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위안부, 한국 코피노 모두 ‘인간의 특별한 잔인함’”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 2020.08.14 06:35

[인터뷰]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시집 낸 재미 한인 시인 에밀리 정민 윤…“여성과 전쟁 폭력 시로 얘기하고 싶어”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에밀리 정민 윤 작가의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 최근 한국에 입국한 에밀리 윤은 코로나19로 자가 격리 중이어서 이날 화상으로 취재진과 만났다. /사진=뉴시스

위안부 역사의 그 길고 복잡한 얘기를 시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작은 사연 하나도 놓칠 수 없는 촘촘한 스토리를 재미 한인 시인이 축약의 언어로 담았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원제: A Cruelty Special to Our Species)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에밀리 정민 윤이다.

간결한 시어가 던지는 의미에 섬뜩 놀라거나 산문인 듯 산문 아닌 산문시 같은 ‘현장의 언어’에선 호흡이 빨라지기도 한다.

“시로 위안부 문제, 더 나아가 여성 폭력의 문제를 다룬 것은 좀 더 충격적인 효과를 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제게도 던지는 질문이지만, 디지털 시대에서 시라는 매체는 우리의 시간을 느리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를 읽을 땐 속독하기 어렵고 천천히 읽으며 그 내용들을 조심스럽게 소화하는 거죠. 시라는 장르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아주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시집은 2018년 9월 미국 메이저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에서 출간됐는데, 뒤늦게 번역해 14일 국내 출간된다. 이에 맞춰 최근 한국에 입국한 에밀리 윤은 코로나19로 자가 격리 중이어서 1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온라인 화상 간담회로 취재진과 만났다.

화상 기자간담회로 모습을 드러낸 재미 여성 한인 작가 에밀리 정민 윤. /사진=뉴시스

책은 고발, 증언, 고백, 사후라는 4개 제목으로 구성됐다. '무엇이 누르지. 무엇이 눌렀지. ~그녀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게 걸어. 미군이 그녀를 보고는 거기 멈춰! 하고 일본어로 외쳐. ~그녀가 넘어져. 그가 웃어. 빼앗긴 나라에서 몸이란 무엇일까.'( ‘고백’ 편 중 '일상의 불운'에서)

시인은 '고백' 편에 실린 시처럼 유린당한 여성의 몸을 자신의 시적 원형으로 환기하며 고통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증언’ 편에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고스란히 녹여냈는데, 증언의 기록과 시인의 구성으로 얽힌 단락들이 읽는 내내 숨죽이게 한다.


“‘증언’ 편을 좀 더 말하자면, 여백을 많이 사용하고 싶었어요. 그 여백이 주는 효과는 이 부분의 시를 읽을 땐 말을 끊거나 더듬게 되더라고요. 읽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만든 효과가 생긴 셈이죠. 이 증언을 단순히 복제하는 걸 넘어 모두 고민하고 공유하는 장이 되길 바랐다고 할까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국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폭력을 조명하는 게 책의 가장 큰 목적이다. 저자도 이 책 제목에 드러난 ‘잔인함’의 주체는 ‘우리 종족’, 즉 인간이라며 전쟁의 폭력, 여성이 받는 차별과 폭력 등을 통해 나타난 인간의 잔인함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적어도 이 책이 반일 민족주의 감성으로 읽히고 싶지는 않았어요. 일본군 위안부 경험을 중심에 뒀지만, 제 경험과 아시아계 여성 모두의 경험을 담은 것도 인간 폭력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예요. 한국 남성들이 필리핀에서 성 착취를 하고, 한국군이 베트남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 미국인이 한국에서 저지른 일 등이 모두 역사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에밀리 윤은 2002년 초등학교 4년 때 캐나다로 이민 갔다. 이 시집은 그가 뉴욕대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을 때 다른 여성 시인들과 대화하면서 대부분 완성됐다.

에밀리 정민 윤 작가의 시집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사진=뉴시스

“한국 역사와 문화를 많이 모른 상태에서 이민 갔기 때문에 제 시집이 느닷없다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방학 때마다 한국에 와서 그런 이슈들을 많이 접했고 우리 역사에 대해 모르는 외국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미국 출간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작품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고 호평했다. 한유주 소설가가 번역을 맡은 한국판 시집에 김혜순 시인은 “인류가 가진 모든 구분에 대한 참혹한 조롱의 울부짖음”이라고 썼다. 번역본 시집 앞부분은 한글판이, 뒷부분에는 영어 원본이 함께 실렸다.

“이 시집은 분노와 슬픔을 무기로 쓴 책이지만, 결국 우리는 악을 쓰고 몸부림친 다음에 자신을 돌본다는 점에서 사랑을 얘기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다음에는 온유함(tenderness)이 깃든 사랑 얘기를 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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