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100℃] '말폭탄'이 '고사포' 되기도…남북 삐라 잔혹사

머니투데이 뉴스1 제공  | 2020.06.20 10:06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를 계기로 본 한반도 삐라의 역사

[편집자주][북한 100℃]는 대중문화·스포츠·과학·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북한과의 접점을 찾는 코너입니다. 뉴스1 북한팀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을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과 의원회관 옥상에서 북한의 대남 선전용 전단(삐라)가 발견됐다. 2017.3.9/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이설 기자 = "우리의 최고 존엄을 악랄하게 훼손하는 삐라(전단) 살포 망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북남(남북) 대화도, 북남관계 개선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14년 11월, 북한의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측이 삐라 살포를 중단하지 않으면 어떤 남북 대화도 하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당시 한반도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방남한 북측이 2차 고위급 접촉에 합의하면서 '화해 무드'가 조성돼 있었다. 그러나 결국 그 해 2차 고위급 접촉은 성사되지 않았다. 삐라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다.

"우리에 대한 비방 중상을 거리낌 없이 해댄 똥개, 쓰레기들의 짓거리에 대한 뒷감당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남조선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6년 후, 다시 되풀이됐다. 2020년 6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삐라를 살포한 탈북자들을 향해 '똥개' '쓰레기' 같은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남한 정부에 사태의 책임을 물었다. 남북 소통의 상징이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같은 이유로 북한에 의해 폭파됐다. 삐라 문제는 왜 풀리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졌을까.

◇"귀순하시오!"부터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까지

삐라를 둘러싼 역사는 6·25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남북은 '심리전'의 일환으로 이를 적극 활용했다. 남측은 귀순과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을, 북측은 연합군을 몰아내고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남한과 유엔은 약 25억 장을, 북한과 중국은 약 3억 장을 서로를 향해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기 삐라는 안전보장 증명서(safe conduct pass)가 새겨진 게 특징이다. 삐라를 가져오면 신변을 보호해주겠다는 표시다.

한국 전쟁 당시 대남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전쟁 이후에도 '심리전'은 이어졌다. 메시지는 더 노골화됐다.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으니 넘어오라'는 회유였다. 1960~1970년대 북한은 발전된 평양의 모습을 부각하고 김일성 주석의 업적을 찬양하며 체제 선전에 나섰다. 당시엔 북한이 우리보다 경제 사정이 더 나아 월북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한다.

대남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대남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대북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남한은 1980년대 달라진 경제적 위상을 과시한다. 특히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적극 홍보했다. 삐라를 보면 '배불리 먹고 싶지 않습니까' '한국은 풍족하게 잘 산다' 등 직접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당대 잘 나가는 여배우나 부유한 가정의 사진을 넣어 선전효과를 높이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상대를 비방하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대북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대북 삐라.(DMZ박물관 자료 갈무리)© 뉴스1

◇"삐라는 살아있다?"…민간단체가 이어온 역사


'심리전'을 멈추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의 3대 원칙을 천명한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양측은 상호 중상과 비방을 금지하자고 합의했다. 비방·중상 금지는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제1장 이행 부속합의서'에도 명시돼 있다. 이어 남북은 6·15 남북공동선언 발표 4주년이 되는 2004년 6월 15일, 군사 분계선(MDL)에서의 모든 방송과 게시물, 전단을 통한 선전 활동을 금지하며 당국 차원의 삐라 제작을 '올 스톱'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해 6월 25일 6·25전쟁 69주년을 맞아 인천시 강화군 양사면 교산리에서 대북전단 50만장을 북쪽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제공) 2019.6.25/뉴스1

하지만 이때부터 민간단체들이 삐라 살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탈북자 단체들은 2004년 이후 "민간차원에서라도 보내자"라며 삐라 날리기를 주도했고, 살포 횟수와 분량은 크게 증가했다. 북한의 반발도 커졌다. 2014년 10월 북한은 연천군 일대에서 민간단체가 띄운 삐라를 향해 고사총을 발사해 한 때 전시 경보가 발동되기도 했다.

당국 차원의 삐라 살포도 유사시 재개됐다. 남측은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 대북조처'의 일환으로 대북 심리전 재개를 선언하고, 40여만 장을 북한 지역으로 날려 보낸 적이 있다. 삐라엔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 북한의 개혁개방 촉구 등 9가지 내용이 담겼다. 북한도 장성택 처형 이후 2013년 백령도 부근으로 대남 삐라를 보냈다. 당시 북한은 우리 군을 향한 도발 메시지를 삐라에 담았다.

결국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공동선언 2조 1항에서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기로 다시 약속했다.

◇北은 불만·경고…南은 '표현의 자유' 난색

하지만 2020년 현재까지 삐라는 여전한 화두다. 왜 일까? 대북 삐라 살포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민간단체의 자발적인 협조를 요구해왔다. 북한이 남한 정부가 삐라를 방관하고 있다고 불만을 품게 된 이유다.

북측은 2008년 10월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삐라 살포가 계속될 경우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로를 차단하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부는 당시 법적 근거를 검토했고, 민간단체들이 대형 수소가스를 넣은 풍선에 삐라를 매달아 날리기 점을 근거로 고압가스안전관리법 위반 여부까지 검토됐으나 '제재 불가능'이란 결론을 내렸다. 2014년 고사총 사격 사건 이후 대북 전단 살포 금지 법률이 발의됐지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이유로 현실화되진 못했다.

판례는 있다. 2016년 3월 대법원은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판결했다. 일부 탈북민이 정부의 제재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인데, 법원은 삐라를 살포하는 지역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이 우선이라고 판시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의 대남 담화 이후 청와대와 통일부도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교류협력법뿐만 아니라 공유수면법, 항공안전법 등 국내 관련법을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삐라 살포가 공유수면에서 정당한 사유 없이 폐기물, 폐수 등 오염물질을 버리거나 흘리는 행위라는 것. 비행제한공역에 드론(무인기)을 날릴 때는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항공안전법도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유권해석일 뿐, 실제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7일 2면에 개성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을 공개했다. /2020.6.17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대북 삐라를 계기로 연일 강경 행보를 보이고 있는 북한은 대규모 대남 삐라 살포까지 예고했다. 삐라를 계기로 한반도 내 긴장감이 조성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북이 48년 전 최초로 대북 삐라 살포를 중지한 명목은 상호 중상과 비방을 중지하자는 데 있었다. 대북 삐라를 문제 삼아 '최고 존엄'을 훼손했다는 그들은 우리를 향해 "역스럽다" "혐오감을 느낀다"며 모독에 가까운 '말 폭탄'을 쏟아내고 있다. 비방을 멈추라며 다시 비방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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