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10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아Q'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김명룡 특파원 | 2020.07.03 04:01
중국의 작가 루쉰이 1921년 발표한 소설 '아(阿)Q정전'은 중국인 특유의 '정신승리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의 주인공 아Q는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이 날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아Q의 '아'는 중국인들이 성이나 이름 앞에 붙여 친근감을 나타내는 글자에 불과하다. 'Q'는 당시 변발을 의미해 아Q는 제대로된 이름도 없는 최하층민을 상징한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도록 맞아도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불쌍해서 봐줬다"며 돌아서서 웃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이 없을 때는 노름판과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지만 "옛날에는 너보다 훨씬 잘 나갔어"라며 웬만한 사람은 다 무시한다.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정신승리법'을 비판하고 중국인의 민족성을 바꾸려고 했다. 이 같은 정신승리법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리합리화에 불과할 뿐 상황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발생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집단 감염은 중국식 정신승리법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중국의 도시 우한(武漢)에서 수천명의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중국 전역으로 퍼지자 중국 당국은 지난 3월 베이징으로 오는 국제선 항공편을 인근 도시를 경유 하도록 했다. 베이징으로 코로나19가 역유입이 되는 것을 막는 조치였다.

경유 도시엔 중국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상하이(上海)도 포함됐다. 바꿔 생각해보면 코로나19 방역에서 베이징이 중국 어느 도시보다 중요했단 의미다.

그도 그럴 것이 베이징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롯한 중국 최고 지도부가 거주하는 곳이다. 지난 5월 말부터 열린 최고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 참석한 지방의 권력자들도 핵산검사와 격리를 하는 등 강력한 방역조치를 피하지 못했다.


양회를 마친 이후 6월 초 베이징은 코로나 방역 강도를 낮췄다. 전세계 코로나19 판데믹(대유행)을 촉발했다는 눈치를 받았지만 가장 먼저 코로나19를 극복했다는 자신감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넘쳐났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만에 베이징 최대 농수산물 도매시장 신파디(新發地)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베이징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집단발병 이후 지금까지 베이징에선 329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코로나19 확산을 막으려 했던 '역점도시' 베이징이 뚫리자 감염원인 찾기에 비상이 걸렸다. 중국 방역당국의 능력은 대단했다. 중국 방역당국은 서울의 가락동 도매시장의 2배 넓이로 하루 평균 5만명이 이용하는 이 시장에서 단 며칠 만에 정확히 최초 오염원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베이징시는 지난 6월12일 신파디 시장 내에 수입 연어를 절단할 때 쓰는 도마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베이징시 질병예방통제센터 관계자는 "신파디 시장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유전자 서열이 유럽에서 온 것을 발견했다"면서 "해외 유입과 관련된 것이라고 잠정 판단했다"고 말했다.

두 가지 사실을 종합해보면 코로나에 감염된 외국인이 중국으로 수출할 연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유럽형 코로나19를 옮겼고, 이 바이러스가 저온의 콜드체인을 통해 이동하면서 생존했다가 신파디 시장의 중국인을 감염시켰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베이징의 집단 감염은 중국의 잘못이 아니란 의미다.

전문가들은 식품을 통한 코로나19의 확산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연어수입을 중단했고, 식품점과 식당에서 연어는 사라졌다. '연어는 죄가 없다'는 사실보단 베이징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에 '중국의 잘못은 없다'는 논리가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방역방식은 완벽했는데 유럽에서 들어온 연어 탓에 베이징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생겨버렸네." 아Q라면 지금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아Q정전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Q'식 중국의 정신승리법은 여전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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