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당신을 문장의 중심에 모신다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 2020.07.25 07:00

<213> 전영관 시인 ‘슬픔도 태도가 된다’


2011년 ‘작가세계’로 등단한 전영관(1961~ )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는 한편 한편이 투병기이면서 후일담이다. 여는 시 ‘회진’부터 닫는 시 ‘퇴원’까지 시인은 약해진 마음과 달라진 주변의 시선을 느낀다. 5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시인의 삶은 무척 달라졌다. 사회현실(특히 세월호 참사)에 적극 참여했던 시인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후 가족의 곁에 머문다. 특히 아내와의 추억과 사랑을 되짚는다.

세탁물을 들고 아파트를 도는 사람을 통해 병실의 회진을 떠올리고(‘회진’), 누나들과의 점심을 먹고 난 후 스타벅스의 ‘스벅’을 ‘십억’으로 착각하고(‘오 분의 일’), “우는지 웃는지 몰라서 편안한 거리”(‘안부’)와 같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렵기만 하다. “막다른 길에 몰”(이하 ‘시인의 말’)려 시인이 찾은 무기와 희망은 “절망을 외면하는 기술”이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수시로 “소멸을 생각”(‘한파주의보’)한다.

이러시면 큰일난다고 울먹이는 막내
링거 자국 어지러운 아비의 팔을 잡아 흔든다
장남은 바위라도 깨버릴 듯
주먹 쥔 채 돌아선 등이 출렁거린다
응급실에 실려간 이후로 처음 피운 담배 연기가
등신, 네 갈망은 원래 이런 맛이었다며 비웃는다
입원 한 달 만의 외출에 저지른 짓이
별일 없다고, 이번만 꼭 한 번이라고
담배를 피워버린 것

돌벅수만큼 든든한 아들들은 제 눈물에 잠겨 있다
눈만 마주쳐도 울음이 흥건해지는 아비에게
아들 둘과 아내가 새로 보였다

저 집 외아들 실려갔다고
대주(大柱)가 쓰러졌으니 큰일이라고
보기 드물게 시부모 모시는 음전한 며느리네라고
뒷산 단풍나무들이 수런거렸다
구절초 같은 며느리의 울부짖음을 들은 나무들
얼굴 붉었다
해쓱해진 가족이 하룻밤 외출해 웅크렸다가
현대식 지옥으로 되돌아간 어느 가을날

- ‘풍문’ 전문

갑자기 찾아온 병이 삶의 방향을 틀었을 때, 당연히 본인이 가장 힘들다. 병간호를 하는 가족의 고통도 이에 못지않다. 주변의 입방아도 시인을 힘들게 한다. 두 달여를 입원한 시인은 쓰러진 지 한 달 만에 외출해 몰래 담배를 피운다. “별일 없다고, 이번만 꼭 한 번이라고” 핀 담배인데, 하필 두 아들에게 들킨다. 막내는 “이러시면 큰일난다고 울먹”이고, 장남은 주먹을 꽉 쥔 채 돌아선다.

시인은 “등신, 네 갈망은 원래 이런 맛이었다”며 자책한다. “어디에 앉혀놔도 등신”(이하 ‘늦깎이’)이라는 시인은 반면에 “또 다른 등신들을 보는 눈이 생겨서 안도했다”고 자위한다. “타인의 불행을 과장해서 내 불행을 지우는/ 비법”도 터득한다. 자책에서 삶의 응시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이나 가족, 다음에는 주변의 시선이 남았다. “저 집 외아들 실려갔다”고, “보기 드물게 시부모 모시는 음전한 며느리네”라고 수런거린다. 주변의 말과 시선은 날카롭다. 가슴에 콕콕 박힌다. 이에 “며느리의 울부짖음”, 즉 참다 참다 “그만하라”는 아내의 울부짖음에 한 달 만의 외출은 “현대식 지옥”이 되고 만다. 주변과 더 멀어진다.

완치는 없다 한다

발음은 반듯해지고 걸음까지 정상이라 대답했다
파르티잔 전법으로 시도 때도 없이
마비 후유증에게 습격당하는 왼쪽 몸이
난감할 뿐이라고 웃었다 불안을 감췄다
말끔하게 병을 씻어낸다는 완치는 없고
근처까지는 도달한다는 뜻으로 근치(近治)라고
의사는 항우울제 같은 미소를 내민다
선생님 혹시, 애착을 아시느냐고 물을 뻔했다
도무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을 향해
무작정 출항하던 청춘의 새벽을 기억하느냐고
낭만을 비웃을 뻔했다
액자에 넣어두고 싶었던 밤을 후회한 적 있느냐며
그런 상처야말로 완치가 아니라 근치일 거라고 동의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근육이 마비로 남은 탓인지
92병동의 뇌손상 환자들 표정은 제각각이다
인지가 살아난 그들의 표정은
망가진 육신에 슬픔이 도착하면서 모두 비슷해진다
근치 판정까지 받은 나는 왜 그들과 흡사한 표정인지
도무지 도달하지 못할 것만 같은 완치는 어디인지

가만가만 왼손을 만져보는 것이다

- ‘가까이’ 전문

그전이겠지만, 병동으로 돌아온 시인에게 의사는 “완치는 없다”고 말한다. “짐승은 몸이 아프면 먹이 활동을 멈”(이하 ‘처방전’)추지만 시인은 스스로에게 “하루치의 연료를 보충하는 아침은 꼭 챙”기고, “악력(握力)을 첨가”하고, “점심은 황제처럼 먹”고, “산책을 자주 하”고, 후유증 없는 “팔베개”를 처방한다.

이제 발음이나 걸음걸이는 정상이지만 마비됐던 왼쪽 몸의 후유증으로 불편하다. 완치는 아니지만 “근치 판정을 받은” 시인은 “92병동의 뇌손상 환자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망가진 육신에 슬픔이 도착하면서 모두 비슷해진다”는 것. 의사가 내미는 “항우울제 같은 미소”는 결국 시인의 몸에 찾아온 ‘마음의 감기’다.

사람이나 삶에 대한 애착이나 “도무지 닿지 못할 것만 같은 사람을 향해/ 무작정 출항하던 청춘의 새벽” 같은 낭만, “액자에 넣어두고 싶었던 밤”에 대한 후회와 같은 상처는 불치병이다. 그런 후유증은 평생 마음을 아프게 한다. 시인은 “완치가 아니라 근치”라는 말에 몸을 치유하는 의사가 마음의 상처를 아느냐고 마음속으로 항변하고 있다. 도무지 완치될 것 같지 않아 마비가 덜 풀린 왼손을 만져본다.

붙박이장처럼 완고해서
당신을 숨막히게 했다
채칼 같은 단호함을 명쾌함이라며
타협도 없는 일곱 살마냥 우쭐거렸다
고장난 전기주전자여서 그칠 때를 찾지 못하고
불안하게 했다
후춧가루만큼 예민한 성격을 자상함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떨어뜨린 소금 그릇처럼 강퍅으로만 악화시켰다
가득찬 쓰레기통 속 나태를 머뭇거림의 매력으로 둔갑시켰다
내심 반성하면서, 부러워하면서
도마만큼 자명한 타인의 결단들을 무모함이라 빈정거렸다
냉동고같이 외골수로 지겹게 했다

깨진 간장 항아리로 쓰러져
당신의 통곡이 응급실을 채웠다

가족이란 천막 안에서
당신을 막막하게 했다
무관심을 고부 관계의 중립이라 착각했다
사위 노릇을 손님인 척하는 것으로 알았다
눈치 없음을 시라는 몰입의 부작용이라고 방심했다

동그란 뒷모습에서 태산의 바위를 느낀다
핏기 없는 미소에서 천 길 벼랑이 보인다
주방을 오가는 종종걸음에서 맨발로 걸어온 구만리도 보인다
당신을 문장의 중심에 모신다
고마웠노라 다짐해보면, 후회는 매번 앞질러 온다
행여라도 장병으로 누우면
간병인은 자처할 테니 염려 말라고 손을 쥔다
바보 같아 울대를 막는 나만의 당신
내 아내

- ‘새해라서 당신’ 전문

가족은 살아가는 힘이다. 특히 아내는 평생을 같이할 사람이다. “깨진 간장 항아리로 쓰러져/ 당신의 통곡이 응급실을 채”우고 난 후 시인은 반성한다. 너무 “완고해서/ 당신을 숨막히게 했다”고, “타협도 없이 우쭐거렸다”고, "예민하고 강퍅한 성격에 자상하지도 못했다"고, 나태하면서도 “타인의 결단력을 무모함으로 빈정거렸다”고, “냉동고같이 외골수로 지겹게 했다”고.

또한 “보기 드물게 시부모 모시는” 아내를 당연시하고, 고부 관계에서 아내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어야 할 남편이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대접만 받으려 하고, 시를 쓰느라 고독하게 했다고. 그런 생활을 당연시했다고 자책한다. 가족이라는 숨 막히는 천막 안에서 “당신을 막막하게 했다”는 뒤늦은 후회에는 엄청난 갈등이 내재했음을 암시한다.

“동그란 뒷모습에서 태산의 바위”가 느껴지고, “핏기 없는 미소에서 천 길 벼랑”도 보인다. 하지만 “숨을 오래 참는다면/ 그리운 사람이 없다는 증거”(‘현금 인출기’)다. 입원한 지 두 달 만에 퇴원해 “병원 앞 국숫집”(이하 ‘퇴원’)에서 칼국수를 먹는 부부. 시인의 입가를 닦아주고, “고춧가루 없는 쪽으로 김치를 건네”주는 아내의 모습에 시인은 울먹인다. “오누이인 양 닮은” 부부 모습이다.

몸도 성치 않은 시인은 “행여라도 장병으로 누우면/ 간병인은 자처할 테니 염려 말라”며 아내의 손을 잡는다. 그 말에 아내는 또 운다. 그런 아내는 “내 안의 꽃이 다 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나무에 걸린 은유’) 보인 꽃이다. 시인은 아내를 “문장의 중심에 모신다”. 이번 시집은 오롯이 아내에게 바치는 것과 다름없다. “나무와 사람은 슬픔의 속도가 다를 것”(‘정선 몰운대’)이다. 가족의 힘으로 또 다른 슬픔을 잘 이겨내리라 믿는다.

◇슬픔도 태도가 된다=전영관 지음/문학동네 펴냄/144쪽/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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