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무신사, 해외자본 끌어들인 속사정

머니투데이 이민하 기자, 고석용 기자 | 2020.06.09 04:30

[MT리포트] 외발자전거 탄 벤처생태계 (上)

편집자주 |  국내 벤처투자시장은 흔히 ‘외발자전거’에 비유된다. 투자시장에 비해 인수합병(M&A) 등 회수시장이 척박해서다. 회수시장이 여의치 않으니 투자시장이 성장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투자 여력이 큰 대기업들은 규제로 전략적 투자가 막혀 있다. K-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상당수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거나 아예 회사를 처분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맞는 국내 벤처투자시장의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본다.



11개 'K-유니콘' 10.7조 투자유치…해외자본이 95%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기업)으로 꼽히는 하이퍼커넥트는 최근까지 국내에서 추진했던 후속 투자유치를 잠정 중단했다. 국내에서는 7000억~1조원으로 추정되는 기업가치에 맞춰 투자를 할 만한 대형 투자자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하이퍼커넥트는 '중동의 카카오톡'이라고 불리는 영상 메신저 '아자르'를 운영하면서 매년 1000억원 이상 벌어들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1689억원으로 전년(1045억원)보다 6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2억원으로 17% 이상 늘었다.

국내 자금조달을 중단하는 대신 해외에서 전략적 투자자를 유치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이를 위해 올해 초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를 경영고문으로 영입했다. 그는 2009년부터 8년간 네이버 대표를 맡아 한게임 분할, 라인(LINE) 해외상장, 모바일 중심 사업구조 재편 등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하이퍼커넥트는 현재 국내에서 기업공개(IPO)나 후속 투자유치를 더 이상 추진하지 않는 상황"이라며 "글로벌 확장에 맞춘 전략적인 방안들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K-유니콘 해외자본 의존도 심화…국내 자금은 5% 불과

하이퍼커넥트처럼 국내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해외로 눈을 돌리거나 아예 회사를 매각하는 유망 벤처·스타트업들이 늘고 있다. 실제 국내 유니콘 기업들이 유치한 투자자금 중 해외자본 비중은 95%에 육박한다. 유니콘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지만 정작 잇속은 해외자본이 챙길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8일 스타트업 전문 조사기관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유니콘 기업은 쿠팡과 옐로모바일, 엘앤피(L&P)코스메틱, 크래프톤, 비바리퍼블리카, 우아한형제들, 야놀자, 위메프, 지피클럽, 무신사, 에이프로젠 등 11개다.

이들 유니콘 기업이 유치한 투자자금 총액은 6월 현재 10조7127억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중 미국과 중국, 일본, 독일, 싱가프로 등 해외자본이 10조1935억원으로 전체 95%가량을 차지했다. 국내자본은 5200억원대로 약 5%에 그쳤다.

위메프와 에이프로젠, 야놀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국내자본 비중이 한 자릿수 또는 10%대에 머물렀다. 특히 쿠팡과 엘앤피코스메틱, 지피클럽, 무신사는 국내자본이 전혀 없었다.

◇"벤처투자 빗장 풀어 큰손 유인해야"

해외자본 의존도가 높은 탓에 유니콘으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 창출과 신산업 활성화 등 경제적인 효과가 쪼그라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쿠팡, 우아한형제들처럼 국내 산업생태계에 큰 영향을 주는 플랫폼 산업의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우아한형제들은 독일 딜리버리히어로의 인수 발표 이후 올해 4월 배달의민족 '이용 수수료' 체계를 변경, 사실상 수수료 인상하려다가 논란이 생겼다.

국내 벤처투자업계에서는 기업가치 1000억원 이상의 예비 유니콘들이 성장 단계에서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이 당연한 수순처럼 받아들여진다.

한 벤처캐피탈(VC) 관계자는 "창업 초기부터 '죽음의 계곡'을 넘기고 잘 육성시켜서 투자이익이 가장 큰 최종 단계에서 결실을 해외에 넘기는 셈"이라며 "투자시장이 성장한 만큼 국내에서도 리드 투자를 맡을 수 있는 대형 투자자들이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민하 기자





마중물만 넘치는 벤처시장...CVC로 '큰손' 물꼬 터야



국내 벤처투자생태계는 기형적인 구조다. 미국 등 선진국은 '창업-투자-성장-회수(M&A, IPO)·재투자'의 기업 성장단계를 거치지만, 국내는 후반부인 자금회수 고리가 정체돼 선순환 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투자 자체가 움츠려들면서 우려가 더 커지고 있다.

8일 중소벤처기업부와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 투자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 줄어든 7463억원으로 집계됐다. 1분기 투자가 감소한 것은 2013년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19로 투자 회의가 대부분 연기되고,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 측은 "1분기 투자 감소폭이 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예상보다는 적었지만, 2분기 이후 투자시장이 더 악화될 우려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벤처투자업계에서는 투자시장 위축을 막기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개선작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등 투자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형 투자자들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다. 한 국내 중소형 VC 대표는 "국내 시장에서는 투자금액 100억원~1000억원 이상 쏴줄 수 있는 '리드 투자자'(투자비중 30% 이상의 최우선 투자자)가 극히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선순환 막힌 기형적 구조…정체된 '자금 회수'(엑시트) 시장


지난해 벤처기업에 신규 투자된 금액은 4조2777억원으로 2001년 통계를 집계한 이후 처음 4조원대에 진입했다. 투자가 커진 만큼 회수시장이 뒷받침을 해줘야 하는데, 회수 시장이 커지지 않는 한 투자생태계는 '반쪽짜리' 기형적인 구조가 될 수 밖에 없다.

벤처투자생태계의 후반부인 회수시장은 몇 년째 정체 상태다. 회수 수단이 상장과 구주(세컨더리) 매매에 70% 이상이 편중돼 있어서다.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어줄 인수·합병(M&A)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시장에서 투자금 회수규모는 2조322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M&A는 123억원, 0.5%에 불과했다. 건수는 123건에 그쳤다. 회수 방안의 70% 이상은 상장과 세컨더리(구주) 매매에 쏠렸다.

기업공개(IPO) 상장을 통한 회수는 8522억원(36.7%)이었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97개 기업 중 절반 이상인 53개사(54.6%)는 벤처캐피탈(VC)의 투자를 받은 곳이었다. 장외 매각·상환 규모는 1조297억원(44.3%)이었다. 장외 매각은 기존 주주가 새로운 투자자에게 자신의 보유지분을 매각해 투자금을 되찾아가는 방식이다.


국내 회수시장은 상장과 구주 매매가 70%를 웃돌면서 편중된 구조가 오랜 기간 고착화됐다. 상장과 장외매각·상환을 통한 회수는 2015년에도 7726억원(37.2%), 9565억원(46.0%)으로 비슷한 규모를 나타냈다. 반대로 같은 기간 M&A를 통한 회수는 874억원(4.2%)에서 100억원 남짓, 1% 미만으로 쪼그라들었다.

(서울=뉴스1) =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서울 강남구 나라키움청년창업허브에서 열린 '위기를 기회로, 차세대 글로벌 청년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2020.5.14/뉴스1

◇기업가치도 코스닥 상장 수준에 맞춰 책정 공식


수 천억원에서 수 조원을 조달할 대형 투자자가 없기 때문에 결국 자금 회수 방법으로 상장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다. 한 국내 대형 VC 팀장은 "코스닥 시장 상황에 맞춤해 기업가치도 3000억~4000억원 수준에 맞춰서 책정하고, 상장으로 자금을 회수되는 게 업계에서는 가장 성곡적인 공식으로 통한다"고 털어놨다.

국내와 달리 미국은 투자자금의 절반 이상이 M&A를 통해 회수된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이 직접 대형투자자로 크고 작은 M&A를 꾸준히 시도한다. 아마존은 미국 도어락 시장의 확장을 대비해 비디오도어락회사인 링(Ring))을 1조원 규모로 인수했고, 구글도 앞서 인공지능(AI) 개발회사 '딥마인드테크놀로지'를 약 6000억원에 사들였더 게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핵심 제품인 파워포인트, 핫메일, 스카이프, 링크드인 등은 모두 M&A로 획득한 결과물이다.

국내 한 액샐러레이터 대표는 "국내 초기 투자는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활성화된 게 사실인 반면 투자생태계 다른 한 축인 회수시장은 척박한 실정"이라며 "투자생태계가 자생력을 갖추려면 투자와 회수, 재투자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가 정상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금력·사업성 다 갖춘 CVC 필요

국내 벤처생태계에서 대형 투자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대기업들의 직접적인 벤처투자가 막혀 있어서다. 과거 재벌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해 필요했던 조치들이 현재 이들의 벤처투자를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됐다.

한 국내 대기업 계열 CVC 임원은 "대기업이 직접 벤처투자를 할 수 있는 CVC 허용에는 여러 합의가 필요한 것은 맞다"며 현재 대기업과 벤처·스타트업이 처한 상황을 20여년 전 같이 딱 잘라서 '갑을' 관계로만 따지기보다 새로운 관계정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대기업 참여가 미미한 상황에서 국내 스타트업들은 성장을 위해서 해외 투자에 의존을 하는 상황이다. 기업들 키워서 해외자본에 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혁신 성장동력을 찾아야만 하는 대기업들은 국내 규제를 피해서 해외 벤처기업을 M&A하고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지주회사인 SK와 LG는 국내 대신 해외에서 SKTVC, LG테크놀로지벤처스 등 CVC를 설립해 스타트업 투자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는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올해 하반기부터 CVC 설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일반지주회사의 CVC을 허용하는 등 벤처투자에 대기업 자본이 활용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한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공정거래위원회 등과 논의를 거쳐 대기업 자본이 벤처투자 시장에 흘러들어올 수 있는 방향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민하 기자





갈라파고스 규제에 반쪽된 CVC·벤처지주사




정부가 하반기부터 일반지주회사의 기업형 벤처캐피탈(CVC)을 허용하는 방향을 논의한다고 발표하면서 벤처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지주사 체제가 아닌 대기업의 CVC와 벤처지주회사 설립은 가능하지만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인수합병(M&A)를 통한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주사 산하의 CVC 허용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8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이하 공정거래법) 제8조의2에 따르면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은 CVC 설립이 금지된다. 공정거래법상 CVC가 금융업종으로 분류돼 대기업이 금융업을 겸업할 수 없는 '금산분리'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국내에서는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지 않은 삼성, 카카오, 한화 등 대기업이나 금융지주회사인 하나금융그룹 등만 CVC를 운영하고 있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가 모기업과의 사업 시너지를 위한 '전략적 투자'를 진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뿐 아니라 지주회사 전환을 요구하는 정치권의 입장과도 배치된다고 꼬집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CVC 관계자는 "지주사 산하가 아닌 특정 계열사 소속 투자사에서는 다른 계열사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CVC를 지주회사 산하에 설립해야 수많은 계열사를 총괄하면서 모기업의 다양한 사업과 오픈이노베이션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벤처지주회사, 대안으로 나왔지만…"갈라파고스 규제"

정부는 2001년 CVC의 대안으로 '벤처지주회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자회사 가운데 벤처기업의 주식가액 합계액이 50% 이상인 지주회사를 의미한다. CVC 대신 벤처지주회사를 설립해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라는 권고다. 2018년에는 벤처지주회사 자산총액 기준을 50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축소하는 등 제도개선을 통한 제도 활성화도 추진했다.

하지만 여전히 VC나 CVC처럼 펀드 결성을 통한 타인자본 활용 투자가 불가능하고 투자기업에 대한 지분 20% 이상 보유 등 요건 때문에 적극적인 투자나 M&A 등을 하기에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한국만의 '갈라파고스 규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마저도 벤처지주회사 제도개선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벤처지주회사는 아직까지 단 한 곳도 설립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주회사 체제의 대기업은 SK와 LG 등 대기업은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CVC를 설립하고 해외 스타트업·벤처기업과의 오픈이노베이션을 모색하고 있다. '제2 벤처붐' 열기와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오픈이노베이션'을 정부가 스스로 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국내 규제대로라면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해 성과를 내고 있는 구글벤처스나 소프트뱅크벤처스도 CVC라는 이유로 불법이 된다"며 "CVC를 금산분리의 차원에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오픈이노베이션과 벤처에 대한 전략적 투자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석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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