잡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실 문재인 정부가 마음만 먹었다면 집값을 잡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정부는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근본적이고도 강력한 처방들을 외면해왔다. 추측하건데 집값 변동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경기 측면에서 집값의 급반전이 그다지 반갑지 않아 집값이 너무 오르지만 않도록 관리하려는 적당한 수준의 대책을 도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심각한 오판이었다. 부동산 정책의 특성상 한번 풀린 고삐는 단호한 의지를 갖고 죄지 않으면 절대 잡을 수 없다. 적당한 대책을 연달아 내놓는 것으론 시장 내성만 키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값은 제어되지 않고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올라 버렸다. 그동안 지켜만 보던 말 없는 다수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비로소 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묵묵하게 정부 정책을 지켜보던 조용한 사람들의 분노는 무겁던 정부가 움직인 계기였다.

집값은 장기적으로 오르는 게 맞다. 건강한 경제라면 부동산과 같은 자산 가격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에 따라 장기적으로 완만하게 우상향 하는 형태를 띈다. 집값의 예측 가능한 완만한 상승세라면 서민들이 크게 낙담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불과 수년 새 집값이 2배 가까이 오르는 급격한 변동은 서민과 대중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준다. 부동산 가격의 과도한 변동성은 경제에도 치명상을 안긴다. 과도한 거품은 필연적으로 시기가 언제든 과도한 급락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거품이 형성된 자산이 계속해서 오르는 경우는 역사상 단 한번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이 드디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입을 모은다. 강력하게 관리해 나가겠단 의지의 표현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흐름을 읽으면서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이 정부가 갖춰야 할 미덕이다.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 국민들만 고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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