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을만큼' 많이 만들었지만 이 대표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1992년부터 캐드(CAD)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설계도(본本) 제작 프로그램 '마스터 테일러'를 개발한 이 대표는 최근 2세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비대면 맞춤 정장 제작 프로그램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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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부터 신체치수 데이터화…'마스터 테일러'로 결실━
'마스터 테일러'는 캐드 기반 재단 설계도 제작 프로그램이다. 통상 신체지수를 잰 뒤 재단사들이 원단에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는 방식을 프로그램으로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에 신체치수를 입력하면 설계도가 만들어지고 재단사는 설계도를 인쇄해 원단에 덧댄 뒤 재단하면 된다.
마스터 테일러의 장점은 손님 체형에 따라 신체치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수 많은 곡률들까지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재단사들만 표현해낼 수 있는 신체 특징들, 예컨대 팔 근육이 더 발달했다거나 어깨가 솟아있다는 점 등을 반영할 수 있다"며 "슬림한 핏과 클래식한 핏도 하나하나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이 대표가 오랫동안 고객정보를 데이터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부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오면서 평생 동안 작업한 결과물들을 담았다"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가 보여준 설계도가 저장된 폴더에는 수천명이 넘는 손님의 설계도가 저장돼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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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쌓아올려 만든 '마스터 테일러'…비대면 맞춤정장 도전장━
정장 설계도 제작 프로그램이 완성되자 이 대표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신체치수 측정만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면 맞춤 정장도 기성복처럼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신체치수를 재는 3D스캐너는 이미 해외에서 개발된 상태였다. 다만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기는 대당 1억원이 넘었고 그마저도 스캔을 위해 손님이 가게를 방문해야 해 비대면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수준의 스마트폰 카메라라면 3D스캐너를 대신해 치수측정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앱으로 원단·핏을 고르고 신체를 촬영하면 자동으로 치수가 마스터 테일러에 입력돼 맞춤 정장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큰아들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앱 개발에 나섰다. 연말까지 앱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앱이 만들어지면 비대면 맞춤 정장 제작이 가능해진다"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 정장 제작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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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JP 정장도 만든 장인...기성복 물결에 '끝없는 도전'━
하지만 명장도 값싸고 빠른 기성복의 물결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기성복은 신체를 반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겉감·안감을 바느질 대신 기계접착으로 만들어 날씨에 따른 원단 수축·이완에 약하다"면서도 "하지만 쉽고 빠르게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기성복을 선호하면서 맞춤 정장 시장이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변화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지금 당장 기술이 좋다고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냐"며 "새로운 도전에 또 새로운 성취도 느끼게 된다"고 웃어 보였다. 이 대표가 70의 나이에도 IT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다면 아들 이필성 대표뿐 아니라 후진 재단사(테일러)를 양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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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백년소공인 선정..."기술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 확대해야"━
이 대표는 "정부에서도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만들어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소공인들이 보통 기술만 좋지 자금력, 마케팅능력 등은 턱없이 부족한 만큼 이와 관련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공인들의 숙련된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수해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각 분야의 숙련기술을 교육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며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도 소공인들의 숙련기술을 적극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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