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한폭탄' 해외사모펀드...어떻게 만들어지나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정인지 기자 | 2020.05.19 16:00

[MT리포트]'시한폭탄' 위기의 해외 사모펀드③

편집자주 | 저금리 시대에도 고수익을 추구하기 위한 해외 상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선풍적인 인기에 앞다퉈 출시된 해외 사모펀드들이 최근 잇따라 기초자산 부실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외 사모펀드가 고위험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 구조적 원인과 그에 대한 대책을 모색해봤다.

(서울=뉴스1) 이동해 기자 = 금융위원회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DLS) 사태 재발 방지와 관련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14일 DLFㆍDLS 피해자 비대위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보상 촉구 집회를 열고 손 피켓을 들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날 원금손실 가능성이 20~30% 이상인 상품을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으로 규정하고 은행에서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2019.11.14/뉴스1

수십억 원 많게는 수천억 원의 투자 손실이 난 해외 사모펀드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부의 의료매출채권, 독일의 문화재 부동산 개발 산업 등 특이한 상품까지 발굴해 투자자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산구성과 위험을 파악하지 못하면서 잇따라 대규모 손실을 내고 있다. 이 상품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국내 투자자들에게 판매되는 걸까.


◇해외 채권 모아 고수익 펀드 구성



이번에 문제가 된 해외 사모펀드의 기초 자산은 대부분 채권이다. 하나은행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 산하 지역보건관리기구(ASL)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유동화한 채권에 투자했다. 신한금융투자 독일 헤리티지 DLS(파생결합증권)는 독일 시행사인 돌핀트러스트(현재 German Property Group)가 기념물보존등재건물 재건사업을 위해 발행한 전환사채(CB)를 인수한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반자란자산운용'의 대출펀드를 기초자산으로 한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채권펀드는 P2P업체에 투자금을 대는 미국 운용사 DLI펀드의 사모사채를 매수하는 상품이고, KB증권 호주부동산펀드는 호주정부의 장애인 임대주택사업 관련 아파트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채권을 안전자산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채권을 발행한 기업의 신용등급, 혹은 선순위냐 후순위냐에 따라 안정형이 될 수도, 위험형이 될 수도 있다. 리스크가 큰 채권일수록 금리가 높기 때문에 해외 IB(투자은행)들은 금가 높은 자산들을 쪼개고 모아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출채권담보부증권은 해외운용사가 펀드에 담게 된다.

결국 펀드가 담고 있는 채권과 이를 발행한 곳의 리스크를 평가해야 펀드의 위험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브로커·해외 컨퍼런스 등에서 상품 물색


임종철 디자인기자 /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국내 판매사나 운용사들은 이들 상품을 주로 브로커나 해외에서 개최되는 관련 컨퍼런스(박람회)에서 접한다. 해외 컨퍼런스에서는 지역별, 자산별로 다양한 행사가 이뤄진다. 국내 금융투자사들은 이곳에서 자기 역량에 따라 상품을 들여오기도 한다.

브로커를 통하기도 한다. 주로 싱가포르나 홍콩에 있는 부티크(유사자문사)에 소속된 이들인데, 한국인 또는 교포 출신이 국내와 해외 금융사를 중개하는 일을 한다. 특히 주문형 상품을 낼 때 브로커와 접촉하는 경우가 많다는 업계 전언이다. 예컨대 국내 판매사나 운용사가 중위험에 연 4%의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외상품을 원하면 브로커가 이에 맞춰 비슷한 수준의 수익률과 리스크가 있는 여러 IB(투자은행)의 상품을 제시하고 협의하는 식이다. 브로커들이 상품을 들고 국내 판매사들을 돌며 영업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구성한 상품은 국내 운용사가 다시 하나의 펀드로 만들고 해외 펀드의 수익자가 된다. 그러나 중소형 자산운용사는 이를 직접 운용할 수 없어 이 수익권을 담보로 TRS(총수익스와프)나 DLS(파생결합증권) 등 파생상품을 만드는 절차를 거친다.


국내 운용사가 증권사에 이 같은 구조화를 의뢰하면 증권사는 일정 수수료를 받는다. 이 같은 도매과정을 거쳐 최종펀드상품이 만들어진 후 증권사 또는 은행 등을 통해 소매판매가 이뤄진다.


◇판매자도 제대로 알기 어려운 해외 상품




이렇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해외 사모펀드를 만들다 보니, 판매사나 자산운용사가 직접 해외 상품의 기초자산을 제대로 실사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A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해외의 구조화된 채권을 가지고 상품을 만든다면 그 채권이 적법한지, 안정적인지를 살펴보는 것은 운용사의 역량에 달려있다"면서도 "해외자산의 부실이나 범법행위 등을 국내에서 확인하는 것은 사실상 쉽지 않아 해외 IB나 자산운용사의 명성을 믿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초자산을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다 보니 판매 창구에서 개인투자자들에게 투자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된다.

최근 부실기초자산으로 문제가 된 이탈리아 헬스케어 펀드의 경우 메일로 상품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나은행 투자상품부 실무자 A씨는 지난해 지점 VIP 담당 PB(프라이빗뱅커)들에게 '사모펀드 출시안내'라는 이름의 메일 한 통을 보냈다. 메일에는 '투자 포인트'라는 아주 간략한 상품소개가 적혀있고 "본 메일의 회신으로 선착순 마감한다"는 문구가 있을 뿐이었다.

PB들은 자신의 VIP 손님을 예약가입 시키는 내용의 메일을 회신한 뒤 몇 장의 상품소개서로 고객 1인당 1억원 이상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제안서에는 "이탈리아 정부의 의료비 관련 예산초과로 지급지연의 위험성이 있지만 지연 이자를 감안할 때 수익률 확보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다. 현재 하나은행은 해당 펀드에서 500억원 이상의 손실발생이 예상되자 투자자들에게 사적화해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높은 수익률을 위해 해외펀드를 들여오는 과정에서 성장통을 겪고 있다"며 "해외상품 관련 업력이 길어지면 차차 역량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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