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FIFA는 개혁에 성공할까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0.05.12 04:44
2015년은 국제스포츠의 역사에 길이 남을 충격적인 일이 일어난 해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사상 최대의 부패사건으로 얼룩지고 다수의 FIFA 임원이 사법처리되었다. 2018, 2022 월드컵 개최지가 재검토될 수 있다고 해서 전 세계가 떠들썩했다. 그 여파로 FIFA의 지배구조도 요동쳤다. 제프 블라터 회장이 선출된 지 며칠 만에 사퇴했다. 한국의 정몽준 FIFA 전 부회장(이하 '정 부회장')이 회장에 출마했지만 기득권 세력의 견제로 부당하게 자격정지를 당해 중도 하차했다.
 
2015년 FIFA에서 일어났던 일은 국제스포츠계뿐 아니라 사회적 파장도 작지 않아서 벤 애플렉이 그 해 일어난 사건을 소재로 워너브러더스와 영화제작까지 발표했을 정도다.
 
FIFA가 4년마다 개최하는 월드컵은 올림픽만큼 큰 세계의 축제다. 정치적, 경제적 파급효과가 그 어떤 행사보다 크다. 따라서 각국이 앞다투어 대회를 유치하려고 애쓴다. 개최지 선정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FIFA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개최지를 선정하기는 하지만 FIFA의 결정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리가 발생할 위험이 있고 실제로 발생한다.
 
또 월드컵 경기와 그밖에 FIFA가 개최하는 대회는 스폰서, TV중계 등을 둘러싸고 큰돈, 즉 이권이 움직인다. 월드컵이 있는 해에는 FIFA에 약 5조원의 수입이 발생하고 그중 절반이 수익이다. FIFA는 이렇게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면서도 비영리 단체여서 일체의 세금을 내지 않는다. 막대한 재산을 보유하지만 외부의 누구도 감시감독하지 않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부정부패에 취약하다.
 
막강한 재력에 더해서 FIFA 회장은 211개 회원국에서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는다. 자연스럽게 국제정치와 외교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발언권도 작지 않다. 따라서 4년 임기 FIFA 회장 자리에는 후보자들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다. 누구나 연임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현직도 당연히 경쟁에 뛰어드는데 그 때문에 기득권 지키기 정치가 생긴다. 여기에는 기득권을 활용한 경쟁자 죽이기가 포함된다. 이 모든 문제들이 2015년에 한꺼번에 노출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는 2022 월드컵 유치활동의 일환으로 2010년 10월 런던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대한축구협회를 통해 이른바 GFF (Global Football Fund) 구상을 공개한 적이 있다. GFF는 2022년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한국이 2011년에서 2022년에 걸쳐 약 7억7700만달러의 축구발전기금을 조성해 각 대륙의 축구연맹에 배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물론 기금의 운용은 각 대륙의 연맹이 관장하도록 한다.
 
정몽준 당시 국회의원은 FIFA의 부회장이었고 그 위치에서 일부 동료들에게 GFF 구상을 설명하는 서신을 보내게 된다. 그러자 제롬 발크 FIFA 사무총장이 해당 서신이 공정 경쟁을 해친다는 우려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 부회장은 그에 대해 설명하는 답을 보냈고 발크는 사안을 종결했다. 2010년 12월 2일에 FIFA는 2018, 2022 월드컵 개최지를 각각 러시아와 카타르로 선정했다.
 
이듬해 2011년 블라터 회장이 4선에 성공했다. 블라터는 선거 때 5선에는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그런데 차기 회장 선거를 1년 반 정도 남기고, 2018, 2022 개최지 선정이 있은 지 3년이 경과한 2013년 말이 되자 FIFA 윤리위원회가 2018, 2022 개최지 선정 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가르시아라는 조사관이 담당했다. 2014년 4월에 조사위는 정 부회장에게도 서면질의서를 발송했다. 당시 4월 16일에 세월호가 침몰하는 사건으로 국내 상황은 참담하고 어수선했다. 정 부회장은 5월에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종료된 후에야 회신을 보낼 수 있었다. 정 부회장은 서울시장 선거전도 치르고 있는 와중이었다. 가르시아와의 연락이 원활할 수 없었다.
 
2014년 9월에 조사작업이 완료되고 이른바 '가르시아보고서'가 작성되었다. 이 보고서는 FIFA가 그 내용을 극히 일부만 공개했기 때문에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2015년 1월에 FIFA는 가르시아보고서에 기초해 정 부회장에 대한 조사를 개시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5월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연방수사국(FBI)이 블라터의 측근 FIFA 임원 7인을 스위스에서 전격 체포해 미국으로 송환했다. 스포츠마케팅에 관련된 뇌물, 사기, 자금세탁, 탈세 등 혐의다. 스위스는 미국과 사법공조, 범죄인인도가 잘 되기로 유명한 나라다. 미국인들이 스위스 은행계좌를 통해 범죄를 많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또, 스위스인이 범죄에 미국의 금융기관을 경유하면 미국이 관할권을 가진다. 스위스 수사당국도 FBI와는 별도로 수사를 개시했다. 관련하여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는 2018 월드컵을 정당하게 유치했다고 강조했다.
 
피의자들은 FIFA 회장 선거가 치러질 총회에 참석했다가 체포되었다. 5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약했던 블라터는 5월 29일 5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며칠 후인 6월 3일에 갑자기 사임해버린다. 블라터도 수사선상에 올라있었고 FIFA를 떠나 행동이 자유로우면 FBI 수사망을 피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회장 자리에 있으면 미국 여행을 피할 수도 없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세계에서 축구에 가장 관심 없는 나라 미국이 FIFA를 정화하는 결과가 되었다.
 
갑자기 회장이 공석이 되었기 때문에 회장 출마 선언이 잇따랐고 1994~2011년 17년 동안 FIFA (4선)부회장을 지낸 정 부회장도 7월에 회장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회장에서 사임한 블라터와 FIFA 내 그 세력들의 방해 공작이 시작되었다. 10월에 윤리위가 정 부회장에게 자격정지 제재를 내린 것이다. 확정되면 회장 선거에 나갈 수 없다.
 

제재 이유는 윤리규정 위반이다. 애초에 윤리위는 정 부회장이 FIFA 동료들에게 GFF 구상을 알리는 과정에서 이익제공에 준하는 행동이 있었다는 것과 투표담합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들은 근거가 박약해 스스로 중도에 철회하고 정 부회장이 FIFA의 로고가 찍힌 편지지를 개인적인 일에 사용했다는 이상한 이유를 새로 내세웠다. FIFA 부회장이 FIFA 동료들에게 FIFA 편지지를 사용해서 연락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윤리위의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를 드는 등 오락가락했다. "거짓말은 그때그때 다르다"는 말을 생각나게 한다.
 
한편, FBI가 FIFA 비리 수사를 개시한 덕분에 FIFA 내의 분위기가 좀 달라져서 12월에는 블라터와 블라터가 일찌감치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던 미셸 플라티니가 함께 제재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플라티니는 2011년의 회장 선거 때 블라터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은 것이 문제되었다(플라티니는 2019년에는 카타르 월드컵 관련 뇌물죄로 체포까지 된다). 블라터와 플라티니는 재빨리 항소했는데 2016년 2월에 항소위는 두 인물에 대한 제재를 확정했다. 블라터는 85세가 되는 해까지 자격정지다. 불명예로 축구계를 떠났다.

반면 정 부회장은 항소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윤리위가 차일피일하다가 제재 이유를 6개월이나 지난 4월에야 통보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유를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결국 자격정지가 유지된 셈이어서 2월에 있었던 선거에 나갈 수 없었고 유럽축구연맹(UEFA) 사무총장 출신 잔니 인판티노가 9대 회장에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정 부회장은 FIFA 회장 선거와는 별도로 명예회복 차원에서 항소했다. 항소위는 제재를 다소 감경하는 데 그쳤다. 정 부회장은 이제 사법절차를 밟고자 했지만 다시 9개월이 지난 2017년 3월에야 항소위로부터 결정 이유를 통보받을 수 있었다. 정 부회장은 바로 4월에 스위스 로잔에 있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FIFA를 제소했고 CAS는 2018년 2월에 FIFA의 제재를 대부분 무효로 하는 판정을 내렸다.
 
CAS는 1984년에 IOC가 설립했는데 이후 IOC에서 독립되었고 스위스연방대법원도 그 독립성을 인정한 권위있는 기구다. 필자의 박사과정 지도교수 브루노 짐마 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도 CAS 설립 시부터 계속 중재재판관 명부에 올라있다.
 
CAS는 2018년 2월 9일자 50페이지짜리 장문의 판결문을 통해 FIFA의 정 부회장에 대한 제재가 '중대하고 명백하게'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4가지 이유다. 첫째, FIFA의 임원들은 본국이 개최지 선정에 나설 때는 본국이 선정되는 데 필요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통상적이다. 둘째, 정 부회장은 한 번도 윤리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없다. 셋째, 정 부회장은 항상 FIFA 내의 부패 문제를 제기하고 개혁을 역설해 왔다. 넷째, 정 부회장은 오랫동안 FIFA와 축구의 발전에 공헌해 왔다.
 
흥미있게도 CAS는 정 부회장에게 씌워진 혐의는 블라터와 플라티니의 혐의에 비하면 그 정도가 미미하다고 덧붙이고 있다. CAS는 판결문에서 FIFA가 시간끌기로 일관한 점을 특별히 비난하기까지 했다. 정 부회장이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다는 대목에서는 FIFA를 매우 훈계하면서 블라터는 8일 만에 항소 결과를 받았고 플라티니는 9일 만에 항소 결과를 받았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O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The pot cannot fairly call the kettle black, especially when it itself is blacker.)이라고 덧붙였는데 이는 통상 판결문에서 잘 볼 수 없는 강력한 어법이다.
 
사실 이 사건은 정 부회장이 2002 한일월드컵의 주역이었을 뿐 아니라 1993~2009년 16년 동안 대한축구협회 (4선)회장을 지냈고 한국의 2022 월드컵 유치 노력 과정에서 발생한 일이어서 정 부회장 개인뿐 아니라 한국 축구와 국가적인 명예가 걸린 일이기도 했다. 지루하고 답답한 장기간의 구제 과정을 정 부회장이 견뎌낸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정 부회장은 정치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있어도 국제무대에서는 일치된 지지를 받아야 마땅하다.
 
이 모든 과정을 복기해 보면 대략 그림이 나온다. 블라터는 전임자 주앙 아벨란제 7대 회장처럼 장기집권을 꿈꾸었다. 아벨란제는 24년 장기 재임했었다. 2002 월드컵 때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했던 사람이다. 블라터는 아벨란제의 지원으로 회장이 되었는데 후일 아벨란제가 비리 혐의를 받을 때 불리한 사실을 폭로해 인간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사실 블라터는 여자월드컵의 인기를 올리기 위해서는 선수들의 옷을 더 짧게 해야 한다는 등의 망언으로 비난을 받기도 한 문제적 인사다.
 
블라터는 회장 5선을 염두에 두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견제할 자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일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프란츠 베켄바워도 표적이 되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로 FBI의 수사를 피해 당선된 회장직을 내려놓고 도주하면서도 뭔가 자기 세력들의 건재를 통해 노후의 안전을 보장받으려 했던 것 같다. 그러자면 반부패를 내세우는 정 부회장 같은 개혁적 인물이 뒤를 이어받는 것은 곤란하다.
 
지금 코로나19로 일시 중지 상태지만 축구는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거의 종교다. 축구를 빼고는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사람들도 많다. 축구는 청소년 범죄율을 낮추는 사회적 기능을 발휘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정작 FIFA는 가장 문제가 많은 단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미국의 시사토크쇼 진행자 존 올리버는 "자기가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고 하지 마라. 이를 소시지 원칙이라고 부른다"고 하면서 "축구를 사랑하려면 FIFA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라"고 뼈있는 농담을 남겼다.
 
지난해 6월 재선에 성공한 현 인판티노 회장은 비교적 젊다. 50세다. 지난 1월 IOC 위원으로도 선출되었다. 인판티노는 2015년에 FIFA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라도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카를하인츠 루메니게는 인판티노에게 투명성과 개혁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FIFA가 과거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는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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