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효와 취소 그리고 계륵, 여기에 약간의 기획부동산

머니투데이 남민준 변호사 | 2020.08.15 08:01

[the L][남 변호사의 삼국지로(law)]㉓

편집자주 | 게임과 무협지, 삼국지를 좋아하는 법률가가 잡다한 얘기로 수다를 떨면서 가끔 진지한 내용도 말하고 싶어 적는 글입니다. 혼자만의 수다라는 옹색함 때문에 약간의 법률얘기를 더합니다.



무효와 취소, 그리고 계륵, 여기에 약간의 기획부동산 얘기까지


닭갈비, 그러니까 계륵(鷄肋)입니다.

간단히 ‘저 먹자니 싫고, 남 주자니 아깝고’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먹자니 뼈에 붙은 살도 별로 없고, 버리자니 먹을 살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 조조가 유비와 싸움을 벌였으나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집니다.

계속 싸우자니 식량도 모자라고, 사기도 떨어져 있고, 탈영하는 병사도 많고.

그렇다고 그만 두자니 이제껏 유비와 싸우면서 투자한 시간과 물자가 아깝고.

그래서 암호를 묻는 하후돈에게 조조가 무심결에 ‘계륵’이라고 대답하였는데 계륵이라는 단어로써 조조의 속마음을 알아 차린 양수가 조조의 명도 없이 미리 철군 준비를 시켰다가 조조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양수가 죽은 후 결국 조조는 철군하게 됩니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중을 갖자니 그만한 가치가 없고, 그렇다고 유비에게 주자니 아깝고. 한중은 조조에게 딱 닭갈비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살다 보면 어떤 물건을 샀는데 샀던 가격을 생각하면 갖고 있자니 별 이익이나 도움이 안 되고, 그렇다고 그냥 남에게 줘 버릴 수도 없는 난처한 경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제일 좋은 방법은 가능하다면 물건에 관한 매매계약의 효력을 없애 물건을 돌려 주고 돈을 돌려 받는 것이겠죠.

소급적으로 계약의 효력을 없애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반법인 민법을 기준으로 적습니다.)

민법은 원칙적으로 거래의 안전과 거래 상대방의 보호라는 대원칙 아래 예외적으로 계약의 무효, 취소를 규정하고 있습니다(물론 해제에 의해서도 계약의 효력이 소급적으로 소멸될 수는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상대방의 채무불이행을 전제하고 있어 계약의 무효나 취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무효와 취소도 소급효의 범위에 차이가 있습니다만..).

① 무효사유는 강행법규 위반으로 인한 무효, 불공정한 행위로 인한 무효, 비진의표시에 의한 무효, 통정허위표시에 의한 무효(간단히 파는 사람이 팔 생각도 없이 농담으로 ‘100원에 팔겠다’고 했는데 사는 사람이 농담임을 알면서도 ‘그래, 100원에 살게’라고 하는 경우입니다)가 있습니다.

우리의 선량한 풍속과 공공질서로 보아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계약(강행법규 위반), 거래로 인한 이익을 남겨도 적당히 남겨야 할 텐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그 상황을 이용하여 100원 짜리 물건을 1억 원에 파는 계약(불공정 행위), 상대방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면서도 체결한 계약(비진의표시에 의한 무효), 서로 농담인 걸 알면서도 서로 사고 팔겠다고 체결한 계약 등이 무효사유에 해당합니다.


② 취소사유는 미성년자 또는 피성년후견인 또는 피한정후견인의 행위, 착오로 인한 의사표시, 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한 의사표시, 채권자를 해치는 채무자의 사해행위 등이 있습니다.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는 미성년자의 행위, 성년후견을 받는 사람의 행위, 후견인의 동의 없는 한정후견을 받는 사람의 행위가 행위무능력자 또는 한정행위무능력자의 행위인데, 거래의 안전이나 상대방 보다는 미성년이나 질병, 장애, 노령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사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 착오가 있다 하여 무조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약의 당사자가 큰 실수 없이 계약의 중요 부분을 착각하여 체결한 계약(착오에 의한 취소), 상대방의 속임수나 협박에 때문에 속아서 또는 강제로 체결한 계약(사기, 강박에 의한 계약), 집을 팔아야 빚을 갚을 수 있는 채무자가 그 집을 팔면 돈을 갚을 수 없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그 사정을 잘 아는 다른 사람에게 집을 팔아 버린 계약(사해행위 취소) 등이 취소할 수 있는 계약입니다.

사실 착오취소의 문제는 기획부동산과 관련해, 속칭 ‘쪼개기’나 잘못된 개발계획에 관한 정보 제공 등으로 인해 꽤나 자주 등장하는 문제인데 대법원은 ‘토지의 현황∙경계에 관한 착오’는 중요부분에 관한 착오가 아니라는 입장이어서 이런 착오가 상대방(기획부동산)에 의해 유발된 착오라는 점을 입증하지 않고서는 계약을 취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앞서 적은 내용은 수 백 페이지의 법서를 요약한 내용임에도 지면 사정상 굉장히 압축하여 적었기 때문에 읽으시는 분들이 바로 이해하시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약속에 따라(계약의 체결) 약속을 지킨 경우에도(계약의 이행) 극히 예외적으로 우리 민법이 계약의 효력을 되돌릴 수 있는 몇 가지 예외(무효와 취소)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다는 점을 알아 보기 위해 최대한 간략히 적어 보았습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변호사들이 소송을 대리하면서 ‘계약의 효력이 없다’는 점을 주장하고 입증할 때에도 위와 같이 ‘무효-취소-해제(해지)’의 순서로 요건을 검토합니다만,

우리 민법의 대원칙이 거래의 안전과 거래상대방의 보호이니 만큼 실제 소송에서 ‘계약의 무효 또는 취소’라는 주장이 받아 들여지기는 참 어렵습니다.

계륵으로 시작해 계약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는 무효와 취소에 관해 정말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지만, 계약의 무효나 취소를 주장하기 이전에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꼼꼼히 살펴 신중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장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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