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제가 투기꾼입니까

머니투데이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2020.07.10 08:31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2014년 "겨울에 여름 옷 입은 격"이라며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 완화를 꺼냈을 때 금융당국은 반대했다. 방어논리는 LTV와 DTI는 부동산 규제가 아니라 금융회사의 건전성 관리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찐 친박, 찐 실세 최경환을 막을 순 없었고 결국 LTV·DTI 규제는 '합리화'라는 이름을 달고 '완화'됐다. '빚내서 집 사세요'의 시작이었다.

금융당국은 반대로 집값을 잡는데 대출규제를 쓸 때도 탐탁치 않았다. LTV·DTI는 건전성 규제라는 논리가 다시 동원됐다. 하지만 8·2(2017년), 9·13(2018년), 12·16(2019년), 6·17(2020년)까지 이 정부의 굵직굵직한 대책엔 모두 대출 규제가 들어갔다. 대출규제가 맨 앞에 놓인 적도 있을 정도다.

대출 규제가 빠지지 않는 이유는 빠른 효과 때문이다. 세법 등 법을 고쳐야 하는 다른 규제수단과 달리 정부가 시행날짜를 정해 은행에 통보하면 끝이다.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금지시킨 9·13 대책 발표후 6주만에 강남이, 9주만에 서울 전체 아파트가격이 하락 전환했다. 금융당국은 이 대책으로 청와대의 신뢰를 한몸에 받기도 했다. 효과가 확인된 대출 규제는 12·16, 2·20, 6·17대책을 거치며 대상은 넓어지고 강도는 세졌다.

한계는 있다. 효과는 빠르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실제로 부동산 대책의 효과 지속 기간은 갈수록 짧아졌다. 다주택자의 주담대를 금지한 9·13 대책 때 서울 집값이 하락후 반등하는데 32주가 걸렸지만 고가주택의 주담대를 금지한 12·16 대책 때는 하락전환후 10주만에 반등했다. 6·17 대책은 아예 내놓자 마자 서울 집값과 전세값이 치솟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대출 규제엔 일반인들까지 부동산 투자에 나서지 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정부 당국자들은 "전문 투기꾼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일반인들까지 덤벼들면 감당이 안된다"고 말하곤 한다. 여윳돈이 없는 일반인들은 대출을 끊으면 투자에 나설 수 없다.

대출규제는 사람들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 주택공급, 분양과 청약, 세금 등 따라와야 했던 다른 대책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거나 시행됐어도 먹히지 않았다. 결국 시장은 빈틈을 찾아냈다. 애초에 대출의 영향을 받지 않던 현금부자들은 급매로 나온 비싼 아파트들을 주워 담았다. 대출 규제를 받는 사람들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로 갭투자(전세끼고 매입)에 나섰다.

부작용은 심각하다. 규제 대상에서 투기꾼과 실수요자의 구분이 사라졌다. 마치 전쟁터에서 몰려드는 적군을 막을 수 없어 아군·적군 구분없이 무차별 폭격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6·17 대책 발표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제가 투기꾼입니까"라는 글들이 넘쳐난 이유다. 대출규제를 남용한 결과다.


문재인 대통령의 보완책 마련 지시로 22번째 부동산 대책이 임박했다. 다주택자에게 중과세 해라, 수요 억제 규제를 풀고 공급을 시장에 맡겨라, 임대사업제도·전세제도가 문제다 등 스피커들마다 한마디씩 얹고 있지만 결국 22번째 대책의 대부분도 규제로 채워질 전망이다. 현 정부가 집값 잡기에 실패했지만 부동산으로 돈 벌 생각하지 말라는 철학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3년간 확인했다.

다 좋다.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22번째 대책에 꼭 담겨야 하는 것이 있다. '희망'. 낮간지러운 단어지만 지금 국민들이 부동산 정책에 분노하는 이유는 결국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2030 들이 갭투자에 뛰어드는 것도 기다리면 나도 집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없어서다.

흙수저 20, 30대가 서울 시내 작은 임대주택에서 살다 결혼할 때쯤 전세대출 받아 아파트 전세라도 얻을 수 있다는 희망.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작은 평수 아파트라도 대출받아 내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20평대 작은 아파트에서 빚 갚으며 살다 아이가 크면 아이방 하나 줄 수 있는 아파트로 이사갈 수 있다는 희망. 꼬박꼬박 담보대출 갚다 보면 내집이 되고 노후엔 그 집을 종잣돈으로 연금이라도 받으며 살 수 있다는 희망.

이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계산이 나오는 대책이기를 기대한다. 한가지만 덧붙이자면 대책을 서두르지 않아야 한다. 발표해놓고 보완하겠다는 것만큼 대책을 희화화하는 것도 없다.

김진형 건설부동산부장 / 사진=인트라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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