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바뀐 구룡마을 재개발, 강남구·SH공사도 몰랐다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이소은 기자 | 2020.06.12 06:58
지난 3월 오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육군 수도권방위사령부 장병들이 코로나19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서울시가 지난주 전격 발표한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재개발 수정 계획안이 협상 주체인 토지주와 거주민은 물론 강남구청,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 관계 기관과 협의를 전혀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토지주들은 서울시가 사업 인허가권을 무기로 일방적으로 계획을 수정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수년간 토지보상과 개발계획 과정에 함께 참여한 강남구청과 SH공사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기존 계획안 승인 후 협의 '꼼수' 논란…4000가구 임대 계획 없어


서울시는 11일 게재한 시보에서 '개포(구룡마을) 도시개발구역 실시계획'을 인가했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구역지정 이후 4년 만에 승인한 것이다.

이번에 승인된 실시계획은 지난해 5월 발표한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약 8만평(26만6502㎡) 부지에 최고 35층 주상복합 974가구, 최고 20층 아파트 1864가구 등 2838가구의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공원, 교육시설 등을 조성하는 내용이다.

주택 공급유형도 임대 1107가구, 분양 1731가구를 유지했다. 지난 7일 서울시가 발표한 공공임대 4000가구 조성 계획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시는 기존 실시계획안으로 승인한 뒤 토지주 등 관계자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체 공급량이 1000가구 이상 늘어난 데다 분양주택을 아예 없앤 완전히 새로운 계획이란 점에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도시개발사업 조감도. /사진제공=강남구청



관계 기관에 알리지 않고 공청회도 건너 뛰어


서울시는 관계 기관에도 이처럼 중요한 사업계획 변경을 미리 알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청 관계자는 "기존 개발계획으로 실시승인이 났기 때문에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4000가구 임대주택 공급은 주민들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SH공사 관계자는 "사전에 바뀐 개발계획에 대해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했다.

서울시는 당초 지난달 지역 주민, 관계 기관과 합동으로 구룡마을 개발계획 관련 공청회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실제로 열리진 못했다. 서울시가 임의대로 바꾼 계획안을 언론 발표로 통보한 셈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11월 10일 오후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을 찾아 화재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24만호 공공임대 위한 무리수? 서울시 "로또 분양 차단 대책"


토지 보상과 거주민 이주대책 문제가 얽혀 10년 넘게 지연된 구룡마을 개발사업에 서울시가 이런 충격요법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선 서울시가 오는 2022년까지 공적 임대주택 24만호 공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수정안대로 사업이 추진되면 구룡마을에서만 약 3000가구의 임대주택이 추가로 확보된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지 않는 이상 강남권 핵심 입지에 이런 대규모 공공임대 물량을 확보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서울시는 이런 해석이 맞지 않다고 반박한다. 양용택 서울시 재생정책기획관은 "분양가상한제가 시행 중인데 강남권 고가주택이 밀집한 입지에 공공분양 아파트가 공급되면 '로또 분양'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며 "투기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김성보 서울시 주택기획관은 "구룡마을 개발계획과 관계없이 전체 임대주택 공급 목표엔 차질이 없다"고 강조했다.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내부 전경. /사진=이재윤 기자



"헐값에 강제수용" 토지주 강력반발


이번 실시계획에 담긴 예상 토지 보상비는 4344억4700만원으로 책정됐다. 3.3㎡당 평균 538만원 수준이다.

토지주들은 3년 전 SH공사가 체비지(시행자가 경비충당 등을 위해 매각처분할 수 있는 토지) 가격을 3.3㎡당 평균 2700만원대에 책정한 점을 고려할 때 3.3㎡당 2500만원대 이하로 팔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시는 토지주들을 설득할 카드로 '리츠'(부동산투자신탁)를 검토 중이다. 3.3㎡당 500만~600만원대 토지보상금을 지급하되, 이와 별개로 토지주와 SH공사가 토지를 현물출자해서 투자운용사와 대토보상리츠를 만들어 공공임대주택에서 나온 임대수익을 나누는 방안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토지주와 갈등이 커져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구룡마을 토지주협의회장을 지낸 임무열씨는 "그동안 서울시와 강남구청이 개발계획을 놓고 대립한 탓에 피해는 고스란히 토지주와 주민이 받고 있다"며 "계획을 완전히 바꿔 4000가구 공공임대만 넣겠다는 것은 결국 헐값에 땅을 강제수용해서 서울시 치적만 쌓겠다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수정된 개발안에 반대한다"며 "서울시가 합리적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차라리 민간에 맡겨 준공영개발을 하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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