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 창업·87세 은퇴…'삼성도 안 부럽다' 반도체따거

머니투데이 김성은 기자 | 2020.04.24 05:00

[MT리포트]부동의 파운드리 1위 TSMC…삼성을 '추격자'로 만든 힘

편집자주 | 코로나19(COVID-19) 여파로 삼성전자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하루빨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도 성과를 내며 비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장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파운드리 분야에선 대만의 절대강자 TSMC 아성이 워낙 높다. 도대체 TSMC는 어떤 강점이 있는 걸까? 33년간 쌓아올린 TSMC 노하우를 짚어본다.

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사진=AFP

TSMC를 전 세계 1등 파운드리 회사로 키워낸 것은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주 겸 전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미래를 내다본 혜안으로 세계 최초 파운드리 기업을 세운 것은 신의 한 수 였다. 창 전 회장은 회사가 어려울 때 바로 복귀해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탁월한 경영 감각을 보였다.



반도체 외길 인생…대만의 강점·약점 제대로 파악해 TSMC 창업


/사진=AFP

창 전 회장이 회사를 설립한 것은 1987년. 그가 56세 때로 미국 굴지의 대기업에서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것을 감안하면 은퇴 후 느긋한 삶을 택할 수도 있었다. 부인도 창 전 회장의 창업을 만류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때가 그의 인생 최대 도약기였다.

창 전 회장은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서 태어났다. 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의 폭격을 피해 광저우와 홍콩으로 거처를 옮겼고 결국 미국으로 이주했다. 1949년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공학도의 꿈을 품은 그는 MIT로 학교를 옮겨 기계공학 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유명 반도체 기업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서 20년간 근무하며 부사장 자리까지 오를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TI는 그가 스탠퍼드대학원에서 전기공학박사학위를 받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창 전 회장은 TI에서는 물론, 이후 최고운영책임자(COO)로서 이적한 제너럴인스트루먼트(GI)에서 연구개발(R&D)를 본격 육성하려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만 정부다.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을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고 창 전 회장은 1985년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대만으로 떠났다. 이 대만행이 결국 TSMC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 회사를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다. 창 전 회장은 오랜 기간의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놨다.

소규모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들은 IBM이나 TI, 도시바 등 대기업에 제작을 의뢰했는데 이때 디자인 이전을 강요 당하는 등 힘든 거래의 연속이었다. 또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 비해 반도체 디자인이나 마케팅이 약했던 대만이었기에 종합 반도체 사업으로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은 승산이 없었다.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2000만달러(2710억4000만원)로 설립됐는데 정부가 절반, 외국 투자자가 절반의 자금을 댔다. TSMC는 1990년대 민영화가 됐지만 대만 정부는 국가개발기금 등을 통해 지금도 지분 6%를 보유중이다.

창 전 회장의 아이디어는 적중했다. 브로드컴, 마벨, 엔비디아 등이 안심하고 TSMC에 주문 제작을 의뢰해 왔고 이들은 오랜 기간 윈윈 관계를 유지하며 TSMC와 함께 컸다.

지난해 기준 TSMC는 499개 고객사로부터 1만761개의 서로 다른 제품을 생산했다고 밝혔다. 그 중에는 애플, 퀄컴 등 대기업도 있다. 지난해 TSMC 매출액은 1조699억8545만대만달러(43조8052억원)이다.

엔디비아 젠슨 황 CEO는 2018년 창 전 회장이 87세의 나이로 은퇴할 때 "한 시대가 끝났다"며 "그는 내가 아는 세계 최고의 CEO 중 한 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창 전 회장 스스로도 무에서 유를 창조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TSMC의 가장 큰 성과는 새로운 사업 모델이었단 점"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TSMC가 IC(집적회로) 산업에 진입장벽을 낮춘 덕에 수 많은 팹리스 업체들이 생겨났다"고 강조했다.



노익장의 역발상…복귀와 동시에 외친 '투자' 적중


창 전 회장이 물러날 법한 나이에 회사를 창업했다면 정말로 물러날 것 같은 나이에 경영에도 복귀했다.

고령을 이유로 2005년 한 차례 은퇴했지만 3년 뒤 금융위기 탓에 TSMC 매출이 급락하자 2009년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그의 나이 78세였다.

모든 것이 위축됐던 시기, 돌아온 창 전 회장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과감한 투자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창 전 회장은 당초 15억달러(1조8480억원)로 줄였던 연간 투자 규모를 2개월 만에 19억달러로 늘렸다. 이듬해 1월에는 TSMC 사상 최대 규모인 48억달러 상당 투자계획을 내놨다.

금융위기로 해고됐던 직원도 복직시켰다. TSMC는 1200명이던 R&D 인력을 30%까지 더 늘렸다.

역발상이었다. 당시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09년 반도체 산업 전반 자본 지출이 전년 대비 45%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었기 때문이다.

창 전 회장은 당시의 경제침체를 그리스 비극에 비유하면서 "1막은 금융위기, 2막은 글로벌 경기둔화, 3막은 결국 회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경영감각은 적중했다. 2010년 TSMC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 늘어난 4195억대만달러(17조1659억원)를 기록했다.

TSMC는 2009년부터 매년 약 100억달러를 들여 첨단 시설을 늘렸고 연구 개발 비중도 당시 매출의 8%로 높였다. 지난해에도 이 비중을 유지하며 914억1900만 대만달러(3조7408억원)를 연구개발에 썼다.



무역전쟁·코로나19 등 숙제 받아든 2세대…대규모 투자는 '지속'


(왼쪽부터) 마크 리우 회장과 CC웨이 대표/사진=로이터


창 전 회장은 2017년의 공언대로 2018년 모든 직책을 내려 두고 '정말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포브스는 TSMC에 대해 '잡스가 떠난 애플'에 비유했다.

창 전 회장이 일찌감치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마크 리우(류더인) 현 회장과 C.C.웨이 현 최고경영자(CEO) 등 두 사람이다.

리우 회장은 이사회를 이끌며 자본 지출, 임원 인사 등 주요 결정의 문지기 역할을 했고 웨이 사장은 모든 임원의 보고를 받는 동시에 고객을 응대하는 최고위 대표 역할을 맡았다.

두 사람은 상호 보완적 성향으로 평가된다. 창 전 회장은 "리우 회장은 더 성찰적이고 모든 각도에서 이슈를 공격할 것"이라며 "웨이 사장은 의사 결정이 좀 더 빠르다"고 말했다.

창 전 회장이 맡긴 고객도 달랐는데 웨이 사장은 1위 고객사인 애플을, 리우 회장은 퀄컴과의 사업을 총괄했다.

다만 이원적 구조가 앞으로도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2021년 현재의 이사회 임기가 끝나면 경영쇄신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TSMC 앞에는 현재 숙제가 산적해 있다. 두 사람이 취임한 후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한 데다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 추이는 둔화되고 있다. 신성장 동력이 될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차 산업은 아직 성장 속도가 더디다. 최근에는 코로나19가 전세계 경기를 침체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16일 닛케이아시안리뷰에 따르면 코로나19가 6월 안정된다는 가정 하에 TSMC는 올해 여전히 15% 이상의 매출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1월에 예상했던 수치(17%)보단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 전 회장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대규모 투자는 지속한다. TSMC는 올해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두고 150~160억달러(18조4800억원~19조7100억원)의 자본 지출(시설투자)를 할 예정이다. 첨단공정 개발을 위해서다. TSMC는 이미 5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갔고, 2021년에는 3나노 공정 시험생산으로 기술을 확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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