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JP 정장 만든 70세 명장, '비대면 맞춤정장' 도전장

머니투데이 고석용 기자 | 2020.06.17 08:24

[백년소공인 스마트 백년지대계]②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데이터화·비대면화로 제2 도약"

'57년'.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70)가 남성 정장을 만들어온 기간이다. 양복이 대중화될 무렵인 1963년, 이 대표는 양복점에 취업했다. 큰 뜻으로 선택한 길은 아니었다. 형편이 어려워 학교 대신 선택한 게 양복점이었다. 하지만 그 길은 곧 천직이 됐다. 1970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1년에는 노동부가 선정하는 '명장'에 선정돼 자타공인 정장제조의 최고봉이 됐다.

정장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수 있을만큼' 많이 만들었지만 이 대표는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1992년부터 캐드(CAD)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설계도(본本) 제작 프로그램 '마스터 테일러'를 개발한 이 대표는 최근 2세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비대면 맞춤 정장 제작 프로그램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20년 전부터 신체치수 데이터화…'마스터 테일러'로 결실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마스터 테일러'는 캐드 기반 재단 설계도 제작 프로그램이다. 통상 신체지수를 잰 뒤 재단사들이 원단에 손으로 설계도를 그리는 방식을 프로그램으로 가능하게 했다. 프로그램에 신체치수를 입력하면 설계도가 만들어지고 재단사는 설계도를 인쇄해 원단에 덧댄 뒤 재단하면 된다.

마스터 테일러의 장점은 손님 체형에 따라 신체치수로 표현할 수 없는 수 많은 곡률들까지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수십년의 경력을 가진 재단사들만 표현해낼 수 있는 신체 특징들, 예컨대 팔 근육이 더 발달했다거나 어깨가 솟아있다는 점 등을 반영할 수 있다"며 "슬림한 핏과 클래식한 핏도 하나하나 조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그램 개발이 가능했던 것은 이 대표가 오랫동안 고객정보를 데이터화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부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오면서 평생 동안 작업한 결과물들을 담았다"고 했다. 실제로 이 대표가 보여준 설계도가 저장된 폴더에는 수천명이 넘는 손님의 설계도가 저장돼있었다.



데이터 쌓아올려 만든 '마스터 테일러'…비대면 맞춤정장 도전장


[백년소공인 기획]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정장 설계도 제작 프로그램이 완성되자 이 대표에겐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신체치수 측정만 비대면으로 할 수 있다면 맞춤 정장도 기성복처럼 온라인 쇼핑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신체치수를 재는 3D스캐너는 이미 해외에서 개발된 상태였다. 다만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기는 대당 1억원이 넘었고 그마저도 스캔을 위해 손님이 가게를 방문해야 해 비대면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대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금 수준의 스마트폰 카메라라면 3D스캐너를 대신해 치수측정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앱으로 원단·핏을 고르고 신체를 촬영하면 자동으로 치수가 마스터 테일러에 입력돼 맞춤 정장을 제작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큰아들인 이필성 대표와 함께 앱 개발에 나섰다. 연말까지 앱을 완성하는 게 목표다. 이 대표는 "앱이 만들어지면 비대면 맞춤 정장 제작이 가능해진다"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맞춤 정장 제작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MB·JP 정장도 만든 장인...기성복 물결에 '끝없는 도전'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는 1969년 전국기능대회, 1970년 국제기능대회 양복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1에는 대한민국 양복명장으로도 선정됐다. 왼쪽 사진부터 전국기능대회, 국제기능대회, 명장 선정 장면 /사진=골드핑거
57년 경력의 이 대표가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에 도전하는 것은 맞춤 정장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1963년 양복점에 취업한 이 대표는 1970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는 등 기술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2001년에는 '대한민국양복명장'에도 선정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재 등 유명인사들도 그에게 정장 제작을 맡겼다.

하지만 명장도 값싸고 빠른 기성복의 물결을 견뎌내기는 쉽지 않았다. 이 대표는 "기성복은 신체를 반영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겉감·안감을 바느질 대신 기계접착으로 만들어 날씨에 따른 원단 수축·이완에 약하다"면서도 "하지만 쉽고 빠르게 옷을 사 입을 수 있는 기성복을 선호하면서 맞춤 정장 시장이 줄어들었다"고 토로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변화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지금 당장 기술이 좋다고 안주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겠냐"며 "새로운 도전에 또 새로운 성취도 느끼게 된다"고 웃어 보였다. 이 대표가 70의 나이에도 IT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다면 아들 이필성 대표뿐 아니라 후진 재단사(테일러)를 양성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초 백년소공인 선정..."기술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 확대해야"


[백년소공인 기획]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인터뷰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골드핑거는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올해 초 도입한 '백년소공인'에도 선정됐다. 백년소공인은 업력 15년 이상 제조업 소공인 중 혁신의지, 차별성·우수성, 성장역량 등을 가진 소공인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책자금 대출 시 금리인하(0.4%포인트), 우대보증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정부에서도 다양한 지원 제도를 만들어줘 새로운 도전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도 "소공인들이 보통 기술만 좋지 자금력, 마케팅능력 등은 턱없이 부족한 만큼 이와 관련된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공인들의 숙련된 기술을 다음 세대로 전수해줄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각 분야의 숙련기술을 교육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며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도 소공인들의 숙련기술을 적극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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