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이브3' , 직업에 회의를 품은 킬러의 선택은?

김수현(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0.07.09 09:57
사진제공=왓챠


없던 휴일 수당이 생기자 환호성을 지르고, 일 못하는 후배 킬러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이코패스 킬러. 그 역시 반복되는 살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조직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고군분투한다.


이렇듯 BBC 아메리카 드라마 ‘킬링 이브’ 속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은 종종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다. 월급으로 쇼핑을 즐기고, 허름한 출장 숙소에 분노하기도 한다. 어디 킬러뿐인가. 산드라 오가 연기한 영국정보국 소속 이브 역시 보고를 위한 문서 정리에 애를 먹고, 야근 다음 날에도 흐트러짐 없는 상사의 모습에 넋이 나간다. 그는 화장지가 없는 회사 화장실에 당황하고, 출장 중 반차를 쓰고 전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동료를 뒀다.


이쯤 되면 ‘킬링 이브’는 사이코패스 스릴러가 아닌 오피스 드라마라 불러도 무리가 아니다. ‘킬링 이브’ 시즌1은 퀴어 로맨스와 스릴러, 수사극을 조합한 신종 장르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여기엔 사이코패스 킬러와 정보국 소속 요원을 ‘일하는 사람’으로 묘사한 새로운 접근법도 한몫했다. 흔히 봐왔던 킬러와 요원이 아닌 새로운 레이어가 덧입혀진 캐릭터는 본 적 없던 새로운 장르적 리듬을 만들어냈다.


지난 6월 왓챠플레이를 통해 국내에서 첫 공개된 ‘킬링 이브’ 시즌3에서는 ‘일하는 사람’으로서 두 주인공의 고민이 더욱 깊어진다. 관리직으로 승진한 뒤 생전 안 하던 실수를 연발하는 빌라넬과 MI6를 떠나 음식점에서 만두를 빚고, 퇴근 후에는 한인마트에서 산 신라면과 와인으로 피로를 달래는 이브의 모습은 친근하다 못해 연민이 느껴진다.

사진제공=왓챠



지난 시즌2가 서로에게 더욱 야릇하게 끌리는 빌라넬과 이브의 관계를 담아냈다면, 시즌3는 일하는 존재로서의 주인공들의 자아를 더욱 비중 있게 조명한다. 빌라넬은 암살자 대신 좋은 아파트, 영화를 함께 볼 사람이 있는 평범한 인생을 꿈꾸기 시작하고, 빌라넬의 상사이자 그를 최고의 킬러로 키워낸 다샤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시즌3는 지난 시즌들에서 쌓아 올린 두 사람의 팽팽한 케미스트리보다 인물들의 고민에 밑줄을 긋는다. 전 시즌 통틀어 가장 호불호가 갈리고 있기도 한데, 그도 그럴 것이 트웰브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인물들은 고민과 번민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특히, 흔들림 없던 빌라넬이 암살자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모습이 캐릭터 매력을 반감시킨다는 평도 적지 않다. 빌라넬의 고민이 시리즈의 중심에 들어서자 자연스레 이브의 분량은 다소 줄어들었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이 (제작진의 인종차별 논란도 있었지만) 불만을 제기하는 것 역시 십분 이해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킬링 이브’ 시즌3만의 분명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어둠의 근원을 찾아 나선 빌라넬이 가족과 마주했을 때 드러낸 새로운 표정들은 묘한 정서를 안긴다. 그 누구도 품어주지 못했던 어두운 아이 옥사나(빌라넬의 본명). 그에게 피의 대물림을 하고도 외면하고야 마는 어머니의 냉정함은 가슴을 아릿하게 할퀸다.


사이코패스의 가족이라니. 빤하게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킬링 이브’는 그 과정을 통해 빌라넬의 캐릭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 어떤 드라마, 영화에서도 본 적 없었던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창조해낸 조디 코너는 시즌3에서 한층 섬세해진 결의 연기를 선보인다.


사진제공=왓챠


시즌3에서 조금은 싱겁게 그려졌던 빌라넬과 이브의 멜로 라인은 마지막 회 엔딩 무렵에 가서야 애틋하게 달아오른다. “내 미래를 생각하면 네 얼굴만 떠올라”라는 이브는 그럼에도 이 극악무도한 사이코패스 빌라넬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 빌라넬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브의 선택을 존중한다.


‘킬링 이브’ 시리즈는 골든 글로브 TV부문 여우주연상(산드라 오),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 베스트 드라마 시리즈, 여우주연상(조디 코머), 여우조연상(피오나 쇼), 미국 배우 조합상 드라마 부문 여자 연기상(산드라 오) 등 트로피를 휩쓸며 최근 몇 년간 방영된 드라마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성취를 거뒀다.

시즌3는 분명 이전 시즌들만큼의 경쾌한 재미는 없었지만, 캐릭터가 아닌 ‘사람’이 보였다는 점에서 짙은 공감을 안겼다. 빌라넬과 이브의 관계는 어떤 궤도로 흘러갈지, 트웰브의 정체는 밝혀지게 될지. ‘킬링 이브’ 시즌4가 궁금해진다.


김수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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