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걸릴 불상을 하루만에…3D프린터 만난 예술혼

머니투데이 김포(경기)=구경민 기자, 고석용 기자 | 2020.05.28 06:00

[백년소공인 스마트 백년지대계]전통공예에 혁신 바람 일으킨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종생로에 들어서면 3305㎡(1000평) 남짓한 규모의 전흥공예 작업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작업장엔 하늘을 찌를듯한 거대한 불상·석탑 등 대형 조각상부터 소형 조형물까지 수만여점의 전통공예품들이 가득하다. 이중 3분의 1가량은 3D프린터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첨단기술로 전통공예에 혁신 바람을 일으킨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를 작업장에서 만났다.



40년간 전통공예 한길..3D프린터로 혁신 바람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 인터뷰 / 사진=김포(경기)=이기범 기자 leekb@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임 대표와 만나자마자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때마침 3D프린터가 돌아가고 있었다.

3D프린터는 24인치 컴퓨터 모니터 크기 만한 기계 본체 가운데에 사람으로 치면 팔의 기능을 하는 기다란 막대가 달렸다. 막대 끝에 바늘처럼 생긴 뾰족한 촉이 좌우로 빠르게 왔다갔다하면서 켜켜이 제품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면 20cm 크기의 불상 형상이 만들어진다. 임 대표는 “3D프린터를 통해 완료된 작품은 마지막으로 사람 손을 거쳐 완성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3D프린터를 이용하면 짧게는 2시간에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전통공예품은 세밀하고 정교해 사람이 만들 경우 보름에서 한 달 이상 시간이 걸리는 것에 비하면 시간을 크게 단축 시킬 수 있다.


"첨단기술로 전통공예의 새로운 미래 만들 것"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가 3D 프린터로 작업중인 조형물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포(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임 대표가 전통공예에 혁신 바람을 불어넣게 된 데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문화재 복원 기술도 크게 변화했다. 임 대표는 2000년 초 김해에 600여점의 문화재를 복원해주던 시절 처음으로 3D프린터를 접하게 됐다. 임 대표는 당시를 “새로운 미래를 보게 된 순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공예가의 손길과 과학적인 측정 기술이 합쳐지면 가장 섬세하고 정확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2년 후인 2002년 임 대표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공예정보디자인학과에 뒤늦게 입학해 전문적으로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졸업을 하고 본격적으로 3D프린터 기술을 활용한 전통공예를 만드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비싼 장비 가격이 문제였다. 1대에 3억원, 많게는 10억원에 이르는 장비를 마련하기엔 무리였다.

방법은 없지 않았다. 여기저기 버려진 중고 3D프린터를 가져다 수리해 가면서 전통공예에 적합한 기계로 탈바꿈시켰다. 전자공학과 출신인 동생도 임 대표를 도왔다. 이제 두 사람은 중고 3D프린터를 수리해 판매할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4년 전부터는 건축학과를 졸업한 첫째 아들이 임 대표를 도와 일을 하고 있다. 임 대표는 “아버지와 나, 아들까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전통공예 뿐 아니라 현대공예까지 다루면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3년 전에는 항공우주연구원의 우주선 모델링 모형을 만들었다. 이 모형은 실제 우주선을 만드는데 활용되고 있다.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에 전시됐던 삼성전자 휴대폰 모형도 임 대표의 손길을 거쳐 간 작품들이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이어진다. 최근에는 패션 브랜드 디올(Dior)과 명품 안경 브랜드인 젠틀 몬스터의 다양한 광고용 조형물도 제작했다.

현재 임 대표는 ‘과학을 통한 전통방식의 완성’을 목표로 일하고 있다. 임 대표는 “3D프린터, 옥가공기, 금속가공기, CNC 조각기, 스티로폼 가공기 등을 직원들과 직접 연구하며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며 “작품을 제작할 때 3D 설계 및 완성본의 데이터를 모아서 관리하는 아카이브를 조성 중”이라고 말했다.



나무토막 가지고 놀던 아이, 문화재 복원 장인으로


임병시 전흥공예 대표 인터뷰 / 사진=김포(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올해로 꼬박 40년간 전통 공예에 몸담은 임 대표는 ‘문화재 복원 장인’으로 꼽힌다. 목공예를 하는 아버지로부터 손재주를 물려받은 임 대표는 어린 시절 집 옥상에 널려있는 나무토막을 놀이기구로 삼았다. 그는 “나무토막 하나로 마음만 먹으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기쁨이 컸다”고 회상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17살 어린 나이에 서울종합직업훈련원에 들어가 목공예를 배웠다. 취직을 해 불상을 나무로 조각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나무는 한번 깎으면 되돌릴 수 없는 표현의 제약 때문에 조소에 관심이 생겼고 공예업을 시작했다.


1989년 전흥공예를 설립한 임 대표는 설악산 신흥사의 통일대불 제작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전국 유명 사찰과 일본의 대형 불상, 국립중앙과학관의 옥루, 춘천 물공원의 자격루 등을 제작하면서 전흥공예는 대형 조각 및 문화재 복원 분야 전문업체로 성장했다.

전흥공예가 전통공예 분야 국가대표로 자리매김한 데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직원들의 역할도 컸다. 직원들 모두가 단조, 주물, 조각,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임 대표와 수십년 호흡을 맞추고 있다. 임 대표는 “어떤 소재든, 어떤 모양이든 다 해낼 수 있다고 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직원들과 한뜻으로 일을 해왔다”고 말했다.



백년소공인 선정으로 ‘제2의 도약’



전흥공예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초 처음 도입한 ‘백년소공인’에 뽑혔다. 백년소공인은 업력 15년 이상의 소공인을 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전흥공예는 혁신 의지, 차별성 및 우수성, 성장역량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임 대표는 “백년소공인으로 선정된 이후 홍보가 되면서 주위에서 많이 알아봐준다”며 “해외에까지 입소문이 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다. 개인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전통공예를 이어가려 한다”면서 “내가 만든 공예품들로 작은 박물관을 하나 만들어서 전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백년소공인 외에 전통공예를 육성하는 정부 정책도 추진되길 희망했다. 임 대표는 “조각 분야의 전통공예 장인들이 전국에 70명 가량도 안된다”면서 “그마저도 생계유지가 힘들어 식당을 하는 등 다른 직업으로 전향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중국산 등 저가 공예품에 우리의 전통공예품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전통공예 기술을 인정해주는 문화 형성을 위해 정부 지원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중기부, 제조업 토양 책임질 '백년소공인' 200개로 늘린다



올해 처음 도입된 백년소공인은 장인 정신을 갖고 한 분야에 집중하는 소공인을 인증·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업력 15년 이상 제조업 소공인 중에서 혁신의지, 차별성·우수성, 성장역량 등을 평가해 선정한다. 업력 30년 이상 된 음식업·도소매업 인증제도인 백년가게와 유사하다.

백년소공인에 선정된 소공인은 소상공인자금 대출 시 금리를 0.4%포인트 인하받거나 지역신용보증재단 보증 시 보증비율과 보증료율을 각각 100%, 0.8%로 우대받는 등 금융지원이 제공된다. 마케팅, 경영관리 등을 위한 경영컨설팅도 무료로 제공된다. 국내외 전시회 참가, 기술지원사업 등 정부 지원사업 신청 시 가산점을 받을 수 있으며 인증서와 현판도 제공된다.

중기부는 올해 백년소공인 200개사를 선정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 2월 100개사를 1차 선정했다. 업종별로 기계·금속(52곳), 의류(19곳), 인쇄(8곳), 식료품(8곳), 기타(가구, 의료기기, 시계, 펄프종이 등 13곳) 등이다. 1차 모집에는 252개사가 몰려 경쟁률 2.5대 1을 기록했다.

백년소공인 선정은 서류평가·현장평가·최종평가와 함께 숙련기술 보유정도, 숙련기술 보존가치 등 정성평가를 거쳐 진행된다. 업계와 학계 등 외부전문가 5명 내외로 평가위원회가 구성된다. 2차 선정부터는 국민추천제도 도입돼 국민이 직접 우수한 백년소공인을 추천할 수도 있다. 중기부 홈페이지 '국민 참여서비스'를 통해 참여 가능하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백년소공인 관련 “백년가게와 함께 소공인의 성공모델로 발굴할 것”이라며 “백년소공인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나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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