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직원도 "일단 받아둬"…3달새 신용대출이 폭발했다

머니투데이 김지산 기자, 김평화 기자, 박광범 기자 | 2020.08.27 06:00

[MT리포트] 신용대출 딜레마 (上)

편집자주 | 신용대출 폭증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빚을 내서 주식에 투자하거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도 적지 않아 신용대출 규제에 대해 갑론을박도 계속 된다. 이른바 ‘빚투’도 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생계형 신용대출을 막을 수도 없다. 당국은 딜레마에 빠져 있고 은행은 당국을 곁눈질한다.



대출목표 다 채웠는데 신용대출 폭증, 은행들 난감


#7년 차 은행원 A씨(34)은 최근 친구들의 상담요청을 부쩍 많이 받는다. 규제가 나오기 전에 일단 신용대출을 받아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주택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 금리가 낮다는 것도 사실이냐고 묻는다. A씨는 그때마다 “받아두라”고 한다.

#4년차 직장인 B씨(30)는 ‘빚’이 싫어 신용카드도 쓰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이 신용대출로 5000만원을 빌려 주식투자를 해 두 배로 불렸다는 얘기에 솔깃했다. 5000만원을 빌려도 한 달 이자가 10만원 안팎이라고 했다. B씨는 곧장 은행으로 가 신용대출을 받았다.

상반기 급증한 기업대출에다 신용대출까지 폭발적으로 늘면서 일부 시중은행들은 연간 원화대출총액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시중은행들은 생계보다 부동산·주식 투자에 활용되고 있는 신용대출을 더 늘리기도 어렵지만 조일 수도 없는 사정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 1~7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합산 잔액은 120조2042억원이다. 지난해 말보다 9.3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용대출이 포함된 가계대출 총액(약 635조원)이 3.9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신용대출의 폭증세가 두드러지는 셈이다. 8월 들어서도 증가세는 멈추지 않았다. 25일 현재 신용대출 합산 잔액은 7월 말보다 2조3596억원(1.96%) 늘어난 122조5639억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신용대출 ‘사재기’ 현상은 분명히 관측되고 있다”며 “좋은 조건에 일단 대출을 받아놓고 보자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용대출은 은행들의 연간 대출계획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5대 은행들의 가계와 기업 전체에 걸친 원화대출금 목표는 작게는 4%, 많게는 6% 정도다. 이들 은행의 지난해 말 대비 원화대출총액(약 1217조원) 성장률은 7월말 기준으로 6.76%를 넘어섰다. 목표를 넘어선 것이다.

신용대출은 특히 6월 이후 확연히 증가했다. 5월 말까지만 해도 지난해 말 대비 4.34% 증가하다가 6월 말 6.93%, 7월 말 9.37%로 두 달째 2%p 넘게 확대됐다. 공교롭게도 전세대출을 받아 3억원 넘는 아파트를 살 수 없도록 규제한 ‘6·17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이후 신용대출 증가속도가 가팔라졌다. 9억원 초과 고가주택에 대해 신용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시키는 규제가 있지만 은행이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는 게 한계다.

신용대출이 지금과 같은 추세로 늘어난다면 은행들은 리스크 관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예대율 규제 등으로 가계대출을 일정 수준 이상 늘리는 것은 부담스러우므로 대출조건을 까다롭게 할 수 밖에 없다. 김기환 KB금융지주 재무 부사장이 지난달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하반기 보수적인 여신정책을 적용하면서 포트폴리오 개선 중심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말한 것은 이 같은 은행들의 스탠스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은행들은 DSR의 엄격한 적용에 더해 조만간 신용대출 용처에 관한 규제 방안이 등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 임원은 "은행마다 사정에 따라 신용대출이 임계치에 다다를 경우 알아서 총량을 조절한다"며 "아직 이렇다 할 위험신호는 없지만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상황인 건 맞다"고 말했다.

김지산, 김평화 기자




"신용대출에 '꼬리표' 달린 것도 아닌데"…금융당국의 '딜레마'



정부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규제 '풍선효과'와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맞물려 신용대출이 폭증하면서 금융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급증한 신용대출 규모를 조이자니 코로나19(COVID-19)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내버려두자니 늘어난 신용대출이 '포스트 코로나' 이후 가계부실의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금융권 일각에선 최근 신용대출 수요가 몰린 것을 정부의 부동산대출 옥죄기에 따른 '풍선효과'라고 분석한다.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강화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규제 등으로 모자란 돈을 신용대출에서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8억원짜리 서울 아파트를 사기 위해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집값의 40%인 3억2000만원이다. 4억5000만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머지 3000만원을 신용대출로 '영끌'하는 식이다.

특히 사상 첫 '제로금리' 시대에 돌입하면서 시중은행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보다 낮아지는 이례적인 현상도 신용대출 행렬을 부추겼다. 주요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현재 신용등급과 대출금액 등에 따라 최저 연 1.71%~3.63%다. 이에 비해 주담대는 연 2.04~4.20%로 신용 대출 금리보다 하단과 상단이 모두 높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신용대출 억제에 나서긴 이르다고 보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19 영향권 내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용대출이 부동산시장으로 흘러갔다는 확신도 없다. 은행들은 신용대출 심사 때 대출금이 주택구입 등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차주들이 자금 용도를 '생활자금'으로 신고해놓고 대출 후 시차를 두고 주택구입에 활용하면 이를 '무 자르듯'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이다. 심증은 있더라도 물증이 없는 것이다.

신용대출이 부동산시장으로 쏠리는 걸 막기 위한 방법은 사실상 신용대출 자체를 조이는 것 뿐이지만 당국으로선 부담스런 카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생활자금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이 신용대출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조이면 애꿎은 피해자들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2일 금융협회장들과 비공개 회동을 마친 뒤 신용대출 급증과 관련해 "코로나19로 (정부가) 금융권에 돈을 더 풀어달라고 하는 마당에 당장 신용대출을 억제하는 건 (정책 방향과) 상충된다"고 말 한 데서도 이런 고민이 읽힌다.

금융당국이 꺼내든 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를 통한 우회규제 카드다. 주담대 차주에 대해 DSR이 문제 없이 적용되고 있는지 여부를 감독하겠다는 것이다. DSR은 모든 가계대출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작년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규제지역 시가 9억원 초과 주택 담보대출 차주는 이 비율을 40% 이하(비은행은 60%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기존 부동산대출규제가 현장에서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대신 당장은 신용대출 자체를 규제하진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코로나19에 따라 생활자금이 필요해 신용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무작정 신용대출을 막을 순 없다"며 "코로나19 여파로 증가한 대출은 2~3년 정도 중장기적으로 보면서 유연하게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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