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급도 택배로 투잡 뛰어…월급 끊긴 조종사들의 한숨

머니투데이 주명호 기자 | 2020.04.27 05:20
코로나 19 여파로 여객 운항이 급감한 가운데 2일 인천국제공항에 항공기들이 멈춰 서 있다. /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20년 넘게 조종사 생활을 해왔지만 이렇게 하늘길이 닫히는 상황은 생각도 못했죠. 그렇다고 우리나라만 나아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까 더 걱정일 수밖에요."

대한항공 소속 조종사 A씨의 마지막 비행은 지금으로부터 약 두 달 전이었다. 3월 초 미국 왕복편 항공기를 몰고 난 후 지금까지 휴직 중이다. '코로나19(COVID-19)' 발 여객수요 급감 및 입국금지의 여파다.

A씨가 조종하는 에어버스 A380기종은 아예 운항을 멈췄다. A380기는 총 407석 중 절반을 채우지 못하면 비행에 나서는 순간 적자다. 코로나19 초기부터 승객 수요는 이미 빠르게 줄어든 상태였다. A씨는 "마지막 비행 전부터 이번에 다녀오면 오랫동안 쉴 것 같다는 말들이 들렸다"고 했다.

코로나 장기화에 하늘길이 닫히면서 조종사들의 일상도 크게 달라졌다. 매달 일정에 맞춰 바쁘게 움직였던 삶이었다. 이제는 기약없는 기다림이 일상이 됐다. A씨는 "기종마다 다르겠지만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도 비행 일정이 생기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6개월 이상 걸리는 재교육시간 때문에 다른 기종으로 갈아타기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반적으로 조종사들의 비행 일정은 기본 비행시간인 월 75시간에 맞춰 짜여진다. 중국·동남아 등 단거리 비행의 경우 월 10~12회, 미국·유럽 등 장거리 비행은 월 3회 수준이다. 사전 준비, 점검 등을 위해 이륙 예정시간에서 최소 2시간~2시간 30분 전에 출근해 있어야 한다. 단거리일수록, 비용에 민감한 저비용항공사(LCC)일수록 조종사들의 일정도 빡빡해진다.

대한항공은 이달 16일부터 전 직원의 70%을 대상으로 순환휴직을 시작했다. 국제선의 90%가 막히는 등 항공기 대부분이 뜰 수 없는 상황에 빠졌다. 힘들게 버텼던 대한항공마저도 고강도 자구책이 불가피해졌다. 휴직에 들어가는 직원들은 기본급의 70% 수준인 휴직수당만을 받는다.

휴직수당을 보전해주는 대한항공은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일부 LCC 조종사, 직원들의 경우 휴직수당을 처리할 자금조차 없어 무급으로 일을 쉬고 있다.


월급이 한순간에 끊기다보니 자녀 교육비, 주거 대출비 등 고정지출이 큰 사람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일부 기장급 조종사들은 어쩔 수 없이 택배기사 등 다른 일에 뛰어들었다. 그간 고액연봉 직업으로 각광받아온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연차 낮은 30대 초중반 부기장 중 일부는 빚더미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조종사 자격을 얻기 위한 교육'빚'을 갚기도 버거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A씨는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 체류비 포함 4억~5억원의 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다"며 "비행이 없다보니 취업이 안된 상태나 다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이 없으면 조종사 자격 유지도 큰 문제다. 조종사 면허는 3개월에 최소 3차례 이상의 이·착륙 경험 등 요건을 유지해야만 갱신이 가능하다.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5~6개월이 걸리는 자격 교육을 다시 받아야 한다. A380기처럼 모든 기체가 운항하지 못하는 기종의 조종사들은 면허 유지가 힘들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등 조종사 노동조합 연맹은 지난주 국토교통부에 한시적으로 유지 기한을 유예해달라는 진정서를 정식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실제 비행이 없는 조종사 자격 갱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방침이라 조종사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A씨는 "조종사 입장에서도 재자격 취득에 걸리는 시간 때문에 타격이 클 뿐더러 항공사 역시 안그래도 힘든 상황에서 불필요한 비용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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