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보다 4배 더 기부하는 미국인…비결은 '알권리'

머니투데이 정한결 기자, 임소연 기자, 정경훈 기자 | 2020.05.19 05:00

[MT리포트-기부자는 알 권리가 있다](下)

편집자주 | 우리 사회의 성역 가운데 하나였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는 역할을 해왔던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각종 의혹에 휩싸였다. 정의연 문제는 한일 관계, 역사 인식 등과 맞물리는 진영간 이슈이기도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지적돼온 시민단체들의 불투명한 운영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기도 하다. 정의연 사태를 계기로 시민단체들의 불투명한 운영 실태, 심각성, 개선점 등을 살펴봤다. 



"내 기부금은 여기에 써주세요" 똑똑하게 기부 하는법




"기부자는 자신의 기부금이 목적사업에 맞게 사용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2017년 한국모금가협회가 작성한 '기부자의 알 권리'(Donor's Rights) 선언문에 포함된 내용이다. 투명한 운영을 목표로 하자며 선언문 참가 캠페인도 진행 중이지만 정작 이를 채택한 기부단체는 4곳 중 한 곳도 안된다.

기부단체의 '알 권리' 외면 속에 기부자는 스스로 '똑똑한 기부'를 위해 관련 정보를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다.

◇'기부자의 알 권리' 있지만…채택률은 22.5%


18일 한국모금가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기부자의 알 권리'를 채택한 NPO(비영리단체)는 전체의 22.5%에 불과했다. 약 5분의 1 수준이다.

이 선언문은 '기부단체를 믿을 수 있도록 기부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당초 후원금 사용처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기부 한파'가 불자 기부단체들이 신뢰 회복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놓은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나눔실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가(97.2%)가 기부단체의 투명한 정보 공개가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기부단체가 정보 공개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한 이는 74.3%에 달한다.

심지어 NPO(비영리단체) 종사자 대다수는(96.4%) 기부자의 알 권리가 유용함을 인식하고 있다. 기부자가 기부단체를 외면하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알 권리 보장이 중요하다고 인식하면서도 이를 채택하지 않은 셈이다.

◇'똑똑한' 기부하려면…"충분히 알아봐야“

기부단체의 외면에 일반 시민들이 자신의 기부 목적을 이뤘는지 알아보려면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내가 기부를 위탁하는 단체가 과연 투명하게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NPO 감시단체인 한국가이드스타의 경우 국내 NPO의 회계투명도 등을 평가해서 공개하고 있다.

기부하고자 하는 단체명을 검색하면 해당 단체의 총 자산과 수입을 비롯해 재무제표나 기부금 사용 내역 등을 국세청에 공시했는지 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관심을 갖고 볼 부분은 해당 업체의 공익사업비다. 수입이 많아도 공익에 사용하지 않고 자산으로 쌓기만 하는 경우가 있어 공익사업비는 법인의 공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다.

실제로 자산 5억원 이상, 연간 수입 3억 이상이라 공시 의무가 있는 국내 9663개의 공익법인 중 공익사업에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은 단체는 13.9%(1341개)를 차지한다.

'루게릭병' 환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승일희망재단은 외부회계감사 대상이 아니지만 2018년부터 외부 감사를 받고 있다. 경영공시에는 매일 기부액(수익)과 지출을 세세하게 표시한다. NPO의 재무투명성을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크라운인증을 받았다. /사진=가이드스타 홈페이지 갈무리.

기부시 특정 대상이나 사용처를 지정하는 방법도 있다. 가령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라 취약계층이 필요한 '마스크 등의 생필품을 구입'으로 기부금을 특정하는 식이다. 단기 지원에 가장 효과적이고 전달 여부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기부자의 절반 이상(54.7%)이 목적을 지정하지 않은 채 기부한다. 기부금의 행방을 모르는 기부자도 35.5%에 달한다. 기부단체도 중요하지만 기부자 역시 꾸준히 기부 결과에 관심을 갖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름다운재단의 김아란 나눔사업국 국장은 "딸 기부금 10억원을 편취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도 결연사업(특정인 지정 기부사업)이었다"면서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기에 충분히 알아보고 기부하시는게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보 공개 책임과 의무가 있는 기부 단체도 사업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고, 이에 대해 쉽게 설명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한국모금가협회

정한결 기자



한국인 4배 기부하는 미국인…美시민단체 감시기구만 200곳


/사진=AFP


영국 자선원조재단(CAF)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이 10만 원을 벌어 평균 2000원을 기부할 때 한국인은 500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금 액수가 아닌 기부 활동에 초점 맞춰 평가한 기부지수에서도 한국은 2010년 기준 153개국 중 81위에 그쳤다.

후원·기부에 인색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투명성'에 대한 낮은 신뢰다. 내가 낸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 최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공시와 관련한 논란 외에도 비영리단체(NPO)의 불투명한 자금 운용 문제가 일 때마다 기부 문화를 둘러싼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그렇다면 미국 등 한국보다 후원·기부 문화가 잘 자리잡은 나라는 투명성을 어떻게 확보할까.

◇미국, 수많은 NPO 평가·감시 기관

/사진=AFP


미국은 공익법인 조직을 평가하고 정보공개를 하는 기관만 200곳 가까이 된다. 대표적인 곳이 가이드스타와 채러티 내비게이터다. 가이드스타는 국세청 공시자료, 사업소개, 사회적 성과 등을 종합해 무료로 공개한다. 각 단체가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기부자에게 알려 기부금 모집과 신뢰도를 끌어올린다는 취지다.


가이드스타는 이렇게 낸 평가를 기반으로 각 단체에 금·은·동메달을 제공한다. 단체가 금메달을 받으려면 외부감사 자료와 재무정보뿐 아니라 성과, 효율성 등도 인정받아야 한다. 한국가이드스타도 2013년부터 국세청 홈택스 공시자료를 기반으로 NPO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2001년 설립된 채러티 내비게이터는 매년 약 8000개 단체를 평가한다. 재무건전성을 중심으로 NPO를 비교 평가하는데, 단체에 등급을 매기진 않고 질적인 내정감사를 통해 단체만의 '수행성과'를 평가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16가지 지표를 통해 NPO들의 △재무건전성△책무성△투명성△효율성△수행성과 등을 평가한다. 2018년 기준 700만 명 이상이 홈페이지를 방문해 NPO 정보를 얻었다. 켄 버거 채러티 내비게이터 대표는 “평가의 독립성을 위해 정부나 우리가 평가하는 단체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않으며 개인 기부자나 이사회 임원의 기부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과거 세대가 '선한 동기'만으로 기부했다면 이젠 '돈을 투자하고 행동해서 변화를 만드는' 차원에서의 후원·기부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단체를 찾고, 또 소개하는 체계에 대한 수요가 커지는 배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NPO들은 후원받기 위해서라도 투명성을 제고하게 된다.

◇투명한 NPO에 '인증 로고’
/사진=ACNC



호주는 비영리 자선단체 공시자료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엑셀파일로 다운받을 수 있게 한다. 호주 국가자선기관 감독기구 자선&비영리위원회(ACNC)는 NPO 5만4000여 곳의 '날' 정보를 공개한다. ACNC 홈페이지를 연 160만 명이 찾을 정도로 대중과 언론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비영리단체에 ACNC 등록은 투명성 보증이다. ACNC에 등록된 NPO는 인증마크를 받는데, 사람들은 마크를 보고 '믿고 기부해도 되는' 단체로 인식한다. 이런 환경 덕에 호주인 10명 중 9명이 자선기관에 금전적·시간적·물질적 기부를 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2017년 ACNC 신뢰도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76%가 기관이 기금 사용내역을 투명히 공개하고 그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답했다. 74%는 ACNC같은 NPO 감독기관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일본은 NPO 투명성에 대한 신뢰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지진 등 재난이 빈번하게 일어나면서 NPO 역할이 대두됐으나 투명성 문제 때문에 여전히 기부금의 90%가 NPO가 아닌 '일본적십자사'에 모인다. 이런 배경에 2008년 비영리 공익단체 개혁이 이뤄졌다. 독립적인 3자 민간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익성 인정위원회를 만들었다.

임소연 기자



"시민단체 비판만 말고...'투명 회계' 도움줄 지원조직 만들어야"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사진=황신애 본인 제공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 논란과 관련해 NPO(비영리단체) 스스로 투명성을 제고하는 노력과 함께 정부나 사회가 회계 처리 등을 도와줄 중간지원조직을 구축해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는 18일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직면한 투명성 문제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면 돌파해야 할 문제"라면서도 "단체들이 사업, 기부금 집행에 대해 적절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황 이사는 "기업도 외부 회계·법무법인 등 자문기관 재정·법률의 투명성을 증명해내기 힘든 것처럼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라며 "시민단체의 경우 주수입인 기부금 중 15% 이내의 범위에서 인건비·임대료 등 운영비에 사용할 수 있어 고액 자문, 관련 인력 운영 등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라 밝혔다.

그는 "활동가 스스로도 자기 활동 영역 외 법률, 재무, 사회 여론 파악에 비전문가"라며 "현재는 관련 요구들에 활동가 스스로 공부하며 맞춰가는 환경인데 구멍이 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설명했다.

환경보호 등 목적 활동에 대부분 시간을 할애하는 활동가가 따로 시간을 내 회계, 법률, 여론 파악을 항상 정확히 따라가기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비영리단체들은 사업활동, 기부금 사용 내역을 정리할 때 이를 점검하는 정부 기관, 기업 등 대형 기부자, 지방자치단체, 일반 개인이 요구하는 증빙 사항에 일일이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사회복지공동모금에서 5000만원 지원 받으면 국세청 회계 기준, 공동모금 회계 기준에 맞춰 서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

황 이사는 "지원금, 기부금 관련해 세법·상속세법·법인세법·기부금법 등이, 운영·사업 관련해서는 공익법인법·일반사회복지법 등이 적용되는 등 알아야 할 법도 산더미"라며 "이중 하나만 개정돼도 법률 비전문가로서는 따라가기 힘든 게 사실"이라고 했다.
황신애 한국모금가협회 상임이사 /사진=황신애 본인 제공


그는 "단체들의 이런 구멍을 채워주는 게 '중간조직'이라며 "'중간조직'과 이에 대한 육성 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투명성' 등 사회가 요구하는 사항을 맞추지 못한다고 활동가만 비난하는 현실은 건설적인 결과를 내놓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영리 활동이 활발한 미국·유럽 등에는 중간조직도 다수 발달돼 있다. 영국의 카프(CAF·Charities Aid Foundation)는 기부에 대한 자문 서비스, 컨설팅, 평가 서비스 등을 제공하며 유명 인사들이 비영리단체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한다.

이 밖에도 기부와 모금 환경을 분석해주는 영국의 본드(BOND), 옥스팜 등 중간조직이 다수 발달해 있다. 비영리 단체들의 모금 활동이 투명하게 이뤄지는지에 대한 점검 활동이 이뤄지기도 한다.

황 이사는 "이런 중간조직들은 정부 인력만으로는 파악 힘든 현장 활동가나 이들에 대한 사회 인식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간조직은 정부나 뜻 있는 기부가, 개인들의 지원으로 생성돼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며 "미국의 경우 록팰러재단, 포드 등이 중간조직, 비영리기구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설명했다.

아울러 "과거 투명성 이슈가 제기됐을 때마다 정부는 시민단체 활동을 법률로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이제 이들의 자율성을 높이며 투명성 등 제기된 현안도 해결할 수 있도록 중간조직 지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첨언했다.

정경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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