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에서 찬사로 …다시 '비'가 내린다!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 2020.05.20 14:15

1020세대 밈문화로 재조명된 비의 매력

사진출처=방송캡처




가수 겸 배우 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그 출발선이 2017년 발표했던 곡 '깡'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K-팝 가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이력 중 가장 혹평받았던 콘텐츠가 바로 '깡'이다. 그런데 선보인 앨범, 영화, 드라마가 모두 흥행에 실패하며 정점을 지난 스타로 평가받던 그가 '깡'으로 인해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타임 테이블 순으로 그 진실을 추적해보자.

#유튜버 호박전시현, '깡'을 깨우다


지난해 11월 유튜브에 ‘1일 1깡 여고생의 깡(Rain-Gang) cover’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에는 유튜브 채널 호박전시현을 운영하는 여고생 유튜버가 비의 '깡'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이 담겼다. 불과 20초 분량의 이 영상은 20일 오전까지 누적 조회수 240만 뷰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3월 이 유튜버는 2분27초 분량의 풀버전을 올렸고, 조회수는 258만 뷰가 넘었다.

#패러디, ‘1일 1깡’ 운동을 전파하다


중독성 강한 이 영상이 엄청난 인기를 모으자 패러디 영상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비의 춤사위를 제법 따라하는 이도 있고, 더욱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비트는 이들도 보였다. 이런 패러디 영상의 조회수마저 180만∼200만 뷰에 육박하며 '깡'의 인기가 점차 전파됐다.


‘1일 1깡’은, ‘하루에 1번씩은 '깡' 뮤직비디오를 보고 이를 따라하자’는 의미를 가진 표현이다. 이는 네티즌을 대동단결시켰고, 그 결과 '깡'의 공식 뮤직비디오는 20일 오전까지 900만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발표 후 2년여 보다, 최근 6개월 조회수 상승폭이 더 컸다. 게다가 비가 출연한 음악 프로그램의 '깡' 라이브 영상의 조회수도 450만 뷰를 훌쩍 넘어섰다.

#통계청, 비를 조롱하다


솔직하게 말하자. '깡'의 열풍은 칭찬이 아니다. 이는 조롱과 놀림에 가깝다. 하지만 익명 뒤에 숨은 네티즌은 누군가의 상처를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그들만의 ‘놀이’에 빠졌다.


그런데 통계청이 정색하고 참여하며 ‘깡 사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통계청은 지난 5월1일 "통계청에서 깡조사 나왔습니다. 1일 10시 기준 비 ‘깡’ 오피셜 뮤직비디오 조회수 685만9592회, 3만9831UBD 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UBD(엄복동)’란 흥행에 크게 실패한 비의 주연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에 빗댄 신조어다. 1UBD는 이 영화의 최종 스코어인 17만 명을 뜻한다.


그러자 네티즌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공개적으로 비를 조롱한 통계청을 향한 비난이 거셌고, 결국 통계청은 5월5일 "국민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고자 가수 비 뮤직비디오에 댓글을 쓰면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비에 대한 정중한 사과는 없었다는 점이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사진출처=방송 캡처


#김태호 PD, ‘깡 열풍’에 불을 지피다


'무한도전'의 신화를 일군 김태호 PD가 누구인가? 트렌드를 가장 먼저 캐치하고, 이를 자신의 콘텐츠에 적극 반영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그의 레이더망에 '깡'이 걸렸고, 지난 15일 김 PD가 연출하는 MBC '놀면 뭐하니'에 비가 직접 출연했다. ‘1일 1깡’ 열풍에 비가 처음으로 입장을 밝히는 자리였다. 자칫 조롱과 놀림의 크기가 커질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겠지만, 김 PD가 판을 깔고 ‘국민 MC’ 유재석이 요리하는 이 자리는 꽤나 견고하고 치밀했다. 그야말로 비의 부활을 위한 완벽한 ‘뒤집기 한판’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고 정점을 경험한 비는 유연하고 쿨했다. ‘1일 1깡’은 성에 안 찬다며 "너무 서운하다. 왜 1일 1깡을 하냐. 하루에 3깡 정도는 해야지. 아침 먹고 깡, 점심 먹고 깡, 저녁 먹고 깡. 식후깡으로" 라고 말하며 자신을 놀리던 네티즌마저 무장해제시켰다.


특히 유재석이 비의 오랜 팬이 만들었다는 ‘비 시무 20조’를 읊는 대목은 압권이었다. ‘재간둥이(꾸러기) 표정 금지’, ‘중간에 박수치면서 리듬타기 금지’, ‘꼬만춤(고추 만지는 춤) 금지’ 등 비의 평소 퍼포먼스를 디테일하게 짚으며 그를 당황시켰다. 네티즌은 "지상파에서 꼬만춤을 언급하다니…"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1일 1깡’이라는 뉴미디어 창출한 콘텐츠를 올드미디어가 어떤 식으로 적절히 소비하는지 보여준 김 PD의 연출력이 새삼 돋보였다.


#비, 실력으로 정면돌파하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깡'을 향한 조롱은 찬사로 바뀌었다. 물론 '깡' 자체의 평가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유치한 가사와 다소 오버스러운 퍼포먼스는 고스란히 ‘박제’돼 있다. 다만 이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비에 대한 평가가 바뀐 것이다. 비는 "멋지고"자 '깡'을 선보였지만 네티즌은 "웃고"자 '깡'을 즐겼고, 이 과정에서 비를 향한 부정적 이미지는 긍정적으로 탈바꿈했다. 무엇이 그런 결과를 낳게 했을까?


찬찬히 기억을 되짚어보자. 비가 누구인가? 그룹이 아닌 홀로 무대를 꽉 차게 만드는 당대 최고의 퍼포머다. BTS 이전에 이미 ‘월드스타’라는 수식어를 얻고 할리우드 영화 '스피드 레이서'와 '닌자 어쌔신'의 주인공까지 맡았다. 하지만 몇몇 구설과 콘텐츠의 실패로 비에 대한 이미지에 생채기가 났고, 인기는 하락했다.


그렇다고 비의 실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타고 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엄청난 연습량까지 소화해 온 그는 '놀면 뭐하니'에서 그의 명불허전 무대를 다시 보여줬다. 데뷔곡인 '나쁜 남자'를 비롯해 히트곡 '태양을 피하는 방법', '널 붙잡을 노래' 무대를 넘어 다양한 1990년대 노래를 댄스와 곁들여 선보이며 "역시 비"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게다가 그의 유머 감각도 여전했다. 한때 ‘예능 치트키’라 불릴 정도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였던 비의 입담에 시청자들은 재차 반했다. ‘1일 1깡’에 대해 "나는 너무 재미있다. 더 놀아주시길 바란다. 하루에 12깡 하는 친구를 봤다. 요즘 예능보다 내 댓글 읽는 게 훨씬 재미있다"는 대인배 같은 반응은 잊고 있던 비의 매력에 다시 불을 댕겼다.

사진=비의 '깡' 뮤직비디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이 현상은 단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다. 밈(meme). 온라인 상에서 화제가 되는 재미있는 콘텐츠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스마트폰과 SNS를 기반으로 10∼20대 등 신세대들이 즐기는 놀이 문화다. 17년 전 방송됐던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 역을 맡았던 배우 김영철의 대사인 "4달러"가 뒤늦게 화제를 모으며 요즘 세대들이 그를 ‘사딸라 아저씨’로 기억하게 만들고, 역시 이 드라마에 등장했던 "내가 고자라니"라는 장면과 대사가 인기를 끄는 것도 밈의 일종이다. 지난해 영화 '타짜3'가 개봉할 당시, 14년 전 영화인 '타짜'의 조연 캐릭터였던 곽철용이 뒤늦게 수면 위로 올라오며 "묻고 더블로 가" 등의 대사와 함께 이를 연기한 배우 김응수를 추종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밈 문화는 시대와 대상을 초월한다. 중요한 건 ‘재미’와 ‘입소문’이다. "재미있다"고 소문한 콘텐츠가 SNS를 통해 빠르게 전파되며 수많은 대중의 공감을 얻으며 밈으로 발전하는 수순을 밟는다. 과거 발표됐던 콘텐츠가 뒤늦게 인기를 얻는 ‘역주행’이 바로 대표적인 밈의 형태라 할 수 있다.


단, 조건이 있다. 밈의 당사자가 이를 시원하게 받아들여야 긍정적인 여론이 형성된다. 웃자고 만든 콘텐츠에 죽자고 덤벼들면 안 된다는 의미다. 당초 가수 김장훈의 가창력을 폄하하는 의도로 만들어진 ‘숲튽훈’ 콘텐츠가 오히려 김장훈의 인기를 재점화시켰던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장훈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숲튽훈과 김장훈의 면모를 두루 보여주며 이 놀이에 동참했다. 이는, 요즘 세대의 새로운 놀이 문화일 뿐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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