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체벌' 허용법 폐지하려는 정부…여론은 '반반'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 2020.06.16 04:30
/사진=이지혜 디자인기자

부모의 '사랑의 매'가 당연하다는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을 중심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충남 천안에서 여행가방에 갇혀 숨진 아동과 경남 창녕에서 쇠사슬로 묶이는 등 학대 당하다 도망친 아동 사건 등이 이같은 논의에 박차를 가하는 분위기다. 피해 아동들의 부모들이 경찰 조사에서 훈육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해명한 일이 알려지면서다.

이에 비해 절반 이상의 시민들이 여전히 부모의 일부 체벌은 불가피하다고 인식한다는 점이 여론조사 결과를 통해 확인됐다.


성인 10명 중 7명은 "필요하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15일 머니투데이가 입수한 아동인권 NGO(비정부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여론조사(조사위탁기관 : 마크로밀엠브로인)에서 부모가 훈육을 위해 아동에게 때리는 등의 신체적 체벌을 가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는 의견은 26.9%으로 집계됐다.

73.1%는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일부 신체적 체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적극 사용해야 한다'는 응답은 0.9%에 그쳤지만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면 사용 가능하다'는 응답은 35.6%,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응답은 36.6%였다.

고함치기나 내쫓기 등 비신체적 체벌이 자녀 훈육에 필요하다는 응답도 절반 이상이었다. '어떤 경우에도 안 된다'는 응답이 40.8%로 신체적 체벌 문항에서보다 높았지만 58% 이상은 비신체적 체벌에 동의했다.

이 조사는 세이브더칠드런이 민법 제915조 개정 운동을 하며 지난해 11월28일부터 12월15일까지 17일 동안 전국 20~60대 성인 남녀 1만명(성·연령·지역별 인구 비례 할당 후 가중치 적용)을 온라인 조사한 결과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0.98%포인트)

1958년 만들어진 민법 제915조는 친권자가 자녀를 징계할 수 있다는 조항으로 60년 넘게 유지돼 왔다.

이 여론조사에 따르면 시민들은 이 조항의 '부모의 자녀 징계'에 체벌이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 56.7%가 이같이 답한 반면 체벌이 포함되지 않는 개념이라는 응답은 43.3%였다.

이 조항을 교육 목적이라도 부모가 체벌하지 못하도록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51.1%(매우 찬성 13.8%, 찬성 37.3%)로 반대 의견 48.9%(반대 41.4%, 매우 반대 7.5%)과 팽팽하게 맞섰다.


"시대가 변했는데 아이를…" vs "학대는 안 되지만…"


의붓 아들을 여행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계모가 지난 10일 오후 충남 천안 대전지검 천안지청으로 송치되기 위해 천안동남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스1

머니투데이가 이날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도 부모의 체벌 필요성에 다소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자녀를 둔 회사원 장근숙씨(51·남)는 "우리 어릴 때는 부모의 체벌이 당연시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시대와 문화가 바뀌었다"며 부모의 체벌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아직 미혼이라는 직장인 황신희씨(25)는 "언니와 싸우거나 했을 때 회초리로 맞거나 두 손 들고 있기 등의 체벌을 많이 받으면서 컸는데 경험상 그런 체벌은 일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씨는 "부모가 아이에게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리고 자기 잘못에 대한 처벌의 의미로 합의된 만큼 횟수를 정해 때리는 것은 교육적 차워에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주도 있다는 홍문종씨(78)는 "나도 자라면서 많이 혼났고 아들도 공부 안 할 때 회초리로 혼내면서 키웠다"며 "아들도 부모의 자녀 체벌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면서도 자기 자식 낳아보니 이해가 간다더라"고 말했다.

홍씨는 다만 천안 여행가방 학대사건과 창녕 아동학대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는 "학대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씨는 "사랑이 있으면 때리면서 부모가 더 마음 아픈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마다 생각은 달랐지만 대부분 "자기도 맞으며 컸다"며 부모의 자녀 체벌이 우리 사회에 일상화돼왔다는 데는 공감했다.

장씨 역시 "사실 꿀밤이나 요즘 애들 말로 '등짝 스매싱(smashing)' 같은 것은 체벌이 아주 불가피할 경우에는 가능한 범주라고 생각한다"며 "그정도까지 폭력 범주에 넣는다면 우리나라에 폭력을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법 915조 삭제 추진 움직임…"상징적 의미"


9살 의붓딸을 학대한 계부(35)가 15일 오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기 위해 경남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스1

앞서 법무부는 지난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법상 체벌금지 법제화를 하겠다며 이 조항 삭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인권단체들도 이 조항이 2015년 신설된 아동복지법 제5조 2항과 배치된다며 폐지 서명운동을 진행해 왔다. 아동복지법에서는 부모 등 보호자가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폭언 등 정신적 고통을 가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다.

민법 915조 삭제는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 폐기된 적 있다. 이와 관련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날 페이스북에 "이 조항에 의해 지금껏 많은 아동학대 사례들이 감형되거나 무죄가 되곤 했다"며 개정 입법을 약속했다.

아동인권 변호사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아동인권위원회 소속 신수경 변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과거 학교에서 교사의 체벌 금지도 국민의 인식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느냐"며 "개정이 되면 아동에 대한 모든 체벌을 금지하는 상징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변호사는 "부모가 아동을 훈육할 권리는 남겨두자는 의견이나 체벌 수위를 법으로 지정하자는 의견도 있지만 민법에서 이를 규율하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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