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든 성배"인 줄 몰랐던 中공장, 하이닉스·LGD 엇갈린 선택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최석환 기자 | 2020.05.09 09:15

[컴백, '메이드 인 코리아'-②시장보다 밸류체인]<1>

편집자주 | 포스트 코로나(Post Covid-19) 시대 달라진 글로벌 경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산업정책은 ‘제조업 리쇼어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주요 무역·투자 상대국의 국경봉쇄가 잇따르면서 우리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소비시장과 저임금 인력을 찾아 해외로 나간 기업들의 취약점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제조업 생태계는 대기업과 그 협력업체를 중심으로 짜인다. 대기업을 돌아오게 하는 과감한 정책전환과 사회적 문화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 밖은 위험해" 외부리스크 없는 공급망 목마른 기업들


서울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차로 40분 남짓 떨어진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지금은 주택 수백여채와 농토가 전부인 이곳에서는 이르면 2024년 SK그룹의 반도체 클러스터 첫 생산라인이 가동된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종합 반도체기업을 향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꿈이 담긴 프로젝트다. SK하이닉스는 이 일대 448만㎡ 부지에 2022년부터 10년 동안 12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생산라인 4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국내외 소재·장비·부품 협력사 50개 이상이 함께 입주한다.

◆SK하이닉스 10년간 120조 투입 용인 클러스터 추진

클러스터 조성 계획안이 지난해 3월 국토교통부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통과됐을 때 정치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첫 수도권 규제 완화라는 점이 부각됐지만 업계에서 주목한 지점은 조금 달랐다. SK그룹이 새로운 반도체 단지로 왜 국내를 선택했느냐가 관심사였다.

용인 클러스터 조성안은 딱 떨어지는 리쇼어링(reshoring: 해외 진출한 기업을 자국으로 돌아오도록 유도) 정책의 성과는 아니지만 해외로 진출한 대기업의 공장을 국내로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사례로 꼽힌다.

SK그룹이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를 최종 결단한 데는 정부의 수도권 규제 완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기존 설비와의 시너지 효과, 우수 인재 확보, 기술 보안 등을 고려할 때 수도권을 대체할 곳이 없다는 논리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회원사 244개사 중 약 85%가 서울·경기권에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경기 남부는 이미 기업과 인재가 몰려 있는 거대한 반도체 클러스터"라며 "시장 접근성이나 비용 문제를 지우고 보면 이만큼 좋은 입지를 찾기 어렵다"고 했다.

반도체산업은 2000년대 앞다퉈 중국에 진출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에서, 삼성전자는 시안에서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가동 중이다. 화웨이를 필두로 한 중국의 거대한 시장성과 비용 최소화가 중국 진출의 주된 이유였다. 삼성전자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기준 30%가 넘는다. SK하이닉스도 중국에 매출의 40%가량을 의존한다.

결과론이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SK의 이런 판단은 적중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전역이 봉쇄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붕괴라는 악몽을 겪었다. SK와 삼성도 중국 공장 정상가동에 적잖은 애를 먹었다. 양사 모두 중국 정부와의 오랜 협의 끝에 최근 특별기를 동원해 시설 점검을 위한 엔지니어를 보내는 홍역을 겪었다.

반도체산업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현대차가 코로나19 사태로 지난 2월 국내 모든 생산라인을 멈춰세운 적도 있다. 중국에서 '와이어링 하니스'를 생산하는 협력사 공장이 가동 중단되면서 물량부족 사태가 빚어진 탓이었다.

◆수도권 세계 최고 입지조건…정부 규제완화 발맞춰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구도에서는 더이상 시장 접근성과 비용 최소화 전략이 능사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불확실한 비용 최소화보다는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와 생산 전략이 우선 고려사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 팀장은 "그동안의 리쇼어링은 주로 정부 주도의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논의됐지만 앞으로의 리쇼어링은 기업도 생산·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충분히 검토할만한 여건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 연구원도 "기존에 비용 절감이 많이 고려됐다면 이제는 환경과 안전성, 국가 리스크 등이 다양하게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긴급경제대책의 하나로 정부 차원에서 공급망 재구축 정책을 지난달 5일 발표했다. 중국 내 자국 기업들의 공장을 일본으로 되돌리는 유턴 기업을 대상으로 이전 비용의 3분의 2까지 정부가 대주는 게 핵심이다.

정부는 용인 클러스터 조성으로 앞으로 10년 동안 신규 일자리 1만7000개와 약 188조원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규제 완화까지 고려하는 세금·규제 해결 종합 패키지로 대·중소기업의 동반 회귀를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한시법인 소재·부품·장비 특별법을 상시법으로 전환하고 국가 위기 상황에 한해 수도권 입지 규제 등을 해소하거나 연구개발(R&D) 자금을 우선 지원하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특례규정을 추가한 개정안을 추진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지난달 1일 시행됐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대기업을 국내로 돌아오게 하려면 대기업에도 파격적인 정책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며 "코로나19 이후 새판짜기에서 기업 유턴을 적극 지원하면 직접투자 순유출액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돌파구라 믿었던 3년 투자였는데…LG디스플레이, 中공장 딜레마


"유일한 돌파구라 믿고 추진했던 중국 공장이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 국경이 봉쇄되자 LG디스플레이 한 임원이 조심스럽게 꺼낸 얘기다. 중국 광저우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공장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사업 전반에 미치는 타격이 막대하다는 호소였다.

또다른 임원은 "코로나19 책임공방을 빌미로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할 조짐까지 보여 더 걱정"이라며 "중국 현지공장이 볼모 아닌 볼모가 됐다"고 말했다.

LG디스플레이의 사례는 대기업의 글로벌 거점 생산 전략이 반드시 최선책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특히 지난 십수년 동안 생산기지이자 소비시장으로 군림해온 중국의 불확실성 확대를 두고 더이상 지켜볼 수 없는 리스크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당시엔 묘책 넘어 당위론…"믿고 투자한 중국"

LG디스플레이가 중국 광저우 OLED 공장을 추진한 것은 지난 2017년. 매출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LCD(액정표시장치) 시장 1위 주도권이 막 중국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당시 업계에서는 LG디스플레이가 OLED 전환 시기를 실기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OLED를 개발해놓고도 LCD 1위 실적에 취해 머뭇거리다 때를 놓쳤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다. LG로선 그만큼 더 다급하게 광저우 공장 로드맵에 매달렸다.

광저우에 공장을 세우기로 한 데는 투자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셈법도 고려됐다. 총 5조원의 투자비 가운데 3분의 2를 중국 정부의 출자금과 현지차입으로 충당하면 초기 비용부담을 1조8000억원으로 줄일 수 있었다.


당시 국내외에서 20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동시다발적으로 단행해야 했던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 매혹적일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광저우 프로젝트는 묘책이라는 평가를 넘어 당위론이 됐다. 한상범 당시 LG디스플레이 부회장도 2017년 9월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대안은 없다"고 배수진을 쳤다.

◆한계점 온 中생산기지…국경폐쇄·무역전쟁 불안요소

상황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미중 무역분쟁이 '반(反)화웨이 사태'로 구체화되고 양국 정부가 노골적으로 편가르기를 압박하고 나서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올초 중국에서 시작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또 한 번의 시련이 됐다. 중국이 국경 빗장을 걸어잠그면서 LG디스플레이는 설비를 점검할 엔지니어를 보내지 못해 홍역을 앓았다.

당초 지난해 하반기 가동하려던 계획이 벌써 반년 가까이 미뤄진 상황에서 중국의 입국제한이라는 변수가 터지면서 LG디스플레이 경영진에서도 "독이 든 성배를 마신 건지도 모른다"는 씁쓸한 자조가 나왔다.

현재 계획으로는 2분기 중 공장 테스트를 마치고 3분기에 본격 양산을 시작하는 수순이 그나마 유력하다. 당초 계획보다 1년 가까이 지연되는 셈이다.

◆中의존 국내산업 재편 기회"…해외진출 전략 재검토해야

광저우 공장 가동 지연으로 입는 피해를 당장 집계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룹 차원에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키우는 OLED 사업 전략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만 해도 타격이 크다. 올 1분기까지 5분기째 영업적자에 시달리는 LG디스플레이의 흑자전환 시기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추이나 최근 코로나19 책임공방으로 재점화 조짐을 보이는 미중 무역전쟁 여파에 따라 향후 발생할 유·무형의 비용 소요도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법인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상황 파악과 대응 시나리오 준비 등에만 국내 대응 때보다 갑절의 역량이 들어간다"며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성장 전략에 투입돼야 할 역량이 예상치 못한 리스크 대응에 새나가는 것만 해도 상당한 손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미중 무역전쟁과 올해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중국은 물론, 중국 경제와 연동된 한국의 민낯까지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중국에만 그치지 않는다. 시장 접근성과 낮은 생산비용을 우선순위에 두고 추진해온 해외 진출 전략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위기를 구조적인 산업 재편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현 기자



코로나가 韓배터리 유턴 촉발? '구미형 일자리' 대안 거론



"고객사의 요구로 해외 진출을 해야 하지만 해외에서 감수해야 할 리스크가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전기차 시장을 잡기 위해 한국 배터리(2차전지) 업체들이 앞다퉈 글로벌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현지 돌발 악재가 끊이지 않으며 국내 업체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때문에 배터리 업체들을 한국으로 돌려 세울 '구미형 일자리' 같은 파격 지원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中 텃세에 코로나까지..글로벌 투자 '첩첩산중'

중국의 경우 전 세계 전기차의 50% 이상이 생산돼 한국 배터리 업체 입장에선 포기할 수 없는 전략지다. 2016년 한국산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는데도 LG화학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현지 공장에 계속 투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한국 배터리 3사를 보조금 지급에서 제외하면서 CATL·BYD(비야디) 같은 자국 배터리 업체를 육성해왔다"며 "그런데도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중국의 성장성을 무시 못해 불이익을 감수하며 투자를 계속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중국에서 살아남아야 대규모 투자를 회수할 수 있는 것도 중국 투자를 강행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코로나19(COVID-19)가 확산되며 중국은 물론 미국, 유럽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치명타를 맞고 있다. 현지 공장의 셧다운(일시 가동중단)으로 공급 부족이 생기는가 하면 내연 자동차의 각종 환경규제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결국 해외 진출에 이미 수 조 원대 투자를 단행한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해외진출이 꼭 장밋빛은 아니라는 교훈을 얻었다.

리쇼어링 필요성 절실…투자 촉진형 일자리도 주목

재계에선 이런 이유로 배터리 업계의 '리쇼어링(Re-Shoring·기업의 모국 복귀)'을 고려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전기차 내수 확대를 위한 파격적인 보조금 혜택과 각종 규제 해소, ESS(에너지 저장장치) 시장 성장 등이 배터리업체 리쇼어링의 선결 과제로 해결되면 못할 것도 없다는 진단이다.

일각에선 LG화학이 추진 중인 '구미형 일자리 투자'를 리쇼어링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LG화학은 2024년까지 경북 구미에 5000억원을 투자해 양극재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양극재는 배터리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하는 핵심 소재다.

LG화학은 당초 폴란드에서 양극재 공장을 추가 증설할 방침이었지만 경북도와 구미시가 세금 감면과 부지 제공 같은 파격 혜택을 제시하자 방향을 틀었다.

재계 관계자는 "구미형 일자리는 기업이 100% 투자하는 투자촉진형 일자리 모델로, 경북도와 구미시가 공장 운영을 위한 전폭적 지원에 나서며 해외로 나가지 않게 된 성공 사례"라고 강조했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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