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 의혹 사건 수사팀이 한동훈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가 내린 수사 중단 결정을 불복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권고 수용 여부도 한층 더 불확실해진 가운데, 심의위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단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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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고'지만…받아들이지 않은 '첫 사례' 의미 커━
이는 검찰이 심의위 의결을 불복한 첫 사례다. 검찰은 심의위 제도가 생긴 이후 나온 총 8번의 결정을 모두 따랐다. 심의위 의결은 '권고'일 뿐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수사팀이 심의위 결정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선례가 됐다는 점에서 이번 불복은 의미가 크다.
이 전 기자 측도 이날 입장문을 통해 "여러 어려움을 무릅쓰고 심의위에 성실히 참여해 충분한 심의가 이뤄졌는데 (검찰이) 심의위의 압도적 권고를 무시했다"며 "검찰과 언론이 유착된 사안이 전혀 아님에도 한 검사장을 계속 수사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유감과 우려를 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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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도 기소 나설까…한 달 넘게 조용━
지난 6월26일 심의위가 '이 부회장을 불기소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린 후, 삼성 내부에서는 최종 불기소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컸다. 그러나 한 검사장에 대한 심의위 권고를 검찰이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상황인 만큼 이 부회장 기소도 강행할 가능성이 있다.
이 부회장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심의위 의결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팀의 이러한 행보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만큼 이 부회장 사건 처리에 고민이 깊다는 해석이다. 검찰이 주요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사건의 최종 처분 결과를 어느 정도 그려뒀단 의미로 보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지난 6월4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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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셀프 개혁안, 또 불복하나 ━
향후 검찰이 이 부회장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든 심의위 제도를 둘러싼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심의위 의결대로 이 부회장을 불기소할 경우, 한 검사장에 대해서만 유독 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았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총 10건의 심의위 의결 사건 중 유일하게 의결 내용을 따르지 않은 사건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심의위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서까지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를 계속한 동력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할 부담을 안는다.
하지만 검찰이 이 부회장 사건마저도 심의위 의결을 따르지 않는다면, 심의위 제도의 실효성 자체가 흔들리는 더 큰 벽에 부딪힐 수 있다.
심의위 제도는 현 정부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견제하기 위한 검찰개혁의 방안 중 하나로 추진했다. 그런데 최근 검찰 단계에서 가장 논란이 된 두 사건을 심의위 의결과 반대 방향으로 결론 낸다면 제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구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안팎에서 기소 보류 등 제3의 대안이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의위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한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당시에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고 부작용이 많을 것이란 우려가 있었다"며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통해 심의위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의 국민 참여라는 취지를 살려 제도를 지키고 싶다면 입법을 통해 심의위를 강제력 있는 기구로 만드는 대신 지금보다 훨씬 더 구체적인 수사 기록을 볼 수 있게 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면서 "그게 아니라면 폐지하는 게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삼성 사건마저 심의위 의결을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한다면 검찰이 스스로 내부에 세운 개혁 조치를 부인하고 무너뜨리는 꼴"이라며 "과잉수사와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이 큰 상황에서 보다 현명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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