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 이번엔 전적으로 믿고 따라가도 되나요?

전혜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0.06.22 10:21

복귀작 '사이코지만 괜찮아'로 명예회복할까

사진제공=tvN




"네가 내 안전핀 해라. 내가 펑 안 터지게 꽉 붙잡고 있어."


tvN 새 토일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연출 박신우·극본 조용)에서 고문영(서예지)은 문강태(김수현)에게 한 말이다. 대중에게 늘 만족감을 주던 배우 김수현은 극중에서도, 실제로도 ‘안전핀’이다. 적어도 혹평 일색이던 영화 ‘리얼’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 그가 제대 이후 숙고 끝에 고른 작품이자, 5년만 안방극장 복귀작인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대중은 물론 업계 관계자들은 ‘리얼’의 하락세의 기운이 김수현의 주종목인 드라마 작품에까지 이어질지, 혹은 SBS ‘별에서 온 그대’의 아성을 되찾고 본인의 이름값을 다시 증명할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는 상황. 시청자들은 ‘김수현픽’을 이대로 쭉 믿고 가면 될까.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버거운 삶의 무게로 사랑을 거부하는 정신 병동 보호사 문강태와 태생적 결함으로 사랑을 모르는 동화 작가 고문영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가는 한 편의 판타지 동화 같은, 조금 이상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사이코’적인 인물의 동화같은 로코라니. 김수현의 팬이라면 이 정체불명의 차기작을 선택한 것에 대한 은근한 불안과 의아함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김수현은 제대로 ‘김수현’했다. 오히려 그의 연기는 더욱 안정되고 발전된 형태를 띠며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문강태는 자폐 스펙트럼(ASD)을 가진 형 문상태(오정세)를 돌보며 삶을 이어가는 청년 가장.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그는 줄곧 아픈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를 보듬지는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아직 다 밝혀지지 않은 어린 시절의 성장 환경까지 가세한 그의 삶의 무게는 너무도 무겁고 벅차지만, 김수현은 아주 덤덤한 방식으로 그를 표현한다. 만화적인 요소가 다분한, 다소 낯설 수 있는 그래픽과 극적 장치들 속에서도 그는 문강태의 감정에 온전히 집중하게끔 만들어버린다. 이는 오롯이 김수현이 가진 눈빛의 힘 때문. 겉으로는 담담한 듯 보이지만, 그 뒤편 웅크린 감정들이 한껏 응축된 듯한 눈빛 연기는, 고작 1-2화 만에 문강태가 가진 서사들을 마치 한번에 다 꺼내 보여주는 듯 밀도가 있다. 특별히 힘을 주지도, 튀지도 않은 현실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우울한 내면을 가진 그에게 시청자는 단번에 빠져들었다.

사진제공=tvN



본격적인 멜로가 시작되기도 전이지만, 김수현의 주특기인 로맨스적 감정 연기 또한 단번에 발휘됐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인물들 내면의 깊숙한 상처들과 우울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들을 드라마의 성격을 결정짓는 1-2회차에 굉장히 크게 드러냈다. 사실 이 드라마를 가볍게 볼 수 있는, 서예지와 김수현의 비주얼을 내세운 동화적인 로맨스로만 기대 포인트를 맞춘 시청자들이라면 다소 실망했을 지점. 김수현은 보는 이들에게 무겁거나 공포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극의 무게감에 ‘설렘’이라는 요소를 한 스푼 끼얹으며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한층 더 풍부하고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정확한 발음과 디테일한 톤 조절, 과하지 않은 표정 연기는 “네 눈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어서 왔다. 온기라곤 없는 눈. 과거 내가 알던 사람과 같다”라는 다소 동화적이고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는 대사도 설득력 있게 만든다. 특히 태생적 결함으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고문영이라는 캐릭터의 설정값에도 적절한 현실감을 부여한다. 과하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뾰족한 것들을 수집하고, 계단에서 사람을 밀어 구르게 만드는 등의 반사회적 성향을 보이는 고문영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와 맞붙어도 평범해 보이거나 텐션이 흐트러지지 않게 문강태를 이끄는 김수현의 연기 덕에 극은 균형을 찾는다.


김수현은 매번 시청자들을 그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선 앞으로 데려다놓곤 했다. 배우 김수현을 지우고, 극의 캐릭터 자체에만 오롯이 몰입하게끔 만드는 능력은, 이 배우가 가진 가장 좋은 무기이자 힘이다. 데뷔작 KBS2 ‘드림하이(2011)’에서는 아이돌 연기자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면서도 송삼동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며, 청소년 성장드라마의 구태의연함에 신선함을 더했다. MBC ‘해를 품은 달(2012)'의 이훤으로는 디테일한 감정표현의 진수를 선보였다. SBS ‘별에서 온 그대(2013)’ 도민준은 김수현 표 판타지의 정점. 어린 외모를 지녔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낸 이의 성숙함을 제대로 표현했고, 판타지적인 인물이지만 현실 남자의 특징까지 모두 응축한 듯한 그의 연기는 ‘외계인’이라는 캐릭터의 속성에 설득력을 부여했다. 어리숙하고 우유부단한 방송국 막내 PD로 분한 KBS2 ‘프로듀사(2015)’에서의 연기는 반전적이고, 신선했다. 스크린 데뷔작 ‘도둑들(2012)’과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에서도 그는 마치 만화 속에 뛰어 들어간 현실의 인물인 것처럼, 복합적이며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무작정 강하기만 하고 화려한 연기를 선보이기보단 자신의 캐릭터의 감정선을 단단하게 구축한 채, 맞붙은 캐릭터의 개성이나 감정에 따라 완급조절을 잘 한 덕에 가능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필요한 순간엔 불붙은 듯 날카로운 연기로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는 그의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발휘될 것으로 보인다.

선택하는 캐릭터가 의외성을 띤다는 것도, 새로운 장르적 선택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점도 김수현의 매력. 그가 그간 연기해온 캐릭터들은 어느 하나 겹치는 것이 없다. 판타지 장르건 현실 장르건, 배경이 조선이건 현재이건, 남한 사람이건 북한 사람이건 그는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배우적 역량을 자랑해왔다. 연기는 물론, 작품을 선택하는 것에도 탁월한 안목을 보여줬고, 늘 만족감을 선사하던 그이기에 가장 의외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 ‘리얼(2017)’의 흥행 참패와 부족한 작품성은 안타까움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어떨까. 2화까지의 시청자 반응은 아직은 엇갈리는 모양새. 현란한 그래픽이 몰입을 해치고 스토리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과 독특한 장면 전환, 동화적인 대사와 어두운 에피소드의 조합이 신선했다고 하는 반응으로 극명하게 나뉘어졌다. 시청률 또한 1화 평균 6.1%에서 2화 4.7%(닐슨코리아 기준)로 1.4%P 하락한 상황. 김수현은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늘 대중이 그를 믿고 따라가게끔 만드는 능력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그는 특유의 매력과 연기력으로 이 슬픈 동화 같은 이야기를 잘 설득해낼 수 있을지,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단순 ‘복귀작’이 아닌 ‘흥행작’으로, 또 하나의 레전드작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전혜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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