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마다 한 두명은 경비원을 ‘종’ 부리듯…그래도 벌어야 하니까

머니투데이 백지수 기자 | 2020.05.20 06:00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비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1일 오후 해당 아파트 경비실에 과일과 경비일지가 놓여있다. /사진=뉴스1
"터질 일이 터진 거죠. 남의 일 같지 않아요".

19일 오전 서울 양천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경비원 김모씨(64)의 말이다. 최근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서 입주민의 갑질 폭언과 폭행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파트 경비원 고(故) 최희석씨 사건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김씨는 "그런 일이 이번만 있었나요? 기자니까 더 잘 알잖아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현직 아파트 경비원들 반응도 거의 비슷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주민이나 아파트 방문객들의 크고 작은 '갑질'은 일상이라고 털어놨다. 고 최씨 사례처럼 주차 문제나 내방객 관리 업무 등의 과정에서 겪는 '감정 노동'의 무게가 작지 않다는 설명이다.


"단지마다 한 두 명씩 꼭…우리도 같은 '사람', 알아줬으면"


김씨는 최씨 사건의 가해자인 심씨를 언급하며 "전체 주민이 그렇진 않다. 매번 그렇게 '미꾸라지' 몇 명이 문제를 만든다"고 분노했다.

김씨는 "사실 주차 관리는 경비원들의 기본적인 업무 영역"이라며 "나는 일상적인 일을 할 뿐인데 그걸 정상 업무가 아닌 간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양천구 아파트의 경비원 김모씨(70)도 "15년 정도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경비 일을 했는데 어느 동네든 100명 중 한두 명은 꼭 심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며 "경비원을 '종놈' '하인' 정도로 생각하고 대하는 사람도 적잖다. 잘 사는 동네든 아니든 다 똑같다"고 말했다.

그는 "고인이 좀 더 마음을 굳게 먹고 넘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면서도 "경비원들은 일을 더 크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하고 고용 문제가 걸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참는 것뿐"이라고 했다.

층간 소음 중재 과정에서 실제 겪었던 사례도 전했다. 그는 "한 번은 층간소음 때문에 벌어진 윗집과의 갈등을 중재해 달라고 해서 올라갔는데 두 집 모두 화를 저한테 풀더라"며 "그럴 때가 제일 힘들다. 주민들이 적어도 우리도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생각하고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한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40대 경비원 원모씨도 "경비 일을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직접 폭언을 하지 않아도 은근히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주민들이 더 상처를 준다"고 말했다.

원씨도 실제 사례라며 "밤 늦은 시간에 소음 때문에 놀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규칙이 있어 순찰을 돌다가 밤 늦게 젊은 아버지와 4~5살 된 아들이 놀이터에 있길래 들어가 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는데 들은 체도 않더니 '아기한테 직접 부탁하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황당한 경험을 전하기도 했다.

단지 내 주차 문제를 시작으로 서울 강북구 우이동 한 아파트 경비원이 주민에게 지속적인 괴롭힘과 폭행을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벌어졌다. 사진은 지난 12일 오전 경비원이 근무하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 경비초소의 모습. /사진=뉴스1



10명 7명이 공동주택 주민…"갑질 반복될 것, 일자리 감소도 문제"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국민의 70% 정도는 공동주택에 산다. 경비원들이 주민들로부터 갑질 피해를 당하다 겪는 비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주거 환경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강북구 사건 이전에도 주민들에게 폭언과 폭행 등을 당한 경비원들의 피해 사례는 적잖다. 지난 2014년 11월 서울 강남구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의 횡포와 모욕을 견디지 못하고 경비원이 분신한 사건이 일어났다. 2016년 5월에는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이 관리소장에게 '종놈'이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2018년엔 경기도 오산에서 인터폰을 받지 않았다며 주민이 경비원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에도 부산 한 아파트에서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이 야구방망이로 관리사무소장을 위협했다.

경비원들은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고용 형태와 신축 아파트 보안 강화로 일자리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놓인 경비원들이 많다. 단지별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직접 경비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비인력 업체를 통해 이중으로 고용돼 있는 입장이어서 두 배로 눈치를 봐야 한다는 고충도 털어놨다.

서울 동작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경비원 이모씨(67)는 "고인도 생계 때문에 가해자에게 더 덤비지 못했던 것 아니겠느냐"며 "우리 관리사무소만 해도 주민과 소동을 일으키는 경비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히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현관 도어록(door lock)이 돼 있어 경비도 많이 쓰지 않는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며 "법이 제대로 바뀌지 않는 이상 그냥 참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등이 지난해 16일부터 시행됐지만 고용주가 가해자에게 사내 징계를 하도록 한 법 규정이라 입주민에게 당한 경비원들을 법적으로 보호해 줄 장치는 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노동계 일각에서도 일명 '최희석법'으로 불리는 '경비노동자 갑질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경비 업무 자체가 기계로 대체되고 있어 법 개정이 오히려 경비노동자의 설 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이오표 노무사는 "경비원의 업무는 경비업법과 노동법을 따로 적용하는데 현행법에서 경비원의 업무는 '감시·단속 근로'로 한정돼 있다"며 "사실은 주차 관리나 택배 대리 수령, 조경, 재활용 관리 등 현실에서의 경비원들이 그 이상의 업무를 하고 있다는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비원의 노동 범위와 이들의 처우에 대한 입주민들의 인식 변화가 먼저 일어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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