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도 9억 넘는데…12년 된 고가주택 기준 왜 고집하나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 2020.08.22 09:58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제공=뉴스1
#강남구 대치동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97㎡(옛 34평) 7층 매물은 이달 초 15억6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이보다 큰 중대형 평형 전셋값은 20억원이 훌쩍 넘는다.

마포구 용강동 '래미안마포리버웰' 전용 84.99㎡ 17층 매물은 지난 12일 9억5000만원에 전세 신규 계약을 맺었다. 인근 'e편한세상마포리버파크' 단지에서도 지난달 같은 평형 9층 매물이 9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집값 급등에 '비싼 집' 기준 유명무실…규제 범위 확대로 실수요자도 부담


2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시내 집값 상승과 신축 공급 부족 현상, 임대차3법 시행 등으로 인기 단지 전셋값이 급등하면서 정부가 정한 고가주택 기준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매가'로 판단하는 고가주택 기준이 일부 단지 전셋값보다 낮아 현실과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고가주택 기준이 중도금 대출 제한, 불법거래 조사 등 각종 부동산 규제 정책의 '가이드라인'으로 활용되면서 정책 의도와 달리 실수요자도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일례로 분양가 9억이 넘는 신축 아파트는 대출이 필요없는 '현금 부자'만 진입할 수 있는 시장이 됐다. 매매시장은 물론 임대차 시장에서도 보증금 9억 초과시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보증금을 낮춘 '반전세 ' 거래가 늘었다. 정부가 전월세전환율을 4%에서 2.5%로 낮췄지만 신규 계약은 적용되지 않아 세입자에 혜택이 없다. 9억 초과 주택을 보유한 고령층은 주택연금을 이용할 수 없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지난 4일 수도권 공급확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


12년 전엔 맞지만 지금은 틀리다…전문가들 "기준 현실화 필요"


소득세법상 고가주택 기준은 2008년 10월 6억원에서 9억원으로 상향 조정된 이후 12년째 그대로다.

12년 전 9억원은 고가주택으로 볼 만했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08년 12월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2억5060만원이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비싼 단지가 모여있는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도 평균 6억2364만원으로 고가주택 기준을 크게 밑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9억원을 고가주택으로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올해 7월 서울 아파트 중위값(매매값의 중간값)은 9억2787만원으로 고가주택 기준보다 높다. 특히 강남권 11개구 아파트 중위값은 11억6323만원에 달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기준 서울 아파트 40.56%(50만5520가구)가 시세 9억원을 초과한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한 시세 15억 초과 아파트 비중도 17.04%(21만2392가구)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고가주택 기준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고가주택 기준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하거나 공시가격처럼 매년 가격 상승률을 반영해서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도 "현실과 괴리가 있는 고가주택 개념을 차라리 없애는 것도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12.16 대책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원천 금지한 '15억 초과' 주택을 새로운 고가주택 기준으로 설정하는 방안도 거론한다.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열린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국세청장 "건의하겠다" 했지만…기재부·국토부 난색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는 "고가주택 기준 변경을 건의할 생각이 없냐"는 서병수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의에 "일선의 이야기를 모아 건의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이는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을 예우한 원론적 답변으로 보인다. 정부 내부 기류를 감안하면 당장 고가주택 기준을 조정할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부동산 규제 완화'란 시그널로 비춰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기재부 관계자는 "최근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등 세제 개편 방향이 집값 안정과 투기 근절에 초점을 맞춘 상황에서 고가주택 기준 변경은 시기상조"라며 "집값이 장기간 하향 안정화된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당장 논의할 단계는 아니"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고가주택 기준을 높이면 그에 맞춰 전반적인 집값 수준이 더 높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부정적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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